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님의 여성, 영성, 그리고 어머니 하느님-5]

 

▲ 그림/김용님

2011, 강화갯벌에서

노을 젖은 갯벌에서 나는 본다.
어둠의 아름다움.
어둠 속에 감춰진 것들의 진실.
우리 모두가 부정하고 멸시해 온 것들,
그래서 찌끼처럼 죽음처럼 엎드려 굴복해 온
모든 미천하고 낮은 것들의 고요한 함성을 듣는다.

우리가 패배라고 여겨 온 것들이
아직은 끝이 아니라고 부르짖는,
끝이라고 불려 버리워진 것들의 장엄한 합창.
그 살아오는 진실의 음성들을
귀 기울여, 엎드려, 온 몸으로 듣는다.
‘진실’의 몸체를 본다.
진실이 이다지 환희라는 것을!
진실이 이다지 눈부신 힘이라는 것을!
진실이란
복받쳐 생명으로 솟구치는,
누구도 거역 못할, 빛나는 현실일 수 있다는 것을
복음처럼 듣는다.

힘없고 미천하고 추한 것들이 밀려 밀려
그들끼리 모여 마침내
생명의 거대한 밭을 마련해 놓은 것을
나는 갯벌에서 본다.

사람들이 잃어버린 꿈들,
헤매이다 지쳐버린 꿈들이 모여 와
씨앗처럼 숨쉬고 있는 넓디 넓은 생명의 밭, 갯벌.
저들끼리 위로하며
서로서로 기원해 주며
함께함께 더욱더 커다란 꿈을 키우며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꿈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무수한 갯구멍들로부터 듣는다.
거기,
오래 전 잃었던 내 꿈 또한
건강하게 살아 빛나고 있네!

저 빛나는 검은 흙, 우리의 오래된 어머니여!

* 강화 갯벌을 메우고 세계 최대(?)의 조력발전소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우리의 오래된 어머니를 그렇게 질식시켜 버리겠다 합니다. 우리의 그칠 줄 모르는 탐욕과, 자연에 대한 오만한 행위를 통곡하며 참회합니다. 

김용님/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 바닷가에 살며 자연과 하느님을 묵상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의 테마는 하느님의 여성성이며, 자연생명 안에서 약동하는 하느님의 기운을 추수합니다. 김용님 씨는 서강대를 졸업 후 한신신학대학원에서 민중신학과 여성신학에 눈을 떴다. 1989년에는 통일전에 출품하고, 광주항쟁 기념전, 여성과 현실전, 민중미술 15년전 등에 참여해 왔고, 독일 일본 미국 케나다 등지에서 정신대를 알리는 그림전을 열기도 했으며, 1991년 '환경과 생명전' 이후 환경과 자연을 생각하는 그림들을 그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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