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초상이 났습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돌아가신 경우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어찌해야 할지 당황하게 됩니다. 며칠 전에 알고 지내는 학생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친척 분이 돌아가셨는데 가톨릭식으로 장례를 치르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집안 어른들이 잘 모르고 계신 것 같아 전화를 했다고 하더군요.

가톨릭이 한국 문화에 가장 잘 토착화된 부분이 있다면 장례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참고로, 지난 속풀이 ‘연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나요?’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가족을 잃은 이웃의 어려움을 망자의 임종 직후부터 장례를 마칠 때까지 함께 동반해 주는 것이 우리나라 천주교 장례의 기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가의 분위기도,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소리를 들으며 슬픔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진 연도 가락이 오가며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분위기입니다. 먼저 가신 영혼에게 위로를 주는 시편 가락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영혼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살아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천주교의 장례 문화에는 죽음을 통해 일어나는 상실의 깊은 슬픔을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으면서, 우리 문화가 지녀온 장례 풍습이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상주와 가족은 오로지 빈소를 찾아오는 손님들만 잘 맞이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교회 공동체에서 봉사하러 나오신 분들이 정성을 다해서 도움을 주십니다.

하지만 초상이 나면 부음을 알려야 하는 것은 상주 가족들입니다. 도대체 누구에게 먼저 알리고 상의를 해야 할까요? 현실적으로 두 가지 경우를 고려해봐야겠습니다. 우선, 돌아가신 분이나 그 가족이 소속 성당에서 꾸준히 신앙생활을 한 경우입니다. 다음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즉, 돌아가신 분도 그 가족도 소속 성당에서 존재감이 없이 지낸 경우입니다.

먼저 전자의 경우는, 본당 사무실에 부음을 알리면 됩니다(연령회장님을 아신다면 그분께 바로 알리고 상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가족, 친지 분들 중에 성당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성직자나 수도자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연령회장급 신자 분이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을 찾아보시는 게 바람직합니다. 초상을 당한 가족이 소속 성당에서 사실상 냉담 기간이 길었다면 사람들이 잘 모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교적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참고로 ‘잃어버린 교적을 찾아서’도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 대해서는 소속 본당 사제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평소에 친분이 없었으니 자연스런 반응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고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분들 중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신 분이 계시면 그분을 통해 교회 공동체와 연락을 취하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병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운명한 경우라면, 그 병원 원목실에 문의하실 수 있습니다. 요즘은 웬만한 종합병원의 경우 보통 천주교 원목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세례는 받았으나 소속 본당이 불분명하다 하더라도 원목 사제의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병자의 임종이 임박한 상황에서 신속히 연락이 이뤄지면 대세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고인의 가족이 세례만 받았을 뿐, 실제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은지 오래됐고, 친인척 중에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이가 없는데, 그렇다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운명한 상황도 아닐 때(즉 원목실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을 때)가 가톨릭교회로부터 도움받기 어려운 경우라 하겠습니다. 만약 이런 경우라면 요즘 한창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장례회사들 중에 가톨릭계 상조회사와 계약을 맺어 장례를 치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조회사가 교회 공동체와 비교해서 어느 수준까지 도와줄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나중에 천주교식 장례를 고려하시는 분들은 어서 교회 공동체와 화해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 재개하시라는 말씀입니다. 고인이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고, 가족 중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보내드려야 할 때를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말고를 고민하는 게 이기적인 것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잘 이해해 보신다면, 결국 우리의 신앙은 죽음을 잘 준비하고 삶의 새로운 국면, 곧 부활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가만히 계시지 말고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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