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여성운동 심포지엄 박정우 신부 발표문 중 ‘미래를 위한 제언’

▲ 박정우 신부 ⓒ문양효숙 기자

1990년대 중반 북경여성대회를 전후로 불었던 가톨릭교회 내의 여성운동 바람은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수그러든 느낌이다. 그동안 가톨릭 여성단체들이 요구해왔던 주교회의 내 여성사목전담기구 설치는 2000년 추계 주교회의의 승인으로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여성소위원회’의 결성으로 열매를 맺었고, 각 본당의 여성 사목위원 비율 20-30% 제도화 요구는 더 이상 교회 내의 실질적인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 여성신학이나 여성신학에 근거한 교회의 변화에 대한 관심도 이에 대한 강연이나 출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이 줄어들었다.

사실 유교적 가부장제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있고, 남성 성직자 중심의 한국 가톨릭교회 안에서 여성주의 단체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자기 자리를 찾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또한 교적 신자 비율 60%와 적극적 활동 신자 비율 70%이상을 차지하는 가톨릭 여성들이 교회 안에서 남성과 동등한 존엄성과 가치를 인정받고 여성 고유의 특성을 지닌 리더십을 발휘하여 교회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교회의 사명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가톨릭 여성단체들의 역할과 노력이 아직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주의적 시각을 가진 가톨릭 여성단체들에게 우선적으로 제안하고 싶은 방향은 위의 논문에서 조사된 회원들의 평가에서 지적된 것처럼 남성들, 특히 사제들과 협력하고 남성들도 동참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라는 것이다. 여성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수의 의식 있는 여성들만의 게토화 된 단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함께 동등한 존엄성을 지니고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라는 의식을 확산시켜 교회와 사회를 그러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들, 특히 교회 변화에 영향이 큰 사제들과 협력함으로써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남녀가 조화로운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분위기를 확산시킬 수 있어야 하겠다. 초기의 천여공이 그러했던 것처럼 여성단체의 리더들이 본당 특강에 초대받아 여성의 경험과 문제에 더욱 공감을 줄 수 있는 강의나 피정 지도를 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회원들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여성 단체에 사제들이 참여한다는 것은 또한 교도권과 연결되고, 여성 단체의 활동이 ‘교회의 이름으로’ 공적인 인정을 받음으로써 보다 많은 신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주교의 인정이나 사제의 참여 없는 교회 단체는 교회의 정신과 동떨어진 왜곡된 방향으로 흐르기 쉽고, 가톨릭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로서 공신력을 인정받고 확산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둘째는 평신도가 주도하는 여성 단체가 교회나 사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인정받고 영향력 있는 단체가 되기 위해서는 그 리더십이 권위 있게 인정받을 수 있는 요소를 갖추어야 하며, 이를 위한 평신도 여성 인재 양성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제나 수도자는 교회의 공식적인 양성과정을 거치고 교회의 승인을 받은 사람들이고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평신도 여성이 교회 안에서 그런 인정과 권위를 지닌 리더십을 얻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자격, 이를테면 신학박사 등 학문적인 성취를 보여주는 학위를 얻거나, 헌신적인 봉사나 희생 혹은 높은 사회적 성취를 통해 객관적으로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을 받는 과정이 요청된다. 구체적으로 예전에도 필자가 제안한 바 있지만 교회 여성단체들이 힘을 모아서 여성 리더십을 키울 수 있는 ‘기금’을 만들어서 젊은 여성 인재들을 지원하고, 또 이들이 활동 할 수 있는 안정된 직장으로서 재정적으로 튼튼한 ‘연구소’가 여럿 있으면 좋겠다. 1994년 세워진 우리신학연구소나 2002년 세워진 한님성서연구소가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구에서 젊은 사제들을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듯이, 이들도 각 분야에서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교회 안에서 전문가로서, 오피니언 리더로서, 영성 지도자로서, 저술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셋째로, 여전히 가부장적인 여성 차별이나 여성 억압, 여성에 대해 폭력적인 문화 안에서 희생되는 여성들이 많은 현실에서 가톨릭 여성단체의 회원들이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을 개선하고 고통 받는 여성들을 돕기 위한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활동해야 할 것이다. 매 맞는 아내, 성폭력, 미혼모, 여성의 성 상품화, 직장에서의 성희롱, 출산과 양육 그리고 가사 노동에 있어서 여성에게 부과되는 과중한 책임, 다문화 가정 여성들의 문화적, 사회적 적응 등 여성들의 인간 존엄성을 존중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문제들을 개선하고, 양성평등과 여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일에 다른 사회활동 단체와 연대하여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톨릭 여성단체 회원들 뿐 아니라 본당을 포함하여 모든 신자들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남성의 리더십과 협력할 수 있는 여성의 리더십으로서 ‘모성의 리더십’의 가치를 재발견하기를 강조하고 싶다. 이 주제에 대해 강영옥, <천주교 여성 지도력의 특성과 한계>, 《종교연구》 제58집 한국종교학회, 2010년 봄, 157~177쪽을 참고하라.

근대 여성주의에서는 ‘모성 이데올로기’ 혹은 ‘모성 신화’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모성’에 대한 강조를 가부장제의 여성 억압 기제라고 비판하면서 평가 절하해 왔고, ‘모성’을 높이 평가하는 가톨릭교회와도 대립해 왔다. 하지만 강영옥은 여성지도력으로서의 모성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나 개인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과 협력할 수 있는 공동체성이 더욱 강조되는 21세기 사회로 접어들면서 페미니즘의 논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모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여성 지도력에 대한 탐구과정에서 생겨났다. 여기서 모성은 근대 모성의 한계를 벗어나 여성 지도력의 원천으로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하였다. 가부장적 사회가 지닌 모성의 여성 억압적 측면 이면에 여성의 고유한 역할 실천 속에 형성된 모성적 가치가 여성 지도력의 원천으로 재발견되었다. 모성 양식 속에 축적되어 온 “돌봄”(caring)이라고 하는 여성주의적 가치를 여성주의 윤리 시각에서 접근하면서 모성에 대한 적극적 사유가 시작되었다.

모성은 혈연관계 안에서의 이기적 가족주의의 틀을 벗어나 모성적 실천이 축적해 온 모성의 사회적 속성과 관련하여 여성 지도력과 연결될 수 있음이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생명을 보호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모성 지도력이 새롭게 거론되면서 “생명을 보호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역할을 강조하는 천주교 사상은 이 시대가 요청하는 여성 지도력과 만날 수 있는 지점으로 다시 주목된다.

천주교가 지향하는 지도력은 본래 섬김의 지도력이다. 가장 잘 섬길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섬김을 기반으로 하는 천주교의 여성 지도력은 무한경쟁시대의 승자로서가 아니라 약자를 돌보고 보살피며 아픔을 치유시키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모성 지도력이라고 결론지울 수 있다. 천주교 여성 지도력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간성의 상실을 막는 사회적 모성으로 확장될 수 있다. 온전한 인간성을 지향하는 그러한 천주교 여성 지도력은 21세기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지도력과도 상통한다.

가톨릭이 남성 성직자 위주이기에 여성 지도력이 발휘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본당에서 여성의 모성적 리더십을 인식하고 있는 사제들이 여성 수도자들, 여성 총구역장들과 반장들, 여성 단체장들과 협력하면서 수평적인 조화와 섬김과 돌봄을 통한 모성 리더십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모습들을 적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물론 본당의 최종적인 결정권은 남성인 사제가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에 불만을 가질 수 있고 가부장적이고 독단적인 본당 신부로 인한 부정적인 경험으로 상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 사제의 인격적 미성숙의 문제이지, 여성이 최고 결정권자가 될 수 없다고 하는 제도적인 문제가 우선적인 이유는 아니다. 여성이 어떤 공동체 안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여성이 항상 합리적이고 수평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고 민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품성을 지닌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리더십을 존중하지 않는 사제들이 있다면 그들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변화시키는 것도 여성 리더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여성에게 사제직의 문을 열지 않는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는 것과는 별개로, 여성의 존엄에 대해 깨어있는 가톨릭 여성들이 하느님께서 여성에게 맡겨주신 여성만의 고유한 선물을 잘 활용하여 세상에 하느님의 어머니와 같은 따뜻함과 섬김과 돌봄과 지혜의 여성성을 드러내며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고 복음의 메시지를 더욱 생생하게 전하는 역할을 하기를 희망한다.

박정우 신부 (후고,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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