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저는 여섯 살 때 유아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바오로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요. 언젠가 너무 흔해 세례명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게 가능한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바오로의 스페인어 이름이 파블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이름이 참 마음에 들기도 했고, 또 바오로와 같으니 그때부터 혼자 세례명을 파블로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세례명을 소개할 때는 파블로라고 합니다. 이게 가능한지요?”

바로 답변을 드리기보다는 다른 이야기부터 해드리지요. 제게는 클레멘스 성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학교 선배가 있습니다. 모험심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저희 학교는 가톨릭계 학교라서 교목실이 있었는데 선배는 이곳에서 개설됐던 교리반을 통해 가톨릭에 입문했습니다.

선배는 세례를 앞두고 세례명으로 뭘 선택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평소 친분이 있던 정○○ 신부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신부님은 그렇게 마땅한 세례명 찾기가 어려우면 그냥 선배 본인 이름 석 자로 하라고 하셨더랍니다. 이리하여 선배는 자기 이름을 가지고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어쩐 일로 김수환 추기경께서 오셔서 세례식 주례를 하셨답니다. 세례자 이름표에 청하는 세례명 없이 자기 이름 달랑 세 글자만 쓰인 이 학생을 보시고 추기경께서는 어떤 세례명을 원하느냐고 물으셨겠지요. 그래서 선배는 그냥 자기 이름을 댔습니다. 그랬더니 추기경님께서 조용히 물으셨답니다. “자네, 정○○ 신부가 보냈지?”

여기서 언급된 정○○ 신부님은 제 수도회 선배 사제이십니다. 이분은 김 추기경님과 돈독한 우정을 나눴기에, 추기경께서는 이 사제가 어떤 행태로 사목을 하는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선배 이전에 이미 이런 선례를 경험하셨던 것입니다. 추기경께서 “세례 때 성인 이름 하나 더 받는 것은 훌륭한 선물일세”라고 하시는 이 말에 선배는 그 순간 떠오르는 이름이 클레멘스여서, 클레멘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톨릭 문화가 역사적으로 깊이 뿌리내린 세계와는 달리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 대부분은 부모님이 주시는 이름이, 교회가 성인이나 공경의 대상으로 삼은 인물들의 이름이 아니라서, 세례 받을 때 자기 본래 이름 외에 세례명을 더 받게 됩니다. 세례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들어서는 입문 성사로서 일생동안 한 번으로 영구적인 효과를 가지기에, 세례명도 한 번 받은 것을 함부로 바꿀 수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례명을 바꾼다기보다는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데, 그것은 견진성사 때 추가적으로 다른 세례명을 신청할 때 가능합니다. 예를 들자면, 세례명이 ‘요한’인데 견진 때 ‘바오로’를 추가해서 ‘요한 바오로’로 불리거나 혹은 ‘바오로’만 사용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도명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제 대부님의 세례명은 ‘도미니코’인데, 수도자가 되셔서는 ‘십자가의 로사리오 수사’로 불리시더군요. 그리고 서원(첫 서원, 종신서원)을 거치면서 세례명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입회 당시에는 ‘요셉’, 첫 서원 때 ‘마리아’를 추가, 종신서원 때 ‘예수’를 붙여서 예수-마리아-요셉의 성 가정을 이름으로 삼은 수도자들도 있습니다.

덧붙여 세례명을 바꿀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면, 교황으로 선출된 경우입니다. 현 교황님은 실명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Jorge Mario Bergoglio)이지만,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염두하여 ‘프란치스코’라는 성인명을 선택하셨고 그렇게 불리고 계십니다.

이렇게 살펴본 여러 경우 중에 일반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는 기회는 견진성사 때로 보입니다. 그러니 꼭 다른 이름을 선택하고 싶으면 견진성사를 받으면서 이름을 덧붙이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만 모두 다 거룩한 성인과 복자들의 이름인데, 정히 그렇게 구분을 한다면 아무리 성인이라도 좀 서글퍼하시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긴 있습니다. 제 지인 한 분은 이런 억울한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분이 유아 세례를 받을 때 아버지는 고심 끝에, 열쇠공의 수호자 발도메로(Baldomerus, 서기 650년경 활동) 성인을 선택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이름을 본당에 알렸는데 사무장님이 그런 성인은 들어본 적 없다고 사도 바르톨로메오로 어림해서 이름을 오기한 경우가 좀 심각한 사례입니다. 자라서 확인해 봤더니 발도메로라는 성인이 실제로 있고, 자신은 그때까지 잘못 불려왔다는 걸 확인하게 됐답니다. 이런 경우라면 이름을 정정할 충분한 사유가 된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세례명을 공식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교회법원에 문의를 하시고 절차를 밟으시길 권합니다.

아주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세례명을 바꾸려는 데는 세례명의 음감이 좋지 않아 바꾼다거나 글머리의 질문을 하신 분처럼 너무 흔한 이름이라 변경하고 싶다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자기 세례명을 다른 방식으로 불러보는 것도 좋은 방법으로 여겨집니다. 질문하신 분처럼, 바오로를 파블로로 부르는 식으로 말입니다. 나라마다 동일한 인물이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예를 들어, 요한은 죤(영어권), 쟝(불어권), 후안(스페인어권), 죠반니(이탈리아권), 얀(북유럽), 이반(러시아권)으로 불리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세례명의 성인들은 그만큼 모범이 되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세례명이 특이하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쉽게 불릴수록 그만큼 더 자주 성인의 삶을 기억하게 될 것이고, 그때마다 신앙에 대해 질문하며 더 깊이 있게 신앙을 키워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수호성인이 어떤 분인지는 모두 알고 계신 거죠?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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