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연중 기획 - 여성 1]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2017년 6개의 주제로 연중 기획을 진행합니다. 6월 기획의 주제는 ‘여성’이며, 세 사람의 인터뷰 기사로 가톨릭교회와 페미니즘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 편집자

기사 순서

1. 청년 여성 신자 박유형 씨
2. 주교회의 여성소위 총무 박은미 씨
3. 문학 연구자 조현지 씨

가톨릭과 페미니즘. 언뜻 봐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둘 사이에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떠오른다. 낙태 문제만 하더라도 여성의 선택권을 중시하는 페미니즘과 낙태를 죄로 여기는 천주교가 함께하기 어려워 보인다. 둘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년 신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박유형 씨(안젤라)는 가톨릭 신자와 여성주의자라는 정체성이 자신 안에 공존하면서 계속 싸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가톨릭 신자이면서 페미니즘을 지향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둘 다가 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혼란스럽다. 답을 내기 어렵다. 그는 죽을 때까지 결론을 못 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톨릭 신자와 페미니스트, 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삶에서 계속된다. 예를 들어 그는 친구가 낙태할 때 보호자로 병원에 간 적이 있다. 그는 결단을 해야 했고, “기도를 정말 많이 했다.”

그는 낙태를 합법화하는 논의가 유용하고 낙태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신자로서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그에게는 가톨릭 신앙과 페미니즘, 모두 중요하지만 교회 안에서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는 “나의 신앙이 부정당할 것 같은 위협감”을 느낀다고 했다.

신앙 차원에서 보면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에만 집중하면 되지만, 사회에서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와 얽히게 된다. ‘나’와 ‘여성’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 성차별이나 여성혐오에 관한 문제가 있을 때,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의심받는다고 했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도 날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 되지, 여자라서 차별받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시각이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신앙이 있다는 것과 여성으로서 말하는 것이 다 중요한데, 사람들은 여자의 말에만 신경을 곤두세운다.

▲ 박유형 씨 (사진 제공 = 박유형)

20년 안에 여성 신자 없어질지도

박유형 씨는 유아세례를 받았고, 교회가 가르치는 성윤리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청년성서모임에서 봉사하고,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다. 천주교 신자와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면서도, 신앙을 놓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10살, 첫영성체 교리교육 때 ‘하느님은 남자예요, 여자예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수녀님은 ‘여자도, 남자도 아니’라고 답했다. 이 말이 그에게 강하게 남았다. 하느님이 초월적 존재라는 것, 그리고 교회가 여성의 삶에 무지하고 때론 억압적이더라도 하느님은 그러지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이 그를 교회에 남게 한다.

“그리스도인은 굉장히 급진적인 평등의식을 가지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 빈부와 상관없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모두 평등하다는 감각이 생겨요. 이런 정신을 따른다면 교회는 그 어떤 공동체보다 더 빨리 성평등을 이룰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데 막상 교회 단체에서 일할 때는 그 평등의식은 없고, 사회에서 통용되는 감각으로 일해요.”

그의 말대로 현실은 다르다. 그는 미사 때 여자라서 복사를 할 수 없었고, 여성 성체분배자 앞의 줄은 짧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목회장은 늘 남자고, 주변 청년들은 혼전 성관계와 신앙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는 교회 안의 중년 여성들과 달리 젊은 세대는 교회에서 여성으로서 부당함을 느끼고,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했다. “20년 안에 여성 신자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교회는 이걸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특히 교회에서 모성을 강조하는 것이 여성을 어렵게 한다고 했다. 성가정을 이루는 것은 미덕이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대모험인 한국 사회”에서 출산과 모성을 강조하는 것이 때론 억압으로 느껴진다. 당사자에게는 고민 자체가 고통스럽다. 본당 신부를 찾아간들 뾰족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면서 바쁘게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멀어진다.

교회 안에 있어도 여성 평신도가 교회에 기여할 방법이 제한적이라는 문제도 있다. 그는 청년성서모임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언니들을 보며, 이들이 나중에 결혼하고 육아를 하다가 다시 본당에서 이전처럼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의 교회 환경을 두고 상상하면, 언니들이 본당에서 자모회장이나 제대 꽃꽂이 봉사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대 차림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이것이 여성의 일이라고 굳어지고 반복되는 것은 문제다.

박 씨는 여성이 자신의 일을 한정 짓고 스스로가 가질 수 있는 권위를 제한하는 암묵적 분위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보기에 여성이 이것을 겸손, 스스로를 낮추는 것과 혼동하기 때문에 앞에 나서는 일은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는 교회 일을 결정할 때 여성 평신도가 참여할 제도가 있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위원회를 꾸릴 때 남녀 성비를 5대5로 맞추자고 제안했다. 이를 기계적 평등이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그는 이 정도도 못하면 어떻게 평등을 이야기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 젊은 세대는 교회에서 여성으로서 부당함을 느끼고 교회를 떠나고 있다. 20년 뒤에 여성 신자가 남아 있을까? ⓒ왕기리 기자

교회 안에 여성의 다양한 서사가 필요하다

인터뷰 중 교회 안에 여성에 관한 논의가 너무 빈곤하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을 보며 그가 얼마나 답답해하는지 느껴졌다. 그는 신앙에 있어 여성 롤모델이 없다고 했다. 성인이나 수녀 말고 직장과 가정생활을 하면서도 교회 안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현실 속 여성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 여성 평신도가 쓴 영성 책이 있을까요?”

교회에서 여성에 관한 논의가 많아지는 것은 여러 모로 중요하다. 그는 교회에서 여성혐오, 성차별에 관해 지적하면 아무도 지지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며, 이런 문제제기를 유별나서라 아니라 정당하다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고 믿을 구석이 생기면 좋겠다고 했다.

지금 만약 여성으로서 부당한 일을 당하면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을 때 같이 고민하자고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교회는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회 안에서 여성의 서사가 너무 부족하다고도 지적했다. 교회에는 수녀 혹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성가정을 이룬 여성의 서사뿐이라며, 독신, 평신도로서 재속회에 있는 여성,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 등의 이야기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낙태 문제에 관해서도 교회가 대화를 열어 두길 바랐다. 페미니즘에서 여성의 선택을 존중하자는 것이 낙태를 해도 상관없다, 찬성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여성주의 단체도 가톨릭이 매우 보수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둘 다를 겪은 그는 “중간이 텅 빈 것 같다”며 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특별 희년에 낙태죄를 용서하라면서 “그 사정을 제대로 이해할 때에만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박 씨는 이 말을 좋아한다.

“왜 문제가 일어났는지 제대로 보는 것, 교회가 해야 하는 작업이 이런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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