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를 응원합니다-김유철]
귀와 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귀로 들은 것, 눈으로 본 것을
지금 여기서
예수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광야가 필요했다.
현재의 교계신문이라는 <가톨릭신문>이나 <평화신문>은 애당초 한계가 있을 수밖에는 없는 언론이다. 두 신문사 모두 관할 교구에서 임명한 신부가 대표이사 소임을 수행하고 있으며 신문사 운영 역시 교구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형편이니 어쩔 수 없는 대목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유일한 한국천주교회 방송인 <평화방송>도 형편은 동일하다. 그런가 하면 각 교구가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가진 한계점은 교계언론보다 못한 형편이다. 무엇을 위해서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지 조차 의구심이 들 정도다. 과연 그것을 누가, 왜 본다고 착각하고 있는가? 어쩌면 그런 대목에서는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운영하는 www.cbck.or.kr 가 가장 충실한 정보를 전해주려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현대인에게, 그리고 오늘의 교회 안에 있는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에게 정보가 부족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렇지만 핵심은 소통에 있는 것이다. 일방적 정보의 전달이나 공지가 아니라 그 정보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아우르는 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필요성을 시대의 징표삼아 피어오른 것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인 것이다. 2007년 한 포털사이트의 카페형태로 모습을 드러냈고 2009년 정식언론사로 등록한 연혁이 일천하지만 꿋꿋이 제 길을 가고 있는 <지금여기>를 나는 응원한다.
물론 그들 스스로가 창간사에서 “교회에 약이 되고 세상에 밥이 되는 언론”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약’이 되는 일보다 세상의 ‘밥’이 되는 일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우리 모두 구세주로 고백하는 예수의 삶은 ‘약’보다는 ‘밥’이었다. 예수께서 언젠가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묻자 그의 제자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마태 20,22)하듯이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예수의 그 날 대답처럼 사람이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 하늘이 정하실 일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신앙인이고 신앙인이 되어 지길 바라고 있다. 예수가 걸었던 방법에 동의하며 그가 하늘을 일컬어 “아버지”라고 불렀듯이 우리도 하늘의 뜻을 아버지의 뜻으로 삼고 지금여기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펼쳐지길 염원하는 사람들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를 격려하고 응원하면서도 바라는 일은 그런 염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교회를 이루는 많은 사람들, 세상을 이루는 더 많은 이웃들과 소통의 터미널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은 구성원, 더 적은 후원금으로 하나의 언론매체를 꾸려나가는 것은 그 터미널을 너무 옹색하게 만드는 일이다. 힘이 있는 사람은 힘으로,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재능으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를 못살게 굴면 좋겠다. ‘지금여기’라는 말 참 징한 말이다. 머잖아 세상의 봄은 다가올 텐데 따뜻해지면 좋은 날 볕 잘 드는 곳을 골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를 위한 콘서트 한 판 열자. 그 날 개념 있는 딴따라 몇 명 불러 모아 사회는 내가 볼란다. 도장 꽝!
김유철 (한국작가회의 시인)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대표. 저서 <그대였나요>, <그림자숨소리>, <깨물지 못한 혀>, <예수의 말씀>등이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