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오는 23일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뇌물 직권남용죄 등으로 재판을 받기 시작한 지 만 두 달이 된다. 피의자가 범죄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증인으로 채택된 인물들이 증언을 거부해서 범죄혐의가 제대로 입증돼 특검이 기대한 판결이 나올지 예단하기 어렵다. 물론 특검은 조사기간 중 필요한 증거들을 충분히 수집했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유죄판결에 자신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법원이 특검의 주장을 얼마나 채택하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가 발표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에서 새로 발견된 2100여 건의 문건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14, 17, 19일 사흘 연거푸 청와대에서 박근혜 정부 때 작성된 문서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민정수석실에서 발견된 300건에 이어 정무수석실에서 1361건이 발견됐는데 20일 정책조정수석실 캐비넷과 책상 등에서 504건이 추가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전부 합치면 2156건에 이른다. 문서들은 박근혜 재판에 이용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특검에 넘겨졌다고 했다. 이 문건들이 특검 수사 때 발견됐더라면 박근혜 재판은 훨씬 빨리 종결될 수도 있었을 것이고 국정농단의 무게도 더 커지지 않았을까 싶다.

특검은 원래 박근혜 대통령 재임시 청와대를 압수수색하려 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처음에는 압수수색에 응하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국가기밀을 내세워 특검의 청와대 출입을 거부했다. 되돌아보면 뭔가 불리한 증거가 나올 것 같은 불안감에 청와대 수색을 거부했던 것으로 추리된다. 그래서 새로 발견된 문건에 대한 국민의 호기심이 큰 것 아닌가 생각된다.

21일 아침 조간에 추가 보도된 문건을 보면 세월호 참사 직전인 2014년 3월에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스캔들이 불거지기 직전인 2016년 10월 사이에 생성된 문건들은 주로 정부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정권 차원의 정략이 광범하고 치밀하게 짜고 실천한 기록들임을 방증하고 있다. 20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한 (504건 중) 9건만 보더라도 보수 세력 육성, 사회관계망(sns), 포털 관리, 서울시 정책에 대한 네거티브 홍보, 삼성물산합병 관련,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등 크게 4가지로 분류돼 있다. 국민을 위한 국가정책 문서라기보다는 정권유지와 보수 세력 육성을 위한 불법성 정략들이다. 박근혜의 청와대가 특검의 압수수색을 완강히 거부했던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정무수석실 문건에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의 조사를 무력화하라는 청와대 지시가 들어 있었다는 보도다. 청와대 지시가 “적법하지 않은 것”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 대한 친정부 언론보도에 불순한 왜곡이 많게 만든 음모의 원천이다.

▲ 7월 14일 박근혜 정부의 민정비서관실에서 문서가 대량 발견됐다고 청와대가 발표했다. (사진 출처 = KBS NEWS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2017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일, 침몰 직전의 배에 갇혀 있던 300여 명의 단원고 학생들은 누군가가 빨리 구호의 손길을 뻗치면 모두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구조대는 오지 않았고 대통령은 오전 9시경에 세월호 조난 보고를 받고서는 오후 5시 재난본부에 참석할 때까지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학생들이 구명대를 입고 있었는데 왜 구조되지 않았느냐는 엉뚱한 질문을 해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분노만 부풀렸고 단원고 학생들을 진도 앞바다에서 수장되게 만든 대통령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국민의 원성이 하늘까지 닿게 자극했다.

세월호참사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동은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여호와가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내가 동생 아벨의 보호자입니까”고 태연스럽게 대꾸한 카인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생떼 같은 애들을 물귀신이 되게 방치해 놓고도 전혀 죄책감을 못 느끼는 박근혜에 대한 단원고 학부모와 전 국민의 원성까지 솟구치게 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 박근혜는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애통한 심정을 “백성의 목소리는 곧 하늘의 목소리”라는 엄중한 심판으로 받으들이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박근혜가 그후 국민의 심판을 받은 것은 이 역사적인 교훈을 가볍게 여긴 데 대한 하늘의 응보로 보는 국민이 적지 않은 듯 했다. 청와대의 “지시”대로 세월호 유족과 이들을 위로하는 국민을 조소하는 '관영' 언론의 보도는 박근혜에 대한 국민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했다. 

백성의 목소리는 곧 하늘의 목소리라는 말은 민주주의 사회의 불문율이다. 이제 백성은 주권자인 국민이 됐다. 대통령은 국민을 지배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이 위임한 권력의 피위임자에 불과하다. 주권자인 국민의 목소리는 언론자유가 있어야 들린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방송을 장악하고 언론을 정권의 도구로 이용했다. 이명박근혜 보수정권의 일관된 정책이었다. 그러나 국민이 촛불시위로 국민주권을 대선언한 한국 사회에서 구시대적 몽매주의는 더는 통할 수 없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가 왜곡되고 있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프랑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정상은 아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될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데 주권자인 국민 대다수가 전혀 모르는 인물이 국가지도자로 선출되는 것은 국민 간의 소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왜곡을 치유하는 임무를 수행할 분야가 언론이다. 언론이 국민들의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다수가 지도자로 공감하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아서 순탄한 사회 변화를 실현하도록 토론과 공감대 형성의 역할을 실천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근혜를 떠받드는 데 부역한 사이비 언론, 권력에 의해 임명된 이른바 ‘공영방송’의 경영진이 과거를 반성하고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언론자유를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하며 독재 권력에 맞서 투쟁한 참 언론인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생각을 하기는커녕 촛불혁명으로 새롭게 국민의 신임을 받은 새 정부에 맞서 '보수언론'을 지키겠다는 엉뚱한 깃발을 내걸고 버티고 있다. 마치 친일 부역 언론인들이 조국 광복 뒤에도 ‘아무 반성 없이’ 언론인으로 복귀해 독재 옹호에 앞장선 부끄러운 선배들을 상기시킨다.

촛불혁명은 위대한 민주혁명이다. 반민주 세력에 무비판적으로 부화뇌동한 언론인은 이제 자리를 참 언론인에게 넘겨주는 것이 언론인으로서 지식인으로서 취할 태도인 것 같다. 가장 심한 비판을 받고 있는 언론이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인 것 같다. 특히 <문화방송>은 전국의 <MBC> 구성원 1859명이 김장겸, 고영주 퇴진 MBC비상행동을 구성하고 19일자 <한겨레신문> 전면(15면)에 두 사람의 퇴진을 요구하는 광고를 냈다. 이들의 퇴진을 위해 전면 투쟁을 선언한 것이다. 국민의 혁명으로 물러난 부도덕한 정권에 의해 권력의 입으로 부역했으면 정권과 함께 물러나는 것이 정도일 것 같다.

문재인 정부도 건전한 언론이 없는 민주주의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재인식하고 이명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왜곡된 언론 풍토를 바로잡는 데 더욱 분발했으면 한다.

 
 

장행훈(바오로) 
언론인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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