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박춘식]

가시관과 보혈

-김남조

옷은 제비뽑아 나눴으되
머리의 가시관이 남았더니라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신포도주와 초를 먹이고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흐를 때도
가시관이 내 살에 박혔더니라

나를 무덤에 옮겨
베를 감아 뉘인 다음 돌문을 닫을 때
빛 한 줄기가 가락지처럼 감싸는
가시관이 있었노라
가시마다 피가 맺혔었노라
그로부터 오늘까지 내 사랑은 가시관을 쓰노라

너희 중의 고통을 모르는 자는
멀리 물러 서 있고
고통을 아는 이는 내 둘레에 머무는구나
나는 피와 꿀을 따르어
너희의 목마름을 일일이 고치노니
오래 애통하던 사람도
예 와선 울음을 그치는도다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한
그 측은한 백성들아
해마다 내가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는다면
너희 영혼은 어디에 집을 짓겠으며
내 사랑은 어떻게 풀겠느냐
나의 만백성아

<출처>기도, 김남조신앙시집, 고요아침, 114쪽


한 편의 시를 읽을 때 독자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은 시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김남조 시인의 오늘 시에서 ‘오늘까지 내 사랑은 가시관을 쓰노라’라는 구절이 가슴 아프게 들립니다. 그리고 해마다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는다면 너희 영혼은 어디에 집을 짓겠느냐는 표현은 눈물샘을 뜨겁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상 물결 따라 자리를 옮기는 철새의 신분을 버리고, 우리 모두가 십자가 위에 집을 짓는 텃새가 되어, 사순시기 막바지인 성주간에 골고타로 날아 모여들기를 두 손 모아봅니다.

나모 박춘식 야고보는 경북 칠곡 출생으로 가톨릭대학 신학부,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선교 및 교육활동을 하였고 신일전문대학에서 퇴임한 다음 현재는 스스로 반(半)시인이라고 부르며 칠곡군 작은 골짜기에서 기도와 시에 단단히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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