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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어둠 속의 꿈, 페루지아의 감옥 터[성 프란치스코의 길, 가난의 길 - 7]
황인수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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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14  18: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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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고 있는 숙소에서 아시시 역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아침 기도를 드리고 느긋하게 역에 갔더니 아시시 역은 따로 역무원이 없이 카페 주인이 커피도 팔고 열차 표도 파는 곳이었다. 열차 표를 파는 카페 주인, 이거 멋있다 싶었는데 페루지아 표를 달라고 그랬더니 지금 페루지아 가는 열차가 들어오고 있단다. 어이쿠! 간이역이라 정차 시간도 짧은데다 표는 아직 사지도 않았는데 열차는 막 출발한다고 하고…….

카페 손님 하나가 밖에 나가 기관차를 잡고 있는 동안 우리는 부리나케 표를 사서 열차에 올랐다. 정신없이 차에 올라 차창 밖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으니 절로 웃음이 난다. 열차를 타는 이도 사람이고 열차를 움직이는 이도 사람이다. 1분 1초도 에누리가 없는 다른 나라들보다는 사람들이 숨 돌릴 여유가 있는 이 나라의 방식이 나는 좋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위해 “어이, 쥬세, 조금만 기다려줘” 기관사와 대화하면서 기차를 잡고 있는 카페 손님이나 표를 급하게 내주는 동안에도 페루지아에서 갈 만한 데 이야기를 해주는 카페 주인, 이렇게 한국에서 온 순례자들과 아시시의 사람들이 만나는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사람을 위해 시스템이 잠시 기다려주는 일이 이탈리아 아니면 또 어디서 가능하겠는가. 열차가 슬슬 움직이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이젠 이탈리아 커피를 못 마신 게 조금 아쉽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던가.

   
▲ 페루지아 역에 있는 움브리아의 그림 지도 ⓒ김선명

   
▲ 기념품 가게의 십자군 미니어처 ⓒ김선명

페루지아는 움브리아 주의 주도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사시던 시절, 아시시와 페루지아는 경쟁 관계였다고 한다. 성인이 스물한 살이 되던 1202년 11월 두 도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프란치스코는 여기 참전했다가 산 조반니 다리 전투에서 포로가 되어 페루지아로 압송된다.

두 해 전에는 아시시에서 내전이 일어나 아시시가 코무네(comune), 즉 자치도시가 되는데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시민들과 귀족들 사이에 싸움이 잦았고 인근 도시들끼리도 다툼이 많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페루지아로 끌려온 프란치스코는 1년 정도 감옥에 갇혀 있다가 병에 걸렸고 이듬해인 1203년 풀려난다.

우리는 지금 그가 갇혀 있던 감옥 터를 둘러보러 가는 길이다. 부유한 시민 계급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기사로 무공을 세워 출세하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칼을 들고 나선 프란치스코는 좌절을 겪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세속의 꿈, 개인의 야심이 벽에 부딪힌 것이다.

   
▲ 성 위에서 바라본 페루지아 시내 ⓒ김선명

감옥 체험은 프란치스코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꿈을 꾸는 사람은 누구나 벽에 부딪힌다. 그리고 그 벽 앞에서 꿈의 진실이 가려지게 된다. 거짓된 꿈이었다면 접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는 꿈을 새롭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함께 붙잡힌 동료들은 감옥에서 모두 풀이 죽어 있었는데 프란치스코만은 기쁨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벽을 만났을 때 우리는 좌절하게 된다. 내가 정말 사랑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묻게 되는 때가 바로 이때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품은 사랑이 강하다면 그 사랑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른다. 나에 대한 사랑보다 그 무엇에 대한 사랑이 강하다면 그 사랑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변화시킬 때 다른 사람들도 변화시키게 된다.

   
▲ 프란치스코가 갇힌 감옥 터로 여겨지는 메르카토 코페르토(Mercato coperto) 부근 ⓒ김선명
평범과 비범을 가르는 것은 결국 무엇을 사랑하느냐보다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아닐까. 프란치스코의 일생에는 이때 말고도 또 한 번의 감옥 체험이 있다. 다미아노 성당에서 부르심을 듣고 아버지의 재산을 팔아 성당을 수리하다가 집안의 감옥에 갇혔던 일이다.

그러나 이 두 번의 체험 이후에도 그의 생애에는 여러 번의 감옥이 등장한다. 남의 손에 의해 갇힌 것이 아니라 제 발로 들어간 감옥이다. 아시시의 수바시오 산 중턱에 있는 은둔소는 카르체리(carceri) 은둔소라고 불리는데 카르체리는 감옥이라는 뜻이다. 포지오부스토네(Poggio bustone), 라 베르나(La Verna), 그레치오(Greccio) 등 여러 곳에서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꿈을 다시 들여다보기 위해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곳에서 나올 때 그가 새로워진 꿈으로 기쁘게 길을 나섰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밖에도 페루지아에는 성인의 흔적을 담고 있는 곳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중앙광장은 꽈뜨로 노벰브레(4 Novembre)광장이라고도 불리는데 그것은 11월 4일이 1차 세계대전의 종전일이면서 이탈리아의 국경일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성인이 페루지아 사람들에게 평화를 설교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또 광장 한 켠의 주교좌성당(성 라우렌시오 성당) 부근에는 한때 교황들의 거처였고 다섯 번의 콘클라베가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가 있다. 이곳은 프란치스코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인 1228년,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추기경 회의를 소집해서 그의 시성을 논의한 곳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따가운 햇살 아래 돌아다녔더니 어지간히 지치는 것 같다. 메르카토 코페르토(Mercato coperto) 부근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 시킨다. 종일 걸은 뒤끝이라 뭉근해진 다리도 쉴 겸 해서다. 갇혀 있던 감옥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았던 프란치스코의 힘이 지친 순례자들에게도 더해지기를!

   
▲ 페루지아의 커피 한 잔 ⓒ김선명

 
 

황인수 신부 (이냐시오)
성바오로수도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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