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히는 시-박춘식]


응 ‥‥

-박춘식

가장 낮은 모음은 <ㅡ> 이고
모나지 않게 순한 자음은 <ㅇ> 이라면
글자 중에 제일 겸손한 글자는 <으> 가 된다
숨 가쁜 호흡으로 이 땅에
제일 겸손한 글자는 <으 으 으> 이다, 하고
백두대간 능선에 올라가 고함치려 했는데, 전날
밤중에 천사가 다급히 내려와
<으> 글자를
<응> 으로 바꾸어 큼직하게 적어놓았다

<응> 이 왜 제일 겸손한 글자일까
그 까닭을 생각하느라 보름 동안 끙끙거렸다
겸손은 나눔을 좋아하니까, 그다음
천사가 원하는 의미를 찾느라고
하늘 쳐다보며 응응대고
땅에게 응응대고

<출처> 박춘식 반시인의 미발표 신작 시 (2011년 11월)


글자에는 겸손이나 오만함이 없습니다. 글의 모양이 낮아 보이고 친근하게 보이는 것뿐입니다. 어느 시인은 <꽃>이란 글자가 정말 꽃 같다는 말을 한 적 있고, 어느 외국 아가씨는 <휴>라는 글자가 모자 쓴 사람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라며 한글의 아름다움을 놀라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글의 여러 가지 모양 중에 겸손에 가장 가까운 글자를 찾아 시를 만들고 싶었지만, 욕심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야고보 박춘식 반(半)시인 경북 칠곡 출생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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