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박춘식]

죄송합니다
- 정호승
아직 숟가락을 들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도대체 뭘 얻어먹을 게 있다고
해는 지는데
숟가락을 들고 하루종일
지하철을 헤매고 다녀서 죄송합니다
살얼음 낀 한강에 떠다니는 청둥오리들
우두커니 바라보아서 죄송합니다
한강대교 위에서 하늘로 힘껏 던진 돌멩이들
별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믿음이 없으면서도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고
그분의 신발에 입맞추어서 죄송합니다
진주조개를 돌로 내리쳐서
채 만들어지지도 않은 진주를 꺼낸 일도 죄송합니다
겨울비 내리는 서울역 뒷골목
오늘도 흰 구름이 찾아오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언제나 시작도 없이 끝만 있어서 죄송합니다
<출처> 밥값, 정호승, 창비, 39쪽
이 시를 처음 읽고 잠시후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죄송합니다>라는 글귀 앞이나 뒤에 <주님>을 붙여보았습니다. 대림시기에 가장 적합한 기도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프란치스코 정호승 시인이 우리를 위하여 좋은 기도문을 만들었구나! 하고 아주 고마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주님을 모시기 위해 마음을 청소하는 첫 순서는 <죄송합니다>라는 고백일 것입니다. 이웃에게 나무들에게 강물에게 새들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을 가질수록 크리스마스는 더욱 하얗게 빛나리라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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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