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누구인가]
내가 안동에서 장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내 나이 스물 네 살이었다. 지금도 그때 일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라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한다. 군을 제대하고 나니 몸이 근질거려서 내 친구와 둘이서 악세사리 장사를 하기로 했다. 부산을 두고 멀리 안동으로 가서 했는데, 안동 구시장에다 전을 펴고서 신나게 즐기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안동으로 간 이유는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하기로 하겠다. 때는 바야흐로 8월 찌는 더위 속의 여름이어서 500원짜리 물건 하나 팔고서는 100원짜리 아이스께끼를 사먹고 있었다.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어지럽고 모진데
친구랑 둘이서 그렇게 장사는 뒷전으로 하고서는 더위를 쫒느라 허덕거리고 있었는데, 손님 두 사람이 바람처럼 찾아왔더랬다. 여자 손님 두 사람이었다. 총각이 둘인데 처녀가 둘이 찾아오니 당연히 아이스께끼처럼 장사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더욱 총각들을 안달 나게 한 이유는 그 여자 손님들이 정말 바람처럼 움직이고, 그림자처럼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수줍음, 살짝 훔쳐보는 호기심어린 표정, 그러나 남자의 옷깃에서 마저 복숭아처럼 붉어지는 뺨, 그저 웃음으로만 대답하는 순진함.... 이렇게 표현하니 마치 그림같아 보이지만 그 여자들은 불현듯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게 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옷의 촌스러운 감각이나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이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30분을 넘도록 유인과 흥정이 있었지만 끝까지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떠나보냈는데, 그렇게 그 여자들은 도무지 이 세상 사람들 같지가 않았다. 순진했고 수줍어했으며 심지어 세상물정을 못 알아듣는 듯 했다. 바로 그러한 점들이 이 험한 장사판에 뛰어든 나에게는 너무나 안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세상이란 게 얼마나 험하고 모진데, 저런 마음 저런 얼굴을 하고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그 여자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 옆에서 모자 팔던 아저씨가 일러주었다. “저 아가씨들, 서커스단원들이야!” 한국의 서커스단들은 이미 그때부터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돈도 없고 세상도 모르고.... 나는 그 여자들이 사라진 뒤끝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 표정의 아가씨들이 다시 나타날 것만 같아서 장을 걷고 돌아와 이불을 덮고 누었는데도 눈이 감겨지지 않았다. 이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어지럽고 모진데....
은경축이 문제랴?
작년 여름의 끝에서 나는 휴가를 얻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다니는 중에 첫 번째로 찾은 곳이 자기 교구를 떠나 다른 교구로 파견나가 있던 후배신부의 성당이었다. 마침 그 본당의 주임신부님이 신학교 은사님이셔서 인사를 드릴 수도 있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옛날 생각이 나서 여쭈어보았다.
"신부님 동기 분들이 하나같이 열심하고 치열하게 사시는 분이 많으셔서 늘 부러웠습니다. 특히 동기회에서 은경축 행사를 안하기로 했다는 결정도 전해 들었습니다. 그 이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신부님의 대답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노력하는 수준에서 끝났다는 것이다. 신자들의 등살에 못이겨 결국 행사를 하고 만 신부들이 생겼다는 말씀. 그러니 갈수록 흐지부지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은경축이 문제랴? 신부들이 영명축일에 생일까지 챙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요즘 우리 교회의 풍속도이다. 25년만에 맞는 은경축 행사도 무거워서 벗어나고 싶은데, 매년마다 영명축일 행사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부모형제도 아닌 사람들에게 매년 생일까지 챙겨달라고하다니....
영명축일 행사를 올해만 챙기고 끝내야지, 만일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결국 죽을 때까지 결국 실행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를 양보하면 나중엔 열 가지를 물러서야 할 것이다. 영명축일을 거부하지 못한 탓에 은경축도 당연히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영명축일 행사를 단호하게 물리치지 못한 탓에 가난과 겸손은 결코 내 안에 들어오지도 못한 채 물러가고 말 것이다. 영명축일을 하찮게 여기지 못하고 열심히 섬긴 탓에 내 안에는 우상이 똬리를 틀고 앉아서 하느님을 물리치고 말 것이다.
하나를 지키면 열을 지켜낼 수 있으리니
그러나 하나를 지키면 열을 지켜낼 수 있으리니, 영명축일 행사를 물리친 덕분에 악마의 유혹도 물리치게 될 것이요, 생일을 행사가 아니라 감사기도로 보낸 탓에 내 인생은 기름진 밭이 될 것이며, 은경축 행사를 거부 한 손에는 천국문의 열쇠가 쥐어질 것이다. 그러할 때 자연스럽게 내 안에는 가난과 겸손이 잘 자리잡아서 하느님 나라를 품을 수 있는 좋은 나무가 되고 그리고 점점 성장할 것이다.
화려한 나의 영명축일 행사에 쓸쓸히 저물어가는 서커스단의 아가씨들이 찾아왔다면 과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저 신부님은 얼마나 행운의 삶을 타고났기에 저런 대접을 받을까? 그러나 내 처량한 신세는 대체 무슨 운명이길래 이렇듯 내밀어주는 따뜻한 손 하나 없단 말인가? 저렇듯 박수를 받는 인생도 있는데, 아 처량한 내 신세여.....'
서커스단 아가씨의 몸이 한 줄 공중타기를 할 만큼 가벼울지라도, 그 삶의 무게는 얼마나 무겁기만 할런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온다. 무게의 기준마저 없을 그 삶들이란..... 어디 서커스단의 아가씨들만 그러할까?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참 많다. 동네마다 골목마다 어디에나 참 많다. 전철에서도 만나고 버스에서도 만나고 어디에서나 만난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보다 더 많기 때문에 연민의 정을 뛰어넘어 사회적 연대를 꾀하게 한다. 그러나 연민과 동정없이 사회적 연대가 생겨날 수 없듯이 연민의 오솔길에서 사회적 연대라는 큰 길은 시작할 것이다.
나의 작은 실천 없이, 그 하찮은 영명축일 행사 하나 거부하는 의연함 없이 어떻게 사회적 연대를 틀로 하는 하느님 나라를 이룩할 수 있겠는가!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서커스단 아가씨들을 만난 뒤에 비로소 연민의 정을 알게 되고, 사회적 연대를 깨달을 수 있었듯이....
조욱종 / 신부, 부산교구 관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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