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오디세이아]
종교학 수업을 하다가 학생들에게 소중한 기억이나 삶의 내용 같은 것을 어떻게 삶의 자리에 담고 지켜갈 수 있겠냐고 질문을 던졌다. 어떤 학생은 타임캡슐을 이야기했고, 인터넷 공간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페이스 북을 친구들이 찾아가 인사의 말, 혹은 사랑의 말을 남겨 놓는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 학생이 문신을 해서 몸에 남긴다고 이야기 했다. 학생들은 이 말에 약간 겸연쩍은 듯 킥킥 거렸다.
뭐? 타투라고? 나에게 문신이라면, 조직 폭력배가 생각나고, 좀 거부감이 가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동했다. 그러고 보니 학생들이 타투를 많이 한 것도 같았다. 과연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몸에 문신을 했을까? 우리 학교는 미국의 사립학교로, 학비가 결코 싸지 않다. 학생들의 가정형편을 보면, 10 퍼센트 정도의 학생들은 아주 부유한 가정 출신이고, 70 퍼센트의 학생들은 가난하며, 85 퍼센트의 학생이 그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온, 말하자면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출신이다. 그래서 우리학교는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체에서 두 번째로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학교다. 그러므로 우리학교 학생들이 대부분 문신을 했다면, 미국의 젊은 세대들이 일반적으로 타투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선 30명인 이 수업에서 25명이 타투를 했거나 계속 하고 있었다. 계속 한다는 것은 학생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타투를 하는 것이다. 사실 미국의 서점에 가보면, 타투의 문양에 관한 서적도 많이 나와 있고, 유명한 문신예술가들도 있다. 그러니까 학생들은 이미 이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셈이었다.
가슴 찡한 자신의 역사를 몸에 새긴 학생들의 이야기
나는 언제 타투를 시작했는지 그리고 어떤 문양을 새겼는지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좀 수줍어하는 듯하더니, 타투의 문양에 얽힌 자기들의 삶의 이야기를 털어 놨다. 웃통을 벗고 타투에 얽힌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학생들은 진지하고 아름다웠다. 그러고 보니 타투와 타투 이야기는 존재감, 뿌리의식, 정체성, 관계에 관한 가슴 찡한 자기들의 역사였다. 한 흑인 친구는, ‘마르타’라는 글자와 ‘텍사스’를 새겼다. 자기를 키워주고 사랑해준 할머니의 이름을 팔뚝에 새기며, 자기는 할머니와 늘 함께 있는 거란다. 그리고 ‘텍사스’는 자기가 할머니와 살았던 고향 동네이며, 그 동네는 자기가 어디 있더라도 늘 중요한 의미를 준다고 했다.

또 한 학생이 자기의 문신이야기를 했다. 자기 엄마의 이름인데, 아버지 없이 자신을 키우던 엄마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할 때, 자기와 같은 성을 가진 엄마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엄마의 이름을 새겼다고 했다. 미국의 경우, 결혼을 하면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라 가니까, 이 학생은 엄마의 옛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이야기였다.
한 여학생은 글자를 가슴에 새겼는데, 그건 나중에 여학생들한테만 보여주겠다면서, 내용은 “가슴은 사랑을 하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신은 15세에 유방암을 앓아 가슴을 절개해야 했는데, 지금은 성형수술을 해서 괜찮지만, 이 구절이 자신을 지지하는 큰 힘이 되었다고 이야기 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의 외손자인 학생은 자기 부족의 수호신을 새겼다. 식민지가 되기 전, 자신의 부족들이 섬기던 신의 자비를 기억한다고 이야기 했다.
한 여학생은 귀여운 강아지를 발목에 새겼는데, 자신과 함께 자란 토니라는 개가 죽어서 토니를 기념하기 위한 거라고 이야기 했다. 또 다른 여학생은 첫 남자의 갈비뼈로 첫 여자를 만든 창세기의 이야기를 옆구리에 새겼다. 갈비뼈란 남녀의 평등을 의미하는 거라며, 나중에 결혼하면, 남편에게 보여줄 거라고 했다.
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명히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삶과 경험, 그리고 그 의미를 표현하고 살아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나는 타투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 문양들을 수집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탱화나 만달라가 그들의 영적세계를 그리는 거라면, 요즘 미국 젊은 학생들이 말하는 타투는 그들의 몸에 그리는 탱화나 만달라가 아닐는지.
타투를 하는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타투를 시작할 때, 각자 자기가 원하는 내용이 무엇인 지를 생각하고, 어떻게 형상화 시킬 건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선별한 아티스트를 찾아 충분한 대화를 나눈다. 어떤 모양으로 할 것인지, 색깔이나 스타일은 어떤 걸로 할 건지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날을 정해서 몸에 그 문양을 새긴다. 대개는 친구들이 함께 가서 그 과정을 함께 해 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바디 아트(body art)박람회가 열려서 친구들과 그곳을 찾았다. 거기에서 나는 문신 문양의 한 분야로 ‘종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슬픔의 성모님, 고통의 성모님, 과달루페 성모님, 십자가, 묵주, 예수 성심 등이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라고 거기서 만난 아티스트가 이야기해 주었다.
몸은 결코 떠나지 않는 자신만의 고향
이주의 삶을 사는 미국 젊은이들, 삶과 해방, 갈망을 몸에 기록하고 간직해
여기서, 왜 요즘 젊은이들은 몸에 무언가를 새겨 간직하고 싶은 건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미국의 삶은 이주의 삶이다. 공부하는 사람의 경우, 박사과정을 마치고 미국의 어느 주에서든 자신이 공부한 것과 맞는 학교가 있으면 그리로 달려가야 한다. 부부가 함께 공부한 경우, 각각 다른 주에 있는 대학에서 가르치기 위해 떨어져 사는 이들도 있다. 부모가 이혼을 하는 경우, 자녀들은 자기를 데리고 사는 쪽의 부모가 다른 주로 이주를 하면 자신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다. 예민한 사춘기가 되면, 그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런 안정적이지 못하고 이주가 많은 현대 미국 젊은이들의 삶을 볼 때, 결국 그들 곁에 늘 있는 것은 부모도 아니고, 특정 성당 같은 거룩한 장소는 더더욱 아니다. 영적인 갈망을 가진 젊은이들과 이야기 해보면, 이전에 영적 고향과 같은 공동체가 있었다하더라도 대학에 오고부터는 그런 공동체를 찾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어디론가 새로운 직장을 향해 떠나야 하고, 또 그렇게 삶을 영위하다가 또 다른 곳으로 옮겨 가야 하다 보니, 안정적인 공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가정도 많다. 이혼은 비일비재하고, 이혼한 엄마 아빠가 또 재혼을 해서 각각 데려온 자녀들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가족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몸이 그들에게는 항구함을 보여주는 어떤 대상이다. 우리 동네 성당 앞마당에 계신 성모상이 아니라 내 몸에 새겨진 성모님이 더 친밀하고 의미가 깊다. 그러면 못 보아서 안타까울 일도, 잃어버려서 마음 아플 일도 없는 것이다.
또한, 몸에 자신이 담고 싶은 의미나 기억을 담을 때 날씬 해야 하, 아름다워야 한다는 문화가 주는 압박에서 탈출할 수 있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학생들은 타를 이야기할 때 자신의 몸이 너무 살쪘다든지, 너무 왜소하다든지 하는 평소의 걱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타투는 어떤 형태의 이른바 s자 라인의 몸이라든가 근육질의 몸이 되라고 하는 문화적 압박 가운데서 일종의 해방구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한국에서 주로 하는 눈썹 문신이나 영구화장과는 무척 거리가 먼 이야기인 것 같다.
30년 전 부모에 대한 반항으로 타투를 했던 학생이 이제 어머니가 되어서 자식의 타투가 너무 지나친 것 같다는 걱정을 하는 것을 보니, 미국 사회 안에서 대중문화로 타투가 자리 잡은 것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타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많고, 기성세대에게는 잘 받아들여 지지 않는 문화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나는 이주의 삶을 살아야 하는 미국의 젊은 세대들이 가지는 삶에 대한 표현이고 갈망으로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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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수녀 (소피아, 홀리 네임즈 수녀회)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연구하며,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신학적으로 해석하고자 시도했고, 지구화된 세상에서의 '이주' 문제, 동양 종교의 몸 수행에 관한 책을 써 왔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소재 홀리 네임즈 대학의 영성학 교수이며, '여성의 원'이라는 피정도 지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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