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신학자]

제가 사는 곳 애틀랜타(Atlanta)는 미국 남부 조지아(Georgia)주의 주도입니다. 1996년 올림픽 이후 빠르게 성장하여 지금은 동남부 정치, 경제, 교통의 요지가 되었지만, 봄철과 여름철에는 아직도 오래 된 미국 남부 시골의 면모를 드러내는 곳이지요. 층층나무가 하얀 꽃망울을 터뜨릴 때 쯤 되면 도시 전체가 할머니 무르팍처럼 따뜻하고 나른해져 어디든 드러누워 곤한 잠이라도 청해야 할 듯합니다. 녹음이 짙어지면 후끈후끈한 공기 끝자락에 달콤한 복숭아 향기와 비릿한 삶은 땅콩 냄새가 묻어오지요. 끈적하게 말을 끌며 끝을 살짝 들어 올리는 특이한 남부 억양으로 “Hi Y’all~~”하고 인사하는 사람 좋은 이들과 마주치면, 아! 이래서 애틀랜타를 “남부식 친절함(southern hospitality)”의 본고장이라 부르나 보다 싶어요.

그러나 애틀랜타는 고통스런 약탈과 착취와 차별의 역사를 안고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도시 곳곳엔 아직도 인종분리와 차별의 흔적이 발견되고 또 지속되고 있지요. 노예제에서 해방되었으나 저임금 노동자로 지난한 삶을 꾸려가야 했던 흑인들, 그 흑인들과 이웃이 되는 것이 싫어 교외로 이사했던 백인들, 새롭게 다수가 되어가고 있으나 이민자 차별 정책에 묶여 경제적 교육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라틴계 · 아시아계 이민자들, 이 다양한 삶의 질곡들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얽혀 있는 도시가 바로 애틀랜타입니다.

‘우머니즘’ 제시한 앨리스 워커의 삶과 대표작 <컬러 퍼플>

여러분께 오늘 소개할 작가는 이렇듯 독특한 정서를 간직한 애틀랜타와 조지아가 자랑하는 걸출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컬러 퍼플>(The color Purple)이라는 책과 영화를 통해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흑인 여성인권운동가인 앨리스 워커(Alice Walker)입니다. 앨리스 워커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신학자는 아니지만, 백인여성중심의 페미니즘과 여성신학에 대한 비판 혹은 대안으로 제시한 우머니즘(womanism)과 우머니스트 신학(womanist theology)을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인물입니다.

▲ 앨리스 워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우머니즘(womanism)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성운동사에 대한 전이해가 필요한데요. 일찍이 서구여성운동을 뒷받침했던 백인중심의 페미니즘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경험이 동일하다는데 근거하여 억압의 경험 또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전제했었습니다. 그러나 1960-70년대 이후 페미니스트들은 전 시대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며, 여성의 억압은 개개인이 처한 인종과 성적 지향성, 계급 등에 따라 다르게 경험되고 표현된다고 주장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흐름 중에서도 특히 우머니즘은 백인여성과도 흑인 남성과도 견줄 수 없는 독특한 억압구조 속에 살고 있는 북미 흑인여성들의 삶을 학문과 운동과 예술의 영역으로 끌고 온 사조이지요.

‘우머니스트’라는 용어는 앨리스 워커가 자신의 산문집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에서 처음 도입한 용어입니다. ‘페미니스트’ 라는 말이 중상류 백인 여성에게 국한된 용어라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제시한 용어이지요. ‘우머니스트’는 단편적으로 말하자면 (사실 단편적으로 정의될 수 없는 깊은 문화적인 함의를 갖고 있지만) “흑인 페미니스트 혹은 유색인 페미니스트”라고 정의될 수 있습니다. 넓게는 여성의 문화를 더 존중하고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들을 지칭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레즈비언일 필요는 없고, “성별과 성적 정체성을 불문하고 민중의 생존과 건강한 삶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이들”을 일컫는 말이지요. 이러한 우머니즘에 기반을 두어 흑인여성들의 하느님 경험을 신학화한 것이 바로 우머니스트 신학입니다.

앨리스 워커의 제안에 의해 구체적인 이름을 갖게 되긴 했지만, 사실 우머니스트 신학은 앨리스 워커 한 개인의 입장과 사고를 뛰어 넘는 광범위하고 중요한 신학사조입니다. 케이티 캐넌(Katie G. Cannon), 재클린 그랜트(Jacquelyn Grant), 들로레스 월리암스(Delores Williams), 에밀리 타운즈(Emilie M. Townes) 등 탁월한 신학자들이 우머니스트로 활동하며 다양한 신학적 입장과 방법론을 제시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굳이 앨리스 워커의 삶과 문학을 통해 우머니스트 신학을 풀어나가려는 이유는, 우머니스트 신학의 주장 뿐 아니라, 신학적 자료와 방법론을 함께 소개하고 싶어서입니다.

우머니스트 신학의 뿌리는 억압받는 여성들의 삶과 이야기

우머니스트 신학이 다른 신학과 갖는 차별성은 다름 아닌 억압받는 여성들의 삶과 이야기(narratives)를 신학적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성들의 삶이 만든 신학이고, 그 삶에 구비 구비 얽힌 이야기들을 통해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신학이 곧 우머니스트 신학이죠. 그러기에 저는 앨리스 워커라는 한 여성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께 우머니스트 신학을 소개하려 해요.

앨리스 워커는 1944년 조지아의 작은 시골 농장 소작인 가정의 여덟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당시만 해도 백인 농장주는 흑인 소작인의 아이들이 학교 교육 대신 어려서부터 농장에서 일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하는데요, 다행히도 앨리스 워커는 부모님들의 강한 의지로 무사히 정규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활발했던 어린 소녀는 여덟 살 때 오빠가 쏜 장난감 총에 맞아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얼굴에 깊은 흉터를 갖게 됩니다. 유년의 아픈 기억이 만든 외로움의 깊이는, 사람 사이의 미묘한 관계들과 사회의 복합적인 정황들을 함께 포착하는 섬세한 문제의식, 그리고 그 문제의식을 구술전통과 방언의 묘미로 엮어 내어 남부의 시간과 공간을 글 속에 재현해내는 앨리스 워커 특유의 스타일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자원이 된 듯합니다.

앨리스 워커는 장애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아 애틀랜타의 명문 흑인여자대학인 스펠만대학(Spelman College)에 입학합니다. 그녀는 대학시절 마틴 루터 킹 목사, 진보적 역사가인 하워드 진(Howard Zinn)등의 영향을 받고 60년대 흑인 민권운동에 참가하게 되는데요. 그 계기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저술활동과 더불어 흑인민권 운동, 여성운동, 이라크 침공 반대 반전 시위 등 사회 변혁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오고 있습니다.

소설 <컬러 퍼플>의 ‘하느님’과 ‘보라색 빛’

잘 알려진 <컬러 퍼플>은 젊은 흑인 여성 셀리(Celie)가 흑백 인종차별 뿐 아니라 가부장적 흑인문화와 투쟁하며 자아를 찾는 여정을 일기와 편지의 형식을 빌려 표현한 소설로, 앨리스 워커에게 상업적 성공과 더불어 퓰리처상을 안겨준 작품입니다. <컬러 퍼플>은 다양하고 풍부한 상징과 은유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인데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두 상징 ‘하느님’과 ‘보라색 빛’을 통해 소설을 잠시 따라가 봅시다. 이 두 상징은 주인공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또한, 여성의 삶과 이야기를 신학적 언어로 전화하는 우머니스트 신학의 방법론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지요.

우선 ‘하느님’을 살펴볼까요? 소설의 초반부터 셀리는 하느님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씁니다. 셀리에게 하느님은 항상 들어주는 이, 그리고 도움의 손길을 주는 이입니다. 그러나 소설 초반부의 셀리는 아직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죠. 모든 이들이 하느님을 백인남자로 생각하니 아마도 하느님은 백인 남자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지만, 어딘가 마뜩치 않습니다.

▲ 앨리스 워커의 소설<컬러 퍼플>을 원작으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동명의 영화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이야기가 발전되면서, 셀리는 그가 동경하고 사랑했던 자유로운 여성 셔그(Shug)를 통해 전혀 다른 하느님의 이미지를 만나게 됩니다. 창조 때부터 빛나는 어떤 “그것”, 창조된 모든 것을 순전하게 사랑하기 원하는 “그것”이 셔그가 소개해준 하느님이었죠. 소설 후반에 이르러 셀리는 마침내 하느님을 표현할 자신만의 언어를 찾습니다. 하느님께 보내는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하느님, 사랑하는 별들, 사랑하는 나무들, 사랑하는 하늘,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모든 것, 곧, 사랑하는 하느님.” 하느님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이름 짓는 이 장면은 셀리가 의존적인 자아에서 독립적인 자아로, 하느님과 주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한 인간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여성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보라색 빛’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보라색 빛은 셀리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방식을 바꾸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또 다른 중요한 상징입니다. 폭력과 착취로 점철된 유년기와 사춘기를 보낸 셀리에게 보라색 빛은 맞아서 시퍼렇게 멍든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고통의 색깔이었습니다. 그러나 벗이자 동료이자 연인인 셔그와 함께 들에 창연하게 핀 보라색 꽃을 보면서 셀리는 모든 것에는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셔그가 말하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눈여겨 볼 줄 알아야하고 아름답다고 인정해야만 해. 하느님이 그 모든 것들을 이 땅에 펼쳐 놓으셨으니까.” 보라색 꽃들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는 그 순간, 셀리는 못났다 믿었던 자기 자신 또한 아름다우며 무가치하다 여겼던 자신의 삶도 고귀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과 보라색 빛을 통한 셀리의 자아발견, 우머니스트 신학의 방식

하느님과 보라색 빛, 두 상징을 통해 셀리가 스스로를 재발견하는 과정을 함께 느끼고 함께 기뻐하는 것은 우머니스트 신학을 이해하는 한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우머니스트 신학은 단선적이었던 백인중심 여성신학의 한계를 뛰어 넘어 다층적인 억압구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고,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새로운 성서 해석 방법론과 신학적, 윤리적 대안들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험해왔죠. 그러나 우머니스트 신학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난한 삶 속에 끈끈하게 밀착되어 있는 하느님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과, 세상과,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해방으로 나아가는 그 힘입니다. 어머니, 할머니, 먼 아프리카의 조상들로 이어지는 흑인 여성들의 억압의 역사, 가장 차별받고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지만 끈질긴 생명력과 창조적 예술성을 결코 잃지 않았던 여성들의 삶과 언어와 영성을 담은 이야기들을 통해 하느님을 인식하고 그 하느님을 삶 속에서 다시 뜨겁게 끌어안는 바로 그 힘이죠.

비록 흑인여성들의 경험을 통해 배태되었지만, 우머니스트 신학은 흑인여성들만의 신학이 아닙니다. 억압을 경험하는 모든 이들, 자신의 언어로 하느님을 표현하고 싶은 모든 이들의 신학입니다. 반전평화시위에 참여를 촉구했던 연설에서 앨리스 워커 본인이 이야기 했듯 “우리가 기다려왔던 그 사람들, 해방의 주체들은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이지요. 그 “우리들”은 피부색과 국적과 성별과 성적 지향성과 무관하게 사람이 사람으로 대우 받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뜻과 의지를 함께 하는 “우리들”입니다. 삶을 지배해 왔던 자기증오와 죽음의 힘들을 직면하고, 당당하게 거슬러 움직임으로써 해방의 삶을 창출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생산해내고 싶은 저와 여러분, “우리들”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머니스트 신학과 관련한 책들은 아직 국내에 번역된 책이 없네요. 하지만 강남순 선생님의 책이 우머니스트 신학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앨리스 워커의 글들, 또 그와 관련된 책들은 몇 권 소개가 되었습니다. 특히 현경 선생님의 책은 우머니스트 신학에 대한 이해를 도울 것입니다.

<현대여성신학 > (강남순/대한기독교서회, 1994)

앨리스 워커의 책들:
<더 컬러 퍼플> (안정효 역/청년정신, 2007)
<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세 번째 인생> (김시현 역/민음사, 2009)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구은숙 역/이프, 2004)
<현경과 앨리스의 신나는 연애> (현경 저/마음산책, 2004)

 
 
조민아 교수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구성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셀 드 세르토의 시각을 확대 해석해 중세 여성 신비가 헤데비치(Hadewijch)와 재미 예술가 차학경의 글을 분석한 연구로 논문상(John Fenton Prize)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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