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고해소(고백소)나 사적인 자리를 통해 가끔씩 듣게 되는 신자 분들의 불편한 마음 중에 하나가 미사 때 사제의 강론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성당으로 미사를 다니고 싶다거나 실제로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러다 이런 질문까지 받게 되니 좀 당황스럽군요.
우리의 현실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말씀하시듯, 회중은 “강론을 듣는 것이 어렵고”, 사제는 “강론을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135항). 그래서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조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체성사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은총과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라도 인내하며 미사에 참여하시라는 정도일 겁니다.
그래도 너무 힘들다 하시면 다른 동네의 성당에 다니시는 걸 말리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알아두시면 좋을 것이 미사가 곧 강론은 아니란 사실입니다. 미사는 아시다시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을 행하고자 세상에 파견되는 데 의의를 두는 전례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신자 분들이 강론과 관계하여 가지게 되는 불만의 원인을 세 가지 정도로 짚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원인은, 마치 미사 전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강론인 듯이 미사를 대하는 사제의 태도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강론이 너무 길게 늘어져버리는 것입니다. 설령 강론이 길어도 아주 흥미진진하여 회중들을 사로잡는다고 해도, 그때는 사제의 말이 “신앙의 거행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고 맙니다. 강론이 너무 길어지면 전례 거행의 두 가지 특징, 곧 전례 거행의 조화와 리듬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복음의 기쁨> 138항).
“전례의 상황 안에서 이루어지는 강론은 아버지께 드리는 봉헌의 일부이고, 전례 거행 중에 그리스도께서 부어 주시는 은총을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론은 삶을 변화시키는(* 우리가 그리스도가 되기 때문입니다―필자 주) 성찬례 안에서 회중과 강론자를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로 이끌어야 합니다. 이는 주님의 종보다는 주님께서 더 빛나시도록 강론자가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의 기쁨> 138항)
특별히 말씀의 은사를 받은 몇몇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사제들은 내심 ‘강론만 없으면’ 사제 생활이 좀 덜 고달프겠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사제들은 주일 미사 강론을 열심히 준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예 주일 미사 강론도 안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제가 있다면 그는 갈 수 없는 나라를 꿈꾸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제들에게 강론은 부담스럽습니다. 유익하면서도 재미있게 복음의 이야기를 풀어 설명하기 위해 사제들은 당연히 강론의 소재로 쓰일 성경 구절 앞에서 성령을 청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원인은, 강론이 길지 않다고 해도 신자들에게 복음의 가르침을 전달해 주는 데 소홀하다는 것에, 곧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 전례 때 듣게 되는 성경 구절에는 핵심 메시지가 있어서, 이것을 잡아내어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여러 가지 생각들을 모두 거론했다가는 횡설수설하게 됩니다.
바로 앞서 언급했듯이, 이것은 사제가 성경 구절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벌어집니다. 기도에 덧붙여 필요한 것은, 사제들이 일상을 통해 신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마음을 열고 성찰해야 좀 더 유익한 강론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원인은, 강론이 간결하고 핵심을 짚어 주며 유익해도, 사제 자신이 소박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결국 회중들에게 그만큼 힘 있게 말씀을 전달할 수 없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말은 저리 잘하는데 사는 건 왜 그럴까’ 하는 실망감이 쌓이면 미워지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 까닭에 거룩하고 친절하며 겸손하게 마음을 열고 신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제의 강론은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것입니다.
답을 드리기보다는 신자 분들이 느끼는 불편한 마음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헤아리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제 무덤을 판 기분이 듭니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게 됩니다.
사제의 강론이 나의 견해와 다를 때, 여러분도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과연 오늘의 성경 구절을 가지고 기도하는가’, ‘핵심 메시지를 오늘 내 상황에서 무엇으로 이해했는가’ 등에 나름대로 답을 구해보시기 바랍니다.
강론자와 나의 견해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미사 전례 중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친교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요즘엔 미사 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거나, 그냥 나가는 것도 아니고 한 마디 던지고 나가는 신자 분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반면에 미사 중에는 인내하고 미사 후에 사제를 찾아와 따질 것을 따지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후자의 경우가 성숙한 태도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냥 수동적으로 사제가 이런 말을 하니 그게 맞겠지, 저런 말을 하면 또 그게 맞겠거니 하며 수긍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모습이 건강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화를 통해 우리는 진실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자극을 주며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 분들도 성령을 청하시고 복음의 빛 안에서 성경을 읽고 조금이라도 기도하신 후 사목자의 가르침이 내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이 다른 것이라면 내 쪽에서 생활을 개선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참, 잊지 마셔야 할 것이 또 있습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제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그가 회심하여 거룩하고 겸손하게 살기를 청해 주세요.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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