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영 대표 인터뷰 – 가톨릭여성연구원 20주년

다양한 전공의 여성 연구자들이 모여 시작된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가여연)이 올해 스무 살이 됐다. 20년 동안 대표 역할을 해 온 최혜영 수녀는 20주년 논문집에 쓴 ‘품 신학’의 모색’에서 “가톨릭 여성의 이름으로 강의하고 집필할 수 있는 연구자 스무 명만 있으면 교회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가여연은 1996년 12월 20일 최혜영 수녀(성심수녀회,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교내외 가톨릭 여성 교수와 강사 10여 명이 동참해 만들어졌다. 신앙생활을 더욱 깊이 있게 하고, 전문가로서 교회에 참여하며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뜻이었다.

가여연의 활동 영역은 강의, 기고부터 중, 노년기 여성 워크숍까지 매우 다양하다. 2006-2013년에는 서울 정동에 문화 공간 ‘품사랑’을 운영했다. 2004년부터 거의 매년 심포지엄을 열고 있으며, 2008년부터 연구자 세미나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최 수녀는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자문기구로 1997년 만들어진 가톨릭여성신학회(가여신)와 가여연은 “보완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되도록 두 모임에 모두 참석하려고 힘써 왔다. 그는 “한순희 수녀가 두 단체가 시작된 취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가여연 회원이면서 가여신의 초대 회장을 맡았으며, 강영옥 선생 역시 오랜 기간 가여신 총무를 맡았다”고 설명했다.

▲ 최혜영 수녀(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대표) ⓒ강한 기자

“20년이 지났지만 변화가 너무 없다”

최혜영 수녀는 “학위 과정을 마친 가톨릭 여성 연구자들이 가여연 모임에 오면 같은 연구자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서로 힘을 많이 받게 됐다”고 돌아봤다. 그는 가여연만의 심도 깊은 연구 작업이 부족했던 점, 안정적 연구를 위한 재정적 여건을 마련하지 못한 점, 더 많은 젊은 연구자들을 키워 내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최 수녀는 주교회의가 여성소위원회를 만들기로 결정한 2000년 무렵이 한국 천주교에서 ‘여성’에 대한 관심이 특히 컸던 때로 기억하지만, 10년 넘는 시간 동안 “변화가 너무 없다”고 말했다.

올해 7명이 모인 가여연 연구팀은 엘리사벳 쉬슬러 피오렌자의 “동등자 제자직”을 읽고 있다고 한다. 루마니아 출신의 여성주의 신학자 피오렌자가 쓴 “동등자 제자직”(1993)은 가톨릭교회에서 여성의 위치와 영성, 여성 성직 서품 등을 다루고 있다.

“그 책은 저희가 20년 전 읽었던 책 중 하나예요. 출판되기 전의 번역본을 받아 읽고 함께 토론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한국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 그 내용이 옛날 것 같지 않은 거예요. 그 정도로 큰 변화는 없었던 것이지요. 20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하는 반성도 했습니다.”

▲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은 9월 24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상생과 희망의 영성'을 주제로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열었다. (사진 제공 = 최금자)

바티칸 지시만 기다리지 말고
한국 교회도 ‘여성부제직’ 연구 나서길

최 수녀는 최근 교황청에서 여성부제직 연구위원회가 만들어진 데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주교회의 차원에서 여성부제직, 사제직에 대한 신학적 연구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티칸에서 지시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름의 활발한 신학적 논의가 시작되었으면 한다.”

또 한국에서 ‘여성혐오’ 논쟁이 벌어지며 페미니즘도 주목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흐름과 함께 교회 여성에게도 ‘새로운 바람’이 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고 했다. 그는 “가톨릭교회는 천천히 움직이지만 한번 움직이면 매우 흐름이 빠르다”고 말했다.

‘여성혐오’(misogyny) 논란에 관해 최 수녀는 “갈등과 대립 양상이 약자에 대한 혐오, 분노의 그릇된 표출로 나타났다고 본다”면서 “여성학, 여성신학의 목표는 모든 경계를 넘어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것인데 서로 배척하고 비방을 일삼는 것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여성신학의 지향은 신약성경 갈라티아서 3장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평등과 조화라면서,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 생명, 나아가 자연 생명에 대한 감수성, 평화에 대한 감수성이 교회 전반에 퍼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최 수녀는 최근 한국 천주교가 “사회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아 보수화, 중산층화되는 경향이 크고 고령화 현상도 두드러지는 것 같다”며 “진보적인 여성 의식을 가지고 설립된 여성단체들도 답보 상태인 것 같고, 교회 안에서 주 활동층을 차지했던 30-40대 여성 신자들도 맞벌이, 육아 등으로 활동이 많이 위축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가여연에 대해서도 “기운이 좀 빠졌었고 역량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20주년을 맞아 가여연에서 활동했던 연구자들이 가톨릭교회와 관련된 논문을 쓴 것을 모으자 금세 13편이 모여 논문집을 큰 어려움 없이 만들었다. 논문집은 크게 ‘성경’, ‘교회’, ‘사회’와 여성 사이의 주제를 다루며, 강은희, 장경, 강선남, 조수정, 강영옥 씨 등 평신도 학자들과 김영선, 송종례, 최혜영 수녀의 글이 실렸다.

최 수녀는 “앞으로는 교회 여성을 위해 가여연이 꼭 해야 할 작업, 가여연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을 찾아 꾸준히 연구활동을 펴도록 하겠다”면서, “연 1회 열리는 심포지엄을 좀 더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그 연구성과를 책으로 담아 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가여연이 “교회 내 건강한 비판 그룹”으로서 “교회가 깨어 있도록 하는 데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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