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 가난의 길 - 6]

그대 집 앞으로 나를 이끄는 / 길고 구불구불한 길.
결코 사라지지 않을 길 / 전에 보았던 그 길이
언제나 나를 여기 / 그대 집 앞으로 이끌어 오네.

비틀즈의 노래 ‘길고 구불구불한 길(The long and winding road)’을 흥얼거리며 리보토르토(Rivotorto)로 가는 길을 걷는다. 리보토르토는 ‘구불구불한 냇물’이라는 뜻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첫 공동체가 있었던 곳. 지금은 그 자리에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의 공동체가 있다.

인생을 흔히 길에 비유하지만 1181년에 태어나 1226년에 세상을 떠난 성인의 짧은 지상 생애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기 위해 그분을 따라 길을 걷는 여정이었다. 그 길은 결코 순탄한 길은 아니었으니 그의 시작이 ‘구불구불한 냇물’에서부터였던 것은 의미가 있는 셈이다. 1205년 스물넷의 나이로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의 부름을 들은 뒤 그는 허물어져 가는 성당을 수리하기도 하고 나환자들에게 봉사하기도 하면서 길을 찾는다. 그가 첫 두 형제를 만나 이곳 리보토르토에 공동체를 꾸린 것은 1208년 4월 16일의 일이었다.

▲ 리보토르토의 성모 마리아 수도원 ⓒ김선명

수도원 성당에 들어서니 막 주일 미사가 시작되는 참이다. 입당성가는 이사야서 55장의 말씀에 곡을 붙인 ‘내 모든 말(Ogni mia parola)’. 유학 시절 배웠던 귀에 익은 성가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은 땅을 적시고 새싹을 틔우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네. 나의 말도 내가 보낸 뜻을 이루지 않고는 내게 돌아오지 않으리.”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그 말씀을 듣는다. 내용은 다르지만 한 분에게서 오는 말씀, 그것이 소명이다. 프란치스코에게 그 말씀은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 앞에서 들은 “가서 나의 집을 재건하여라”였다. 그리고 이제 그 말씀을 함께 지키고 살 형제들이 생긴 것이다. 프란치스코의 첫 두 동료는 퀸타발레의 베르나르도와 피에트로 카타니인데 처음으로 성인에게 합류한 퀸타발레의 베르나르도에 대해서는 상세한 일화가 전한다.

어느 날 베르나르도는 몰래 하느님의 사람에게 가서 자기 결심을 털어놓고 어느 저녁에 만나기로 하였다. 프란치스코는 기쁨에 사로잡혀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에게는 아직 함께할 동료가 없었는데 베르나르도가 거룩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자 프란치스코는 크게 기뻐하며 베르나르도의 집에 가서 온 밤을 함께 지냈다.

▲ 아시시 시내에 있는 베르나르도의 집 ⓒ김선명

베르나르도가 그에게 물었다. “누가 많든 적든 주인의 재산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소유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프란치스코는, 받은 것을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베르나르도가 말했다. “형제님, 그렇다면 재산을 내게 주신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나의 재산 모두를 형제의 생각에 적당하다고 여기는 방식대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성인이 말했다. “날이 밝는 대로 교회에 가서 복음서를 찾아봅시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가르치셨는지 알아봅시다.”

날이 밝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형제가 되기를 원하던 피에트로라는 사람을 데리고 아시시 광장 근처의 산 니콜로라는 성당에 들어갔다. 그들은 학식이 많지 않아 복음서에서 세상을 포기하는 대목이 어디인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복음서를 처음 펼 때 당신의 뜻을 보여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 리보토르토 성당 안에 재현된 당시 움막 ⓒ김선명
리보토르토의 수도원 성당에는 프란치스코가 여기 살던 당시의 움막을 재현해 놓았다. 움막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가운데 움막의 벽에는 하얀 십자가가 붙어 있다. 십자가 옆에 붙어 있는 명패에는 프란치스코와 첫 동료들에게 십자가가 기도서였다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은 아시시 근처의 버려진 움막을 거처로 삼았다. 하지만 시간 기도를 바칠 기도서가 없었으므로 밤낮으로 그리스도 십자가의 책을 펼쳐 읽고 또 읽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계속 선포하라고 하신 사부의 말씀과 모범을 따랐다.”

처음에 십자가 위에서 프란치스코를 부르셨던 예수님은 이렇게 그의 형제들에게도 말씀하시게 된다. 사랑은 사람의 마음속에 살지만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산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나의 형제자매들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내 형제자매들 속에 사신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프란치스코의 공동체가 이곳 리보토르토에 살던 어느 밤에 한 형제가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나 죽겠다!” 등불을 밝힌 프란치스코가 무슨 까닭인지 묻자 그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라고 대답했다. 성인은 먹을 것을 준비하여 모두가 함께 먹도록 했다. 울던 형제가 무안을 당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은 결코 전에 살던 것처럼 살지 못한다. 그들은 형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의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맛세오는 라 베르나를 떠나는 프란치스코를 회상하면서 “그분은 우리 마음을 가지고 가버렸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프란치스코의 공동체가 어떤 사랑으로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길은 멀고 구불구불하지만, 가는 길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것은 정다운 길동무, 같은 뜻을 서로의 마음에 품고 가는 형제가 있기 때문이다. 손수건을 머리에 얹고 아픈 다리를 주물러 가며 앞서 가는 형제가 있기 때문이다.

▲ 포르치운쿨라로 가는 길 ⓒ김선명

 
 

황인수 신부 (이냐시오)
성바오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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