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박근혜 탄핵과 촛불혁명은 하늘이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베풀어 준 축복이라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실이 처음 폭로되기 시작했을 때 누가 이 사건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확대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국정원이 댓글 부대를 만들어 대대적으로 대통령 선거운동에 개입하면 증거를 노출시키지 않고 국정원이 지원하는 후보를 당선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반면 이렇게 한번 당선된 대통령을 불법 선거운동을 이유로 당선을 무효화시며 사퇴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명박 원세훈의 국정원과 가톨릭 사제단이었다. 물론 선수를 친 것은 국정원이었다. 이들은 국가정보원의 심리전단을 외곽으로까지 확대해 민간인까지 동원해 댓글로 여당 후보인 박근혜는 좋은 내용만 댓글로 써 확산시키고 야당 후보인 문재인이나 안철수는 좋지 않은 점만 댓글로 퍼뜨렸다. 군대의 심리전단까지 동원했다. 북한 군대를 심리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여당 후보 박근혜의 선거운동에 동원됐다. 최근 김관진 당시 국방부장관이 직접 지시하고 보고를 받은 문건이 입수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됐다. 그 효과를 숫자로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그 영향이 적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더구나 댓글을 읽는 사람이 처음부터 국가기관이 개입해서 작성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몰라도 그걸 몰랐으면 그 효과는 더욱 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제단은 가톨릭 조직을 통해 이런 사실을 처음부터 꿰뚫어 봤을 수 있다. 그랬기 때문에 사제단은 전국을 순회하는 시국미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 무효와 사퇴를 주장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을 흔드는 위법행위를 감행한 국정원의 해체를 소리 높이 외쳤다.

사제단의 주장을 이해하면서도 국정원의 해체까지 주장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내부 간부들을 모아 놓고 내린 지시 녹취록을 본 다음부터는 사제단의 주장이 백번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따라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선고를 받아 마당하다고 백번 공감했다. 박근혜가 파면되지 않고 아직 청와대의 주인공으로 앉아 있다면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국정원은 정부의 매카시즘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 문화인 지식들인을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려 놓고 그들의 활동을 억압하거나 퇴출시켰다. KBS, MBC 같은 공영방송은 공영이 아니라 완전히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시켰다.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의 콤플렉스 때문에 정부가 싫어하는 세월호 뉴스는 아예 뉴스를 방송하지 않았다. 그래서 <뉴스타파> 같은 탐사보도 채널이 인기를 얻게 되고 후원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면서 그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동안의 공영방송은 스탈린이나 나치 체제를 연상시키는 방송이었다. 이런 언론체제를 가진 국가를 민주국가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거나 동조하지 않는 문화인 지성인에게는 모두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한마디로 “빨갱이”라는 것이다. 반정부=빨갱이.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과 신자들은 시국미사를 마친 뒤 거리를 행진해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 (지금여기 자료사진)

지리적으로 북한 쪽에 가깝지만 UN사령부가 일방적으로 그어 놓은 황해의 북방한계선(NLL)은 관행으로 우리 해역처럼 기득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제법적으로는 문제가 있을 수 있는 해역이다. 그래서 가끔 남북 간에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2013년 전주에서 시국미사를 집전하던 박창신 원로 신부가 우리가 그곳으로 들어가면 그들이 쏠 것은 당연할 게 아니냐면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이야기했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말이 아니었는데 <조선일보>에서는 박창신 원로 신부가 마치 북한의 행동을 옹호한 말처럼 제목을 달고 이건 신부가 아니라 “종북 신부”가 아니냐는 식으로 그를 몰아세웠다. 그래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던 신문들이 작은 말꼬리를 잡아 성직자를 “종북”으로 몰아세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촛불혁명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칭찬을 받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쪼그라든 한국 민주주의가 이제 세계적 민주주의의 향도로 각광을 받고 있는 기분이다. 분명 국가적 자랑이다. 이명박근혜 9년간에 한참 하위로 밀려난 한국의 언론자유의 위상을 다시 80년대 민주화시대로 되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무엇보다도 정권의 도구로 전락한 공영방송을 정상 궤도에 올려 놓는 것이 시급하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심어 놓은 이른바 낙하산 경영진부터 바꿔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공영방송을 유럽식 공영방송 비슷하게 개선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행태를 보면 공영방송 경영진과 보수언론은 자기들이 독재정권에 부역한 부끄러운 사실을 잊고 공영방송을 하늘이 내린 직장으로 착각하고 있는 인상이다. 사죄나 참회의 생각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고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달라졌는데도 지금의 자리를 지키는 데 혈안이 돼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경영진은 새 정권이 그들의 방송을 장악하려 든다는 논리를 내세워 물러날 생각을 않고 지금의 자리를 버티고 있다. 그 점에서 이제 야당으로 위치가 바뀐 보수우익 정당들과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기존 방송 경영인들이 보수 정권이 임명한 인물들로서 보수정권과 이해와 이념이 같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때문에 경영진 교체를 방송 장악이라고 공동으로 반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제 언론도 자신의 사명과 역사적 위치를 재검토해야 한다. 한마디로 좌든 우든 정권의 시녀가 돼서는 안 된다. 언론 본연의 사명과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자세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신뢰하는 민주언론으로 존경받을 수 있다. 불의에 항의하고 정의를 위해 고통과 탄압을 개의치 않고 투쟁해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되살린 가톨릭 사제들처럼.

 
 

장행훈(바오로) 
언론인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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