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훈 신부의 바깥 일기]

티브이를 보지 않는 습관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를 지켜보고서부터니 거의 8년. 답답한 소식에 더 답답해지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대낮에, 그것도 도심 한복판, 고공 위, 바다 한가운데 할 것 없이 이어진 숱한 죽음들이 단신으로도 전해지지 않는 화면을 바라보는 것이 바보 같아서였다. 아니, 억척스레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우리 모두 결국 무명의 목숨이라는 사실, 그 ‘현실’에 우울해져서다. 사람이 죽어나는데 상자가 담는 소리라곤 후루룩 쩝쩝, 키득거림뿐. 그렇게 내게 티브이는 수건을 말리거나 옷을 걸어두는 곳이었다. 돌이켜보면 쓸모 잃은 티브이처럼 모두 딱하게 서성이던 시간이었다. 
 
대선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났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들 한다. 번역기가 필요할 수준의, 비문이나 다름없던 대통령 발언이 하루아침에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걸 보면 분명 그렇다. 말뿐일까. 당선 뒤 첫 업무지시가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이었다니 거리로 나앉고 목숨을 끊던 노동자들을 기억하는 이라면 더 그리 느낄 것이다. 공항에 갈 때면 농성장을 피해 돌아가던, 미안함인지 패배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던 내 마음도 이젠 끝이 날까. 어쨌든 선거로, 나의 한 표로 세상이 바뀌었다.

피부에 와닿는 변화들 외에 이번 대선은 여러 기대를 품게 한다. 단일 후보 합의 없이 주요 정당의 후보 모두가 완주한 것이나, 어떤 곡절이든 보수 안에서도 다른 결의 목소리가 등장했다는 것은 사실상 이제까지 부재했던 다수 정당 정치에 대한 기대도 낳았다. 무릇 민주주의란 시끄러운 것 아니든가! 물론 갈 길은 한참이다. 피고인으로 전락한 전직 대통령에 대해 신앙에 가까운 지지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이들을 보면 역사가 아직도 이 땅에서는 미래로 나아가게 할 힘이 아니라 현실을 붙들고 짓누르는 실제적 무게임을 실감한다.

▲ 2012년 '정리 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문화제와 미사에서 불꽃을 날리는 노동자들 ⓒ정현진 기자
그러나 불편한, 아니 불안한 한 가지가 있다. 사람 하나가 바뀌었다고 천지개벽하듯 달라지는 사회가 과연 정상일까? 선의의 마음 하나가 부족해 역사가 어이없이 곤두박질치곤 했다지만 사람 하나로 모든 게 달라지는 사회 또한 얼마나 부실한 것인가. 언제든 전복될 수 있는, 도박 같은 현실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아가, 그 달라진 세상이 비판적 지지와 건전한 견제가 아닌 전과 다름없는 진영 나누기, 자기 투사식의 응원과 반대를 위한 반대만 여전한 오늘이라면 과거의 망령에 붙들려있는 이들의 세상과 무엇이 다를까. 만에 하나, 이 진동들 모두가 분단과 가난을 극복했다는 거짓 신화가 나은 인물에서 단지 지난 몇 년 절치부심의 분노와 연민을 투사할 인물로 대체된 때문이라면 우리의 내일은 또 얼마나 불안한 것인가.

물론 지금의 기분 좋은 진동들은 몇 번의 계절을 갈아치우면서도 꺼지지 않았던 광장을 메운 촛불의 끈기 때문이다. 광장은 애당초 권력자의 종말이 광장의 마지막 목표일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 너머 더 나은 사회, 나라다운 나라마저 응시했다. 이를 가능케 할 건강한 구조물도 상상했다. 그렇다면 구조물을 건조할 용광로, 이제는 저마다 가슴에 품어야 할 가치가 어떤 것이어야 할지 물을 때다. 시스템은 결코 시스템으로만 오지도, 남지도 않기 때문이다. 구조는 어차피 이를 고안한 가치의 구현이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대통령이 이 구조물의 일부일 순 있겠다. 그러나 이 용광로를 데우려면 그보다 앞서야 하는 것들이 있다. 우선 청산해야 할 역사의 무게다. 그것은 권력에 부식했던 적폐들만이 아니라 지난 몇 년 가슴에 쌓였을지도 모를 절치부심 역시 마찬가지다. 채워야 할 것 또한 분명하다. 건전한 비판과 견제, 인물이 아닌 상식, 권력이 아닌 인간이라는 절대가치, 그리고 지치지 않는 꾸준함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을 밤새워 읽던 때가 생각난다. 두 눈과 다리에 단박에 힘이 들어가던 그 밤, 줄을 쳐 가며 몇 번을 다시 읽으며 단비 같은 말씀에 감사했더랬다. 몇 해가 흐른 지금, 저 멀리서 치켜세운 교회 개혁의 깃발은 안녕한가. 잘은 모르지만 중앙 수뇌부 일부의 저항도 저항이지만 개혁이 이 이역의 한국교회까지 확장되었다 하기엔 여전히 부족하고 굼뜨다. 피부에 와 닿은 변화보다는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슬로건 같은 말만 한바탕 소비된 듯도 하다. 그러나 역사란 무게를 덜어 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신뢰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늙은 교황은 지치지 않는다. 느리지만 가장 근본적인 방식으로 꾸준히 나아갈 뿐이다. 모처럼 찾아온 이 나라의 봄날에 우리가 서둘러, 또 끈기 있게 마련해야 할 용광로는 저 늙은 교황의 가슴인지도 모르겠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을 밤새워 읽던 때가 생각난다.... 몇 해가 흐른 지금, 저 멀리서 치켜세운 교회 개혁의 깃발은 안녕한가." ⓒ정현진 기자

 
 
장동훈 신부

인천교구 중1동 성당 주임
인천교회사연구소 소장
인천가톨릭대학교 교회사 교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