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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의 이름도 세례명으로 사용할 수 있나요[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한국을 방문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지와 일정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며, 이곳저곳에서 방문을 원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옵니다. 혹은 어느 곳은 방문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도 있습니다. 어느 곳에 가시든 정해진 일정을 살짝 비껴난 ‘돌출 방문’을 잘 하시는 교황의 스타일로 봐서, 저도 ‘그분이 혹시나 우리 동네에?’ 이처럼 가뭄에 단비를 기다리는 마음과 같은 기대를 하게 됩니다만 그분 나름의 계획을 쉽게 점치지 못하겠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수 있으니 그만두는 게 좋겠다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교황이 방한을 하게 된 몇 가지 중요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을 앞두고 복자(라틴어 Beatus/Beata, 영어 Blessed)들의 이름도 세례명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에게 속풀이를 해드리고자 합니다.

   
▲ 천주교 주교회의가 공개한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초상화 일부.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윤지충 바오로, 주문모 야고보 신부, 강완숙 골룸바, 유중철 요한, 이성례 마리아, 이시임 안나, 이순이 루갈다, 황일광 시몬 (출처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보도자료)

엄밀히 따지면, 세례성사를 받을 때 세례명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참고로  2013년 10월 11일자 ‘세례명을 바꿀 수 있나요?’를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세례면 충분합니다. 그리스도교 문화와 동떨어진 동양의 문화와는 달리 유럽 문화에는 오래 전부터 성경의 인물, 혹은 모범적인 삶을 살아 교회가 공식적으로 존경을 표한 성인들의 이름으로, 태어난 아기들의 이름을 지어왔습니다. 그리스도교 문화가 한창일 때는 아기의 출생 신고가 교회에서 이루어졌으니, 즉 아기에게 세례를 주면서 이름도 함께 부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출생 신고시 적어 넣는 이름과 세례명이 같습니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과 같이 비그리스도교 전통의 나라에서는 세례를 받을 때 별도로 세례명을 부여받아 왔습니다. 초기에 왔던 선교사들이 세례성사로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를 뚜렷이 하기 위해 취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새로 태어남’만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세례명은 신자로서 살아가면서 내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자각을 끊임없이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비유럽권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될 당시부터 이어져온 전통으로 인해 세례시 자신의 성명에 덧붙여 세례명을 부여하는 일은 일반적인 세례 풍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세례명이 성경의 인물이나 교회가 신앙의 모범적인 인물이라고 시성식을 통해 공식적으로 선언한 성인들의 이름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의 행적을 잘 알고 있다면, 신앙인으로 귀감이 되어 교회가 시복 심사에 넣은 인물인 가경자*(오늘날 사용하는 공식 호칭은 ‘하느님의 종’입니다)의 이름도 세례명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인물이 복자가 되고, 나중에 성인품에 오르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 이름으로 세례 받은 이가 살아있는 동안에 그 가경자께서 성인품에 오르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미 복자품에 오른 분들의 이름이야 당연히 세례명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름을 선택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인물들이 삶을 통해 보여준 덕을 본받아 살아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조금 정리해 보면, 신앙의 모범이 될 만한 삶을 살았던 한 인물이 성인품에 오르기 위해 밟게 되는 기본 절차는 하느님의 종(시복시성 절차가 시작된 단계)을 거쳐 복자가 되고, 나중에 시성 절차를 거쳐 성인품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이 시복되기 위해서는 그 인물의 전구를 통해 일어난 기적이 두 가지 이상 확인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성이 되기 위해서는 그 복자의 전구로 인해 일어난 기적이 두 가지 이상 확인되어야 하고요. 하지만 하느님의 종 124위 같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이들은 그들이 순교했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그것 자체를 기적으로 간주하여 기적 심사를 면제 받을 수 있습니다. 목숨을 내어놓고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번에 시복되시는 124위의 시성은 시간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예전에는 교황이 시복 · 시성식을 모두 집행하였습니다. 하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복에 관한 규정을 바꾸고 나서는 시성식만 교황이 집전하게 되었습니다. 시복식은 지역교회의 주교가 교황의 위임을 받아 집전합니다. 그러니 이번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통해 시복식이 직접 이루어지는 것은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가 103위 복자를 시성했고, 앞으로 124위가 시성될 수 있으니 한국 교회는 언젠가는 227명의 성인 보유국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 우리의 신앙이 성숙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들 한국 교회의 신앙 선조들이 보여주신 불굴의 의지가 과연 우리에게 있는지 되물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인원수가 많다보니 대표적인 몇 분 외에는 어떤 분이 계신지도 잘 모릅니다.

태어날 아기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고민하시는 분들이 계시면, 우선 우리나라 성인, 복자들의 우리말 이름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참고 : 한국의 가톨릭 성인, 하느님의 종 124위). 지충, 문모, 약종, 완숙, 연이, 조이 등 신앙의 모범이 되신 분들의 이름을 아기에게 주는 것도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 가경자(可敬者) : ‘공경할 만한 (사람)’이라는 뜻의 라틴어 venerabilis에서 유래한 말로, 시복 심사 단계에 있는 인물에게 잠정적으로 붙이던 존칭이라고 합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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