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김지환] "이 땅에 정의를 : 함세웅 신부의 시대 증언", 한인섭, 창비, 2018

“불의의 시대에 정의는 무엇인가, 비인간화가 판치는 시대에 인간다움을 위한 노력은 무엇인가, 무지의 시대에 지혜로운 삶은 무엇인가. 아집과 편집으로 가두어 놓은 자신의 동굴과 담벽을 허물어 사랑으로 함께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함께 찬찬히 풀어 가는 즐거운 독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 한인섭, '책이 나오기까지' 중에서

"이 땅에 정의를 : 함세웅 신부의 시대 증언", 한인섭, 창비, 2018. (표지 제공 = 창비)

한 시대를 헤쳐 간 예언자적 삶의 기록들

“노인 한 명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 것과 같다”라는 격언이 있다. 한 사람의 생애 안에는 세상을 둘러싼 엄청난 양의 정보가 담겨 있다는 이야기다. 장삼이사 보통 사람의 삶도 그러할진대, 함세웅 신부처럼 한 시대를 꾹꾹 눌러 담아 살아온 인물의 삶에는 이루 헤아리기 힘든 시대의 정보가 함축되어 있겠다. 그의 미처 못 다한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할 텐데, 이 책이 그 결과물이다. 2018년 함 신부의 금경축을 맞아 발행된 이 책은 한인섭 서울대 교수와 대담 형식으로 꾸며지는데, 2013년 초부터 6개월 동안 13차례 대담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 책에서는 함세웅 신부의 전 생애를 다룬다. 그는 소신학교를 거쳐 대신학교를 마치고 로마에 유학하고 사제 서품을 받은 뒤 귀국해 연희동 성당 보좌로 사목활동을 시작한다. 응암동 성당 주임으로 있던 1974년 지학순 주교의 구속 사건을 계기로 정의구현사제단을 결성했으며,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다가 두 차례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과 <평화방송> 초대 사장, 가톨릭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다. 또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았고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을 만들었으며, 현재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민족문제연구소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함 신부의 다채로운 인생 여정은 700여 쪽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에 다 담아내기 힘들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을 조명해 주는데, 이는 우리 현대사와 교회의 모습과 깊게 맞닿아 있다.

험난한 시절의 믿음직한 언덕

중학교때는 복사 일을 하고, 소신학교와 대신학교, 유학을 거치면서 처음에는 순탄한 사제 준비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엄혹했던 유신 ‘겨울 공화국’은 그가 교회 안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서울대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사건에 이어 1974년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지학순 주교 구속사건 등은 그의 삶을 바꾸며 민주화운동에 매진하게 한다.

특히 지학순 주교의 구속은 역사적인 정의구현사제단을 결성하게 한다. 그는 사제단의 이름과 관련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정의라고 꼭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저는 신학적으로 크게 공감했어요. 왜냐하면 정의가 하느님의 대표적 속성이거든요. 사랑의 하느님도 정의의 하느님에 내포된 것이에요. 정의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선과 악을 판단하시고, 구원을 주시고, 그에 따라 정의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정의구현’을 선택했습니다.”(77쪽)

그는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때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1979년 가톨릭농민회 사건으로 두 차례 투옥된다. 그에게 옥중 생활이란 거듭나게 하는 장소였다. 감옥은 대학이자 치열한 신앙의 단련장이 된다. “영성적으로 감옥은 제가 정화되는 곳이라고 느꼈어요. 감옥은 수련소, 또 제2의 신학교라 여기면서 감옥의 영성이라는 것을 생각했어요.”

함세웅 신부는 모두가 꺼렸던 인혁당 가족들을 껴안고, 최종길 교수의 고문치사도 폭로했으며, 민주회복국민회의, 동일방직과 YH 노동자들,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그리고 1987년 박종철고문치사 사건까지 항상 역경의 시대 한복판에서 자리했다. 민주화의 길 어디에서나 등장했으며, 오랫동안 억압받는 이들에게 기댈 언덕이었다.

함 신부는 사제들이 역사의 현장에 뛰어들어간 1차적 계기는 지학순 주교의 구속이었지만, 더욱 깊은 이유는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던 학생들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학생들을 무척 좋아했으며, 종교를 초월해 독재에 맞서 싸우는 모든 청년은 동지요 친구였다고 한다.

지금은 그때 열혈청년들이 여러모로 영웅시되고 많은 모험담이 회자되지만, 당시 대부분 20대였던 그들에게는 얼마나 큰 두려움이 있겠는가. 그런 시절 함 신부와 같은 버팀목은 얼마나 큰 힘이었을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가톨릭교회의 내부 고발자

교회는 위기의 시대를 지탱해 준 보루였으며, 민주화 운동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 도도한 민주화와 개혁의 흐름에 발목을 잡기도 했다. 함 신부의 정의를 향한 여정은 정권의 탄압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는 각종 음해와 비난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이 책에는 건드리기 어렵고도 불편한 교회와 관련한 뒷얘기도 많이 담겨 있다. 특히 함 신부는 1975년 사제단 활동이 주춤했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네. 침체기죠. 주교회의가 방해했다고 하는 게 낫겠어요. 그 당시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 등, 지금은 돌아가신 분들이 궤변을 얼마나 펼치셨는지…. 베트남전 이후 정치적으로 완전히 정부 편이 되었어요.”(166쪽)

함세웅 신부는 대담 곳곳에서 해방신학, 여성신학 등 전 세계 가톨릭의 변화에 귀 기울이며, 교회의 구습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을 적시한다. 교회가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는 요즘 귀 기울일 대목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이 대담에서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 함 신부는 보수적인 제도교회와 교회 상층부를 비판하지만,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점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정의는 현재 진행 중, 더욱 정의로운 세상을 향해

함 신부가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민주화 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은 피땀을 흘려 가며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주의를 튼실하게 발전시켰다. 하지만 우리가 이뤄 놓은 민주주의가 박제되고, 기념물로 전락할 때 우리는 위기를 맞곤 했다. 특히 지난 9년은 넋 놓은 순간 호되게 반동의 역풍을 맞은 시기다.

이런 대담에 대한 독법은 자칫 한 시대의 이야기를 회고하는 차원에 머물 때가 있다. 그럴 때 기록은 무의미해진다. 대담의 수많은 이야기는 한 시대의 성취이기도 하지만 또한 산적한 미완의 과제를 남겨 놓는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통합적으로 읽어 낼 때, 함세웅 신부의 이 대담집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는 지금 교회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좌표를 설정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해 주리라 믿는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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