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유럽 대성당에서
- 박춘식
01
도깨비가 불쑥 뛰어나올 듯한 유럽 어느 대성당
600년 된 대리석 뚜껑을 노크하니
대주교의 황금 지팡이가 일어선다
높다란 주교관 근엄한 얼굴이 으스스하다
시인이, 이곳에는 구경꾼만 보입니다 하니
02
성당을 높이 세우면 모두 하느님 공경 열심히 하고
머리 푹 숙여 고분고분하리라 믿었다고
젊은 주교에게 물려줄 때 높은 집만 주었을 뿐
낮은 겸손 겸손을 물려주지 못하였다고
나의 거만함이 다음 주교의 오만함으로 이어지고
백 년 후 오만무례가 로마 교황청 지붕까지 올라갔다고
주교나 수녀 신부나 신자 한통속으로 거만 또 거만
하늘을 외면하고 서로 무쇠 모가지 자랑만 했다고
03
~ 그래서 구경거리 빈집이 되었군요
~ 그 아무도 기도하려고 여기 오지 않을 겁니다
슬픔에 짓눌린 대주교에게 COREA의 한 시인이 또 말한다
~ 조금 전 이곳 주교들 신부들을 유심히 쳐다보았는데
~ 아시아 사람을 동물로 보는 눈동자가 더러 있었고
~ 대대로 이어 온 목덜미들이 탕탕 쇳덩이였어요
04
메아 꿀빠, 메아 꿀빠, 메아 막씨마 꿀빠* 대주교는
지팡이 번쩍 세워보더니 자기 무덤으로 들어간다
* “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는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의 라틴어입니다.
<출처> 반시인 박춘식 미발표 신작 시 (2013년 6월)
성지 순례 길에서 본 대성전, 한두 마디로 이렇다저렇다 말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찬탄이 나오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어둡고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과거였다, 하는 생각은 인간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하느님 눈으로 볼 때는 과거와 미래를 모자이크하여 현재를 섭리하시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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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半)시인 경북 칠곡 출생.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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