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5일 법정에서 법관들을 향해 심경을 밝힌 “작심 발언”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피고인 박근혜가 재판을 받기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법정에서 처음 입을 연 발언이 말이다. 그래서 언론들이 단순한 발언이라고 보도하지 않고 각별한 의미를 더한 “작심발언”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동안 박근혜는 재판 과정을 통해 검찰이나 재판부의 질문에 성의 있게 응답하지 않았다. “아니다” “모른다”의 두 마디가 거의 전부였다. 답답한 재판이었다. 하지만 “작심발언”은 깜짝 놀랄 새로운 것을 터뜨린 “폭탄발언”이라기보다는 재판이 본인이 바라던 대로 진행되지 않고 구속기간이 본인의 기대와 달리 재판부가 다시 6개월 연장키로 결정된 데 불만을 터뜨린 “폭발발언”이었다. 발언 속에는 재판거부 선언과 함께 정치투쟁을 암시하고 있어 사람들이 좀 불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낌새다.

박근혜는 처음부터 재판에 대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범죄혐의가 18가지나 되기 때문에 중죄 판결이 날 것은 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빨리 재판이 끝나고 구속이 풀리면 자유의 몸으로 다시 지지세력을 규합해서 재기의 기회를 잡아 보겠다는 꿈을 품고 있으리라는 것이 정가에 나도는 관측이었다. 그런데 구속이 다시 6개월 연장됐으니 전직 대통령 박근혜의 꿈은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박근혜로서는 실망이 컸을 것이다.

그는 “작심발언”에서 “오늘은 저에 대한 구속 기한이 끝나는 날이었으나 재판부는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추가 구속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다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향후 재판은....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고....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합니다....”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가 탄핵을 결의하고 헌법재판소가 그의 파면을 결정한, 모든 합법 절차를 정치보복으로 단정해 버렸다. 그의 국정농단에 분노하고 항의하는 수천만 국민이 수 개월간 촛불시위를 벌인 사실에 사과 한마디 없었다. 박근혜 스스로 탄핵의 정당성을 입증해 준 셈이다.

지난 몇 달간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조사해서 밝혀지고 있는 엄청난 ‘이명박근혜 정권’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한마디 사죄의 언급도 없었다. 대선 당시 국정원장 원세훈은 국정원 조직을 가동해서 수많은 인원을 동원하고 국가예산을 써 가며 댓글부대를 운영해서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을 지원했고 그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았다. 박근혜는 합법적인 민주 절차에 따라 당선된 대통령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 인물이 사법부의 판결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오만이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재판부가 그의 구속기한을 6개월 연장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고 “이제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일갈했다. 재판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그의 변호인단 7명도 모두 사퇴했다. 재판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국선 변호인을 지명해서라도 재판을 계속할 것이고 그것도 부인하면 궐석재판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다.

지난 10월 1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최근 구속 연장이 결정된 데 법정에서 처음으로 심경을 밝혔다. (사진 출처 = YTN뉴스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피고인 박근혜도 재판 절차에 관해서는 견해가 비슷하리라 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동 방향은 빤해 보인다. 정치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다수 언론의 전망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미 한나라당 후신인 자유한국당으로부터도 출당 대상에 올라 있다. 한국당도 박근혜의 이미지가 이미 그들의 정치활동에 이롭기보다는 부담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그를 밖으로 몰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에 대한 지지도는 77퍼센트인 반면에 그에 반대하는 여론은 25퍼센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객관적 상황은 박근혜의 정계복귀에 비관적이다.

그런데도 언론이 예견했던 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19일 예정된 재판에 건강을 이유로 불참했다. 앞으로도 불참할 가능성이 높다. 지지 세력을 모으고 여론의 분위기를 조성해서 친박 세력을 규합하려는 작전의 일환이리라.

박근혜 쪽은 국내 지지세력 규합에 머물지 않고 여기에 해외여론도 움직여 박근혜의 권토중래작전에 이용하려는 작전도 구상하고 있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방송된 미국 CNN 보도가 그런 조짐의 하나다. 친박 세력이 조종한 것으로 보이는 MH(엠에이치)라는 미국 법률 컨설팅 회사의 미샤나 호세이니운 대표가 17일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이 더럽고 차가운 감방에서 지내는 등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인권 상황 보고서 초안을 마련해 조만간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피고인 박근혜는 교도소에서 거의 매일 같이 변호사를 접견하고 교도소장도 열흘에 한 번 정도 만난다는 사실이 보도돼 오히려 호화스런 교도소 생활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보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별로 동정 여론 조성에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박근혜 정권의 부정부패, 비민주적 언론탄압 등 좋지 않은 여론이 확산돼 있는 상황에서 이미지 효과가 의심되기 때문에 인권 쪽으로 어젠다를 바꿔 보려는 박근혜 쪽의 작전이 아니겠는가 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촛불시위 보도를 통해 박근혜의 이미지가 전 세계에 알려져 있고 그의 아버지 박정희는 독재자의 상징으로 굳어 있는데 과연 박근혜가 인권탄압을 받고 있다는 캠페인이 국제여론을 움직여 그의 정권 복귀의 꿈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근혜나 아직도 박정희 신화를 믿는 사이비 신자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빨리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때 박근혜나 그를 따르는 사이비 신도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충고는 “너 자신을 알라” 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뿐일 것 같다.

 
 

장행훈(바오로) 
언론인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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