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훈 신부의 바깥 일기]

웬만한 규모의 상가 건물이면 어디든 빠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식당, 학원, 헬스장, 그리고 요양병원. 먹고, 공부하고, 근육을 키우는 공간에서 동시에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이 묘한 구조는 누가 설계한 것일까.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은 이들과,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이들의 같을 수 없는 속도의 시간이 무심히 함께 흐른다. 볕 좋은 날 상가 앞에 나와 줄지어 학원 버스에 오르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환자복의 노인은 어떤 상념에 젖어 있을까. 모두 본당에 오기 전까지 궁금할 리 없던 것들이었다.

달에 한 번, 봉성체 날이면 찾게 되는 상가 요양병원이 이제 제법 눈에 익다. 적어도 이 도심에서 아픈 이의 집을 찾아가 덤으로 가족까지 만나는 그런 방문은 이젠 없다. 그럼에도 내는 돈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 병실 분위기, 요란하지만 병실의 정적을 더 부각시키는 티브이 소리, 호기심인지 불편함인지 알 수 없는 시선까지, 그날의 예식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는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밥을 먹고 잠을 자던 그 자리에 관을 들이고 곡을 하던 우리들의 마지막은 언제 이렇게 달라졌을까. 부모를 그곳에 밀어 넣은 자식들의 속내 역시 편할 순 없을 테다. 그러나 모두 허겁지겁 살아가는 형편 아닌가. 그럼에도, 꽉 막혀 내려가지 않는 가슴속 이 죄책감과 무력감은 도대체 누굴 탓해야 할까.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비참해진 것일까.

이쯤되면 누구든 가난하게 와서 가난한 모습으로, 평등한 마지막을 맞이한다는 장례미사의 강론은 레토릭일 뿐이다. 가족같이 정성을 다하겠다는 상조회사의 광고를 그 누구도 믿지 않지만 죽음의 ‘질’을 상품 고르듯 미리 챙겨야 하는 우리 모두의 마지막 앞에 교회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죽음마저 상품화, 계급화한 자본의 무정함만을 탓할 순 없겠다. 인생의 마디 중 가장 실존적 순간 중 하나인 죽음 앞에 맥 못 추는 말이라면 다른 순간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장례미사를 준비하며 말들을 고르고 또 고르는 주춤거림과 비슷한 무엇일 거라 짐작할 따름이다. 무엇이든 그 속살에 닿으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 광화문광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단식 기도를 했다. (사진 제공 =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돌이켜 보면 칸칸이 나뉜 상가 한구석에 구겨 넣어진 이 마지막들을 나는 지금껏 몰랐다. 아니 알았다 해도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었다. 욕망이라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바라고 닳아 버린 세월에도 여전히 수면제 한 움큼 털어 넣을 만큼 그들이 뜨거울 수 있단 것도,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다가도 끝내 흐리고 마는 말끝에 배인 그늘의 두께도, 침상 주변 남루한 살림살이를 덮어 둔 한 조각 천 뒤로 숨겨 둔 자존심도 새삼스럽다. 이런 감각은 새파랗게 젊었던 육신이 서서히 무너지는 나이에 내가 가닿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본당이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얻지 못했을 것들이다. 이곳에서 만나는 고통들은 내게 인간의 고통은 더 촘촘하고 위력적이며 떨궈 버리기 힘든 끈덕진 것임을 깨닫게 한다. 갈수록 말을 삼키고 위로를 되새김하는 까닭이다.

몸의 거리만큼 마음도 그만큼 물러나는 법이라 했던가. 그럼에도, 지금까지 몰랐거나 알았어도 일반화해 버린 이 낯선 고통들에 미안하다가도 나는 다시 내가 만났던 고통들에 연결되고 만다. 밥은 먹었을까. 덥지는 않을까. 다치진 않았을까. 죄다 궁금한, 겉으로 드러난 형편 그 너머 오물거리는 속살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준 거리에서 고공에서 들판에서 만났던 상처들, 미안하고 고마운 고통들 말이다.

새 정부의 순항을 축원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여전히, 지금도 아픈 사람들의 호소를 상대화하거나 침묵케 하는 폭력이어선 안 되겠다. 그런 바람이라면 이 정권이 오히려 겉으로 드러난 상처 그 너머 진짜 고통들과 더 생생히 연결되도록 도울 일이다. 닿을 수 없었던 청와대 앞 도로가 열렸지만 광화문 한편에 집을 마련한 이들의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짧게는 일 년 길게는 십 년, 공장이 아닌 거리에서 지내야 했던 노동자들의 신음을 ‘보채는 것’이라 비난하는 세상은 얼마나 잔인한가. 자신의, 또 누군가의 고통에 닿아 본 사람이라면 그럴 순 없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후 광화문 광장에서 쉬지 않고 바쳐졌던 기도가 얼마 전 그 긴 여정을 마감했다. 광장은 그간 그 자리를 채운 이들에게 어떤 곳이었을까. 나와 같은 누군가에게는 고통에 당장 달려갈 수 없는 부채감을 덜어 준 공간이기도 했겠지만 분명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낯선 고통과 연결되는 자리였을 것이다. 기도로 뾰족이 달라진 것은 없지만 분명 광장은 그렇게 그 날수만큼 교회에게, 또 세상에게 보다 생생한 말과 손을 얻어 준 고마운 자리였으리라. 이제 광장이 키운 그 말들이, 그 손들이 더 많은 고통들에, 더 낯설고 후미진 상처들에 가닿으리라 짐작할 따름이다. 아픈 속살에 닿아 본 이라면, 고통에 연결되어 본 자라면 결코 그 고통을 떠날 수 없는 까닭이다.

 
 
장동훈 신부

인천교구 중1동 성당 주임
인천교회사연구소 소장
인천가톨릭대학교 교회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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