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석 신부의 신학산책 - 1]

종교와 신앙은 흔히 동의어(同義語)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종교는 하나의 신앙을 위하여 발생하여 그 신앙을 시공(時空) 안에 지속시키는 역할을 하는 공동체와 그것이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요구하는 모든 언어를 의미한다. 흔히 그것을 신앙언어라 부른다. 신앙언어는 하나의 신앙이 발산하고 표현하는 모든 의사소통의 방식을 의미한다. 경전(經典)을 비롯하여 예배의례(禮拜儀禮)와 공동체가 지닌 제도(制度)와 법 등 하나의 신앙이 스스로를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모든 수단을 의미한다.

종교에는 다음 세 가지의 구성 요소가 있다. 경전(經典)과 의례(儀禮)와 공동체(共同體)이다. 경전은 어느 특정 신앙을 위해 잣대가 되는 신앙체험들을 문자로 수록한 문서들이다. 의례는 신앙체험을 발생시키는 다양한 예배 행위들을 의미한다. 공동체는 그 종교에 몸담은 사람들의 조직체를 뜻한다. 조직체이기에 거기에는 믿음의 내용을 표현한 교의(敎義)가 있고, 그 공동체가 규범으로 삼은 제도와 법이 있다.

 ⓒ한상봉 기자

신앙이라는 단어로 우리는 그 신앙 창시자의 깨달음과 그것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 안에 발생한 구원을 위한 자각 및 실천을 의미한다.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신앙의 창시자가 더 큰 생명과 더 큰 자유를 위한 도약의 수단으로 신앙을 제시하였다는 뜻이다. 구원은 인간 생명을 긍정하면서, 인류에게 개방적이고 희망적인 체험을 발생시키는 현상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공자(孔子)의 가르침에서는 군자(君子)에 해당되는 구원의 인간상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모세가 한 체험이고,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싯달다가 한 체험이며, 그리스도 신앙을 발생시킨 예수의 체험을 의미한다. 모세의 체험을 역사 안에 보존하고, 전달하며 체현(體現)시키기 위해 발생한 구약 경전과 유대교라는 종교였다. 고타마 싯달다가 깨달은 바를 역사 안에 현존시키는 것이 불교이다. 예수의 가르침과 실천을 시간과 공간 안에 전달하는 그리스도교이다.

그 창시자의 체험에 동조하고 그것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그들이 그 체험을 기록하여 경전으로 남겼다. 공동체는 원초에 있었던 것과 같은 체험을 사람들 안에 재현(再現)시키는 의례를 만들어 행한다. 종교들은 이렇게 발생하였다. 종교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신앙을 보급 존속시키기 위하여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종교는 그것이 경전, 의례, 공동체의 제도와 법 등으로 신앙 혹은 구원의 언어를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신앙언어는 인간 공동체가 만든 것이기에, 시대적, 문화적 한계를 지녔다. 하나의 종교가 그 한계를 무시하고, 과거 한 시대의 것을 절대화하면서 강요하면, 우리는 그 종교가 근본주의에 빠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종교가 제시하는 신앙은 왜곡 제시된다. 종교가 언어의 문화적 한계를 외면하고, 과거 한 시대의 언어를 절대화하면, 그 종교는 식민주의적 독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종교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화를 만나면서, 그 본연의 사명, 곧 그 신앙언어로 말미암은 구원의 체험을 사람들에게 실효성 있게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쇄신해야 한다. 과거의 언어를 반복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창조적으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4)를 소집하면서 교회의 급선무는 현대화, 곧 aggionamento라고 말하였다. 그 시대를 이해하고, 그 시대에 통용될 수 있는 신앙언어를 발굴해야 한다는 말이다.

종교 공동체도 인간의 공동체이기에 잘못 판단하고, 잘못 실천할 수 있다. “Errare humanum est(인간은 잘못 하는 것이다.)”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다. 2000년 3월 7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기억과 화해’라는 문서를 발표하여, 교회가 과거 범한 잘못들에 대해 고백한 일이 있다. 십자군 원정 때 예루살렘을 약탈한 것,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을 박해한 것, 종교재판에서 폭력을 사용한 것, 신대륙에서 무차별 학살을 방조한 것 등을 고백하고 용서와 화해를 청한 것이다.
 

서공석 신부 (부산교구 원로사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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