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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마치지 못한 부활찬송[장동훈 신부의 바깥 일기]

성금요일, 마음은 온통 토요일 무반주로 혼자 불러야 하는 부활찬송에 쏠려 있었다. 십수 년 만에 불러보는 노래니 신경이 곤두설밖에. 오르간을 곧잘 타고 노래도 잘 부르는 본당 신학생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신학교에서 막 본당에 돌아온 신학생과 함께 건반 뚜껑을 열 찰나 전화가 울렸다. 정리해고, 직장 폐쇄, 노조 설립 등의 이유로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 6명이 광화문 전광판 위에 올랐다는 소식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거리에서 뒹군 이들이다. 내가 아는 사람도 끼어 있다. 언질조차 없었고 새 소임지 적응을 이유로 그가 먹고 자는 농성장을 한동안 찾지 못했더랬다.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만 길게 이어질 뿐 받질 않는다. 통화가 되면 지금 당장 가 봐야 할 텐데 어쩐다. 성주간 전례는 어쩌고. 힘내라고, 기도하겠다고 매가리 없는 소리나 해야 할까. 몇 초 사이 오만 가지 생각이 나들었다. 다행히 그는 받질 않았다. 그랬다.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당장에 달려갈 수 없어도 착신 목록에 이름이라도 올렸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날 밤 십자가 경배 내내 그의 전화기에 찍혀 있을 내 이름 석 자가 어른거렸다. 알량한 알리바이가 창피했고 나를 붙든 부활찬송이 야속했다.

   
▲ 부활성야미사 시작 때에 부활찬송을 부른다. (이미지 출처 = 창5동 성당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이튿날 8분 남짓한 부활찬송을 끊어질 듯 말 듯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숨죽이던 어둠 속에서 누군가 키득거렸다. 어둡던 성전에 불이 들어오자 여전히 웃음을 참고 있는 성가단원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하필 지난해까지 빈 공장과 거리의 천막에서 그와 함께 봉헌했던 부활미사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공장을 빼앗기던 몇 해 전 봄날 철문에 매미처럼 매달려 울먹이던 그가, 오랜 거리 생활로 몸이 축난 때문인지 골다공증 판정을 받고 들고온 검은 비닐 봉투 속 칼슘제가 생각난 것은 또 왜일까. 그를 만나기 전, 직장 폐쇄 직후 지금보다 10년은 젊었던 앳된 그가 한강변 송신탑 위에 서 있던 오래된 기사 속 사진이 떠오른 까닭은 무엇일까.

부활찬송을 간신히 이어가던 그 시간, 그도 광장에서 열렸다는 성야미사를 내려다봤을 것이다. 건널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광장과 전광판, 본당의 나와 고공의 그, 하늘 위 사투와 서투른 부활찬송, 이 메울 수 없는 거리감은 도대체 무엇인가. 미사가 끝나고 나는 인사를 건네는 신자들에게 웃음으로 화답했고 그 비싸다는 달걀을 어묵 국물과 함께 나눠 먹었다. 곡기를 끊은 지 만 하루가 되었을 전광판 위의 허기는 생각나지 않았다. 정말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같은 부활 밤이었지만 그의 밤과 나의 밤은 그렇게 멀고 달랐다.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으로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나라는 온통 선거 이야기지만 전광판 위 좁다란 공간만은 예외다. 광장의 힘이 이룬 ‘촛불대선’ 그 어디에도 정작 자신들과 같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는 농성자의 인터뷰 마디마디에는 소외감보다 더 깊은 절망감이 배어 나왔다. 맨 앞에서 누구보다 앞서 촛불을 지켰던 그들이지만 겨울과 봄을 넘기며 이어진 광장의 촛불 그 어디에서도 단 한 번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노동자라는 말보다 생활인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액수가 얼마건 기업에 소요되는 경비는 투자요 임금을 포함한 노동자들에게 쓰이는 것은 비용인 전광판 아래 세상은 여전했다. 광장은 열렸지만 철창과 고공뿐, 그들의 자리는 없었다. 광장과 공장, 시민과 노동자, 민주주의와 사람은 그렇게 절대 만날 일 없는 두 행성처럼 멀고도 달랐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광장에서 보낸 그의 석 달과 본당신부 노릇을 하던 나의 석 달 역시 달랐다. 강론대 위에서 떠든 고난과 가난에는 살과 피의 사람이 없었고 광장과 천막을 거쳐 하늘까지 올라야 했던 그의 이름도 없었다. 어떻게 지내냐는 사람이 사람에게 묻는 안부는 빼먹고 나는 전례와 종교라는 껍데기만을 핥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종을 구원하려 아들을 넘겨준 사랑"에 아담의 죄마저 "복된 탓"으로 기억하는 절절한 부활찬송 어디에도 내가 구할 사람은 정작 없었던 게다. 찬송의 절정인 땅과 하늘이 하나가 되고 인간과 신이 결합된 그 밤의 노래는 그렇게 끝났다.

   
▲ 6명의 노동자가 고공농성 중인 광화문 세광빌딩. 노동자들은 4월 14일부터 40미터 높이 전광판 뒤편 아래 좁은 통로에서 비닐과 침낭으로 버티고 있다. ⓒ송기훈

부활 대축일, 세월호참사 3주기를 대축일미사와 함께 기억했다. 종이배를 접고 커다란 리본으로 야트막한 천장의 제대를 채웠다. 세월호가 3년 만에 물 밖으로 건져져 뭍으로 올라온 그날, 3년 전 성주간 수요일 아이들과 함께 죽었던 스승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우연은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웅성거렸다. 이번 성주간도 스승은 높이 매달렸다. 성금요일 오후 3시, 제 발로 하늘 위에 자신을 가둔 그들 사이에 섞여서 말이다. 부활은 왔지만 오지 않은 것이고 광장은 열렸지만 아직 열리지 않은 것이다. 신과 인간이 결합된 밤을 노래했지만 끝내 마치지 못한 것이며 하늘과 땅이 하나 된 밤은 여전히 어두운 것이다. 스승은 이번에도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 광장에서 올려다본 전광판 위가 아니라, 성전 설교대 위에서 죄책감으로 기억하는 고공의 밤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겪어 낸 생존자로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도 인간이 하느님의 고난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이라는 고난에 동참한 것이다.

평일미사 강론 때면 꾹꾹 눌러쓰는 만년필. 고공 위의 그가 몇 해 전 동료들과 함께 내게 선물한 것이다. 그의 이름을 강론 노트에 적어 본다. 해고 노동자, 민주노총 금속노조 콜텍지회장, 이인근.

곧 대선이다. 가슴에 이름을 빼곡히 적어 둔 후보가 있을까. 민주가 아니라 이인근의 민주, 정의가 아니라 이인근을 위한 정의, 나라가 아니라 이인근의 나라, 내일이 아니라 이인근의 내일, 사람이 아니라 이인근 같은 이름들 말이다.

 
 
장동훈 신부

인천교구 중1동 성당 주임
인천교회사연구소 소장
인천가톨릭대학교 교회사 교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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