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째 천주교 열사 합동추모미사

▲ 19일 저녁 천주교 열사 합동추모미사가 열렸다. ⓒ배선영 기자

이정순(카타리나)은 1991년 5월 18일 연세대 앞 굴다리 위 철길에서 몸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분신했다. 시위 중에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명지대 학생 강경대의 장례 행렬을 지켜본 뒤였다. 같은 날 전남 보성과 광주에서 학생과 버스기사의 분신 시도가 있었다.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7남매 중 장녀였던 이정순은 중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대신 버스안내양으로, 가발공장, 인천 한독산업에서 노동자로 살며 동생들 학비를 댔다. 결혼 뒤 자녀 1남 3녀를 두었으나, 이혼했다. 여전히 가난했고, 식당 일을 하면서 틈틈이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무엇이 평범한 주부였던 그를 분신까지 하게 했을까. 그는 분신 하루 전에 다니던 가락동 본당 사무실에 주임신부에게 전해 달라며 유서 4통을 남겼다. 이 중 ‘정치인께 드림’이란 제목의 유서에 “5,6공 죄인들은 다 내가 짊어지고 갑니다. 백골단 해체, 군사독재는 물러나시오”라고 썼다.

‘폭력살인규탄과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천주교대책회의’의 주관으로 그의 장례미사가 봉헌됐다. 강론에서 함세웅 신부는 “누구보다 순수하고 진실했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이 고귀한 죽음을 본받아 자유와 민주, 통일을 위해 노력하자”고 말했다.

이정순을 비롯해 천주교 열사 19명의 합동추모미사가 19일 저녁 서울 정동 작은형제회 성당에서 봉헌됐다.

▲ 19일 저녁 봉헌된 천주교 열사 합동추모미사에서 열사들에게 헌화하는 모습 ⓒ배선영 기자

미사에는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 등 90여 명이 함께했다. 미사는 작은형제회 유이규 신부, 성 골롬반외방선교회 김종근 신부, 한국 순교복자성직수도회 정성훈, 이상윤 신부, 예수회 김정욱, 박종인 신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서영섭 신부가 공동집전했다.

박종인 신부는 강론에서 열사들은 하느님을 닮았었고, 그리스도인의 본 모습을 보여 준 분들이라며, 이들의 부활을 열렬히 기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파견성가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천주교 열사 합동추모미사’ 준비에 참여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불안함 속에서 투쟁이 일상화된 노동자,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싸우는 장애인권운동, 만덕지구 재개발과 같은 가난과 무관심 속에 고통받는 이들, 세월호참사. 백남기 농민 등 연대가 필요한 곳이 많다며, “신앙의 열사의 정신이 우리 삶 안에 생명을 꽃 피워내고 부활할 수 있도록 청한다”고 했다.

미사에 참여한 양의석 학생(24, 에텔노스)은 5.18 당시 기록물을 보고 광주가 자신에게 큰 의미로 자리 잡아, 조성만 등 많은 열사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소속이다. 지난 16일 광주대교구 5.18 기념 미사에도 다녀왔다. 이어 그는 5.18 당시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일이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자신이 민중이나 군인이었다면 어땠을 지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고 했다.

천주교 열사 합동추모미사는 1999년부터 18년째 봉헌하고 있다. 19명의 열사 중에는 "녹슬은 해방구"의 작가 권운상과 김태훈, 박승희, 이재호 등 학생운동가가 있고, 2000년대에 죽은 이로는 성 골롬반외방선교회 소속으로 한국에서 활동했던 서 로베르토 신부, 장애인활동가 최옥란, 노동운동가 최종만, 교사 출신으로 전국농민회총연맹 초대 의장을 지낸 권종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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