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박춘식]

현대판 바벨탑
-박춘식
온 세상이 하나님 하늘님 하느님 낱말을 쓰고 있는데
어느 날 그들은 서로서로 말한다 벽돌을 벌겋게 구워
하느님 이름으로 탑을 높이 쌓아 깃발을 세우자
돈을 모아 하느님 위엄도 세우고, 밥상도 걸쭉하게 차리자
탑 위의 얼굴들은 명령하느라 늘 근엄하다
큰 벽돌 율법을 만들어 탑 아래 사람들을 다그친다
자기 말을 안 들으면 곧 하느님 말씀 안 듣는 것이라며
탑 아래 사람들이 하나 둘 셋 떠나면서
자기가 쌓았던 벽돌을 뽑아 품에 안고 달아난다
높은 곳은 시원스럽고 번쩍거리지만
뜯겨나간 벽돌로 탑 바닥은 보기만 해도 어질어질하다
작은 벽돌이 계속 떠나자 탑이 앞으로 기울여지는데
하늘이 지켜 줄 거라며 높은 사람들 목덜미는 태연스럽다
그때 하느님께서 내려와 살펴보시고
단죄 명령 판단으로 비뚤어진 바벨탑을 멀리 내치신다
그리고 작은 낱말들끼리 떠나가는 낮은 벽돌 하나하나
하느님께서 해맑은 눈동자를 일일이 붙여주신다, 우시면서
<출처> 박춘식 반시인의 미발표 신작 시 (2011년 9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기도하는 시>에 글 올린지 일 년 됩니다. 그 동안 느낀 것은 천주교회의 고질병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결같은 걱정이 (모두 잘 아는 사실이지만) 성직자들의 거만함과 그들의 권위의식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어느 분이 냉담교우 모임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을 때, 글쎄!? 하며 멍멍했습니다. 신앙을 버릴 수는 없고 성당에는 나가고 싶지 않은 냉담교우들이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까? 이런 생각을 하면 머리가 어두워집니다. 전에는 성직자들이 신자 걱정을 했는데 지금은 신자들이 성직자를 걱정하고 그리고 뻣뻣한 성직자들을 아슬아슬 쳐다보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이 먼저 겸손하고 또 겸손의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싶은 구월입니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