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 가난의 길 - 3]

▲ 산타마리아 마죠레 성당의 십자가 경당 ⓒ김선명
키에사 누오바 광장에서 아랫길을 따라 내려오면 ‘산타마리아 마죠레’(Santa Maria Maggiore) 성당이 나온 다. 우리말로 옮기면 ‘성모 마리아 대성당’ 정도가 될까. 과거에 아시시의 주교좌였던 이 성당 옆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에서 꼭 기억해야 할 장소인 주교관이 있다.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와 아들 프란치스코 사이에 재판이 있었던 곳이다.

부자지간에 재판을 벌인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상상하기 어려운 일, 소송을 건 아버지도 대단하지만 아들 프란치스코의 대응도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재판관인 구이도 주교와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 앞에서 “이제부터 나는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을 아버지라 부를 것입니다” 선언한다. 그러고선 돈을 돌려주는 것도 모자라 입고 있던 옷가지마저 다 벗어버리는 아들이라니!

어렸을 때부터 키워온 아들이니 아버지는 아들의 성격을 잘 알았으리라. 온 아시시가 떠들썩하게 재판을 건 것은 아마도 미리 강경하게 나가서 아들을 주저앉힐 심산에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들은 단호하게 아버지를 떠난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돈도 옷도 다 돌려주고 완전한 가난을 선택한 것이다. 성인의 생애에서 이 대목에 이르면 ‘적빈’(赤貧)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매우 가난하다’는 뜻인 이 말은 한자를 그대로 풀면 ‘붉은 가난’이라는 뜻이다. 아마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발가숭이 몸뚱이뿐이라는 말일 테니 옷을 다 벗어버리고 선 프란치스코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말을 찾기도 어려우리라. 이후 성인의 생애는 평생 더욱 가난해지는 길을 따라 걷는 여정이었다.

가난을 사는 첫째 방법은 밖으로 뻗치는 욕망을 끊는 것이다. 내게 없는 것을 거머쥐고 싶은 욕망을 끊어버리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끊어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이미 갖고 있는 것, 지키고 싶은 것을 버리는 일이 뒤따른다. 앞의 것이 밖으로 향하는 욕심을 버리는 일이라면 뒤의 것은 내 안에 숨은 욕심을 비우는 일이다. 시기와 질투라는 원초적인 감정은 이것과 연관된다. 내게 없는 것을 가진 누군가를 향한 감정이 시기(猜忌)라면 내게 있는 것을 누가 가져갈지 모른다는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질투(嫉妬)기 때문이다.

성인이 공동체 생활을 시작할 무렵 아시시의 구이도 주교가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있으니 여러분의 생활은 너무 어렵고 힘든 것 같다”고 하자 프란치스코가 대답한 말은 이것이었다.

“주교님, 우리가 재물을 소유하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무기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다툼과 문제가 생기는 것은 부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는 것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도 방해를 받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물질적인 부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내게서 넘실대는 욕망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해도 내 안에 숨은 욕심은 알아차리기 어려운 법이다. 그것으로 넘어진 뒤에야 그것이 내 안에 있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가 남긴 많은 일화들 가운데 형제들의 내심을 알고 있었다는 예지력이나 병든 사람들을 낫게 한 기적 이야기들보다도 더 감동적인 것은 자신에게 한없이 진실해지려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다.

어느 겨울 프란치스코는 눈을 뭉쳐 일곱 개의 덩어리를 만든다. 그러고서는 자신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이보게. 이 뚱뚱한 눈덩이는 자네의 아내네. 그리고 네 개의 눈덩이는 두 아들과 두 딸이야. 남은 두 개는 하인과 하녀지. 프란치스코, 어서 이들 모두에게 옷을 입혀줘! 이들이 추위에 떨고 있지 않은가? 그들을 돌보는 일이 곤란하다면 하느님 섬기는 일에만 마음을 쓰게.”

이때 그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사랑에 대한 그리움? 친밀감에 대한 아쉬움? 분명한 것은 성인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끝없이 비워가는 가난의 여정을 걸어갔다는 것이다. 주교관 마당, 두 손을 포개어 가슴에 얹고 고개를 숙인 성인의 동상 너머 푸른 하늘에 그가 사랑했던 제비 자매들이 자유로이 하늘을 날고 있다.

▲ 옷가지를 돌려주는 프란치스코 ⓒ김선명
팔백여 년 전 어느 날 이 주교관 마당에서 있었을 그 사건 장면을 떠올려보면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가 유난히 눈에 밟힌다. 피에트로는 돈과 옷가지를 주워들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때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해할 수 없는 아들, 사람들의 수군거림,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부정당하는 자리. 그러나 아버지는 땅에 흩어진 돈과 옷가지를 주워 제 집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그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이길 수 없다. 자연의 법칙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아들의 편이고 세월이 흐르면 그 아들 역시 제 아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제 부모의 욕심에 사로잡힌 아바타로 살고 있는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며 책상머리에 붙잡혀 있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의 집안 감옥에 갇혀 있는 프란치스코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다.

프란치스코가 단호하게 육신의 아버지를 떠났을 때 그 자리에는 그의 알몸을 가려준 인물이 있었다. 아시시의 구이도 주교. 실상 그는 이 지상에서 그를 받아준 새로운 아버지였다. 이는 프란치스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이런 정신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계시다.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두려움과 설렘으로 조바심 내는 젊음을 다독여 주셨던 분들……. 주교관 마당을 떠나며 내 삶 속의 아버지, 어머니들, 나의 구이도 주교님들께 깊이 고개 숙인다.
 

 
 

황인수 신부 (이냐시오)
성바오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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