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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중정6국’터에 ‘기억6’ 전시관 선다[장행훈 칼럼]

박정희 전두환 독재 때 고문 수사가 이뤄졌던 옛 중앙정보부 6국터에 ‘기억6’이라는 이름의 지상 1층 지하 1층의 전시실에 광장이 딸린 새 기념관이 세워진다. 옛 일제 조선통감부 관저 터 일부에 자리 잡고 있던 중앙정보부 6국은 중정의 특수정보활동을 담당했던 곳으로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권에서 못마땅하게 여기는 정치인, 지식인, 언론인들을 소환해 고문 취조하던 악명 높은 곳이었다.

건물 벽엔 왕년의 중정(中情) 건물을 지탱했던 철근을 녹여 '기억6'이라고 쓴 현판을 만들어 붙인다. '기억6'은 중정6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외면하지 말고 기억하자는 뜻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될 때까지 중정6국을 잊지 말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결의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경각의 기념비가 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아직 완전한 민주 국가가 아니다. 촛불시위로 독재의 우상을 파괴했다고 보지만 아직도 독재 시절의 특권을 잊지 못하고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세력들이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고 있다.

촛불 혁명으로 세운 민주주의는 아직 기초가 단단치 못하다. 8월 30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재판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선봉대를 자임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최종 판정하는 중요한 재판이다. 문재인 정부가 새로 출범하고 서훈 새 국정원장이 취임한 뒤 국정원적폐청산 테스크포스(TF)와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가 조사해서 새로 확보한 민간인 댓글 부대의 조직과 활동 증거가 재판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지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정원 개혁TF의 노력으로 원 전 원장이 이명박 정권 시절 국정원 '전국지부장회의에서 강조한 지시 말씀' 녹취록과 국정원 메인서버 공개로 확보한 자료들이다. 이 자료들을 보면 국정원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정보기관인지 정권의 옹호기관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는 데 많은 보도가 일치하고 있다. 원세훈은 국정원 간부들에게 대북 심리전에 못지 않게 국민 상대의 심리전에 노력할 것을 강조했다. 국정원 원장이 여당 선거본부장이나 된 듯한 어조로 여당을 위한 선거개입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 확보한 증거들이 재판 전에 정리가 돼 제출될 수 있다면 원세훈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이 나올 가능이 높다. 그래서 '댓글 공작'의 재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하에서 진행된 댓글 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정권은 검찰의 수사를 방해하고 원칙대로 수사를 진행하려는 채동욱 검찰총장을 혼외 아들이 있다는, 수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유를 들어,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총장 사퇴 후 검찰의 수사는 맥이 빠졌다. 1심에서 원 전 원장은 국정원법 위반만 유죄로 인정되고 선거법 위반은 무죄였다. 항소심 재판에서 재판장 김상환 부장판사는 국정원의 행위가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했다"며 선거법 위반으로 원 전 원장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그를 법정 구속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대밥원은 2심 재판 결과를 인정할 경우 문제가 복잡해질 것을 우려했는지 증거 채택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해 책임을 아래로 떠넘겼다.

   
▲ 8월 말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판이 있다. (이미지 출처 = JTBC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서울 고법은 증거능력뿐만 아니라 증거 전반을 다시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재판을 1년 반 이상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다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서울고법은 국정원 '댓글 재판'을 새롭게 다루게 됐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중요한 증거들도 새로 드러났다. 원세훈 전 원장에게 불리해질 수 있는 재판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한 국가의 민주주의 성패는 선거가 크게 좌우한다. 미국에서 트럼프라는 부동산재벌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 국내 문제가 엉망이고 세계 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해지고 있다. 이런 인물이 대통령이 된 데는 러시아의 정보기관이 미국 대선에 개입한 결과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해 박근혜 같은 인물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한국과 흡사한 점들이 있어 보인다. 어쩌면 한국의 국정원이 러시아의 푸틴에게 선거 개입의 멘토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국정원의 자체 조사 결과 원세훈 전 원장이 이명박 정권 하에서 심리전단 외에 민간인 댓글부대 30개팀 3500명을 동원해서 연 30억 원의 돈을 뿌리며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박근혜 후보를 지원하고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 공작'을 벌인 사실들이 확인됐다. 명백한 불법행위다. 선거 결과에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 2013년 초부터 가톨릭 사제들이 국정원이 개입한 18대 대선의 무효를 주장하고 항의하는 전국 순회미사를 집전한 이유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조중동 등 보수 언론과 우익단체들은 가톨릭 사제들의 항의 미사를 종교의 정치 개입이라고 일제히 비난했다. 박 정권은 국정원의 선거 개입 수사를 지휘하는 채동욱 총장을 혼외 아들이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사임하게 만들었다. 보수언론은 선거개입 수사와 아무 상관 없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존재를 윤리 문제라며 그에게 사임 압력을 가한 것이다. 당사자들은 부인했고, 한 우익 신문은 채 총장 혼외자를 찾는 데 특종보도를 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다음해 미 국무성이 발표한 세계인권보고서에는 한국의 정보기관이 채 총장의 혼외자 존재를 조사해 신문에 알려 줘 보도된 것이라는 사실을 한국 정보기관을 통해 확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국무성의 연례 인권보고서는 정부가 의회에 보고하는 법적 문서다. 허튼 소문을 써 대는 '거짓 뉴스'가 아니다. 박근혜 정권과 보수언론의 유착을 드러낸 증거다.

국정원의 '댓글 공작'이 선거법 위반인지 여부를 법적으로 밝힐 파기환송 재판이 30일로 다가왔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여부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국정원이 어떤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교훈으로 선고하는 재판이 될 것이다. 국정원은 이미 자체적으로 국내정보를 수집하는 2국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가톨릭 사제와 신자들이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항의하며 주장한 요구의 일부가 실현된 것 같다. 이 기회에 국정원은 지난 50년간 반공을 내세워 국내정치에 개입,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엄청난 폐해를 끼친 점을 반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30일 있을 댓글 공작에 대한 파기환송 재판이 이런 정신을 법적으로 확인해 주기를 기대한다. 원세훈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해 한국 민주주의를 크게 훼손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책임도 따질 계기가 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장행훈(바오로) 
언론인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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