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철의 짱똘]

월드컵이 한창이다. 이제 시작이지만 16강 진출에 거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한국축구로서는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월드컵’이라 불리는 경기는 축구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많은 종목이 세계대회를 ‘월드컵’이라 부르고 있지만 우리 언론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축구에 한정하여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축구인들에게는 과한 복이다.

두 학생의 죽음자리가 눈에 밟히다

작년 여름휴가를 필자는 걷는 일에 몰두했다. 서울 청량리역을 출발점으로 삼아 마석 모란묘지를 첫째 날 여정으로 삼았고, 둘째 날은 경기도 양주 심미선, 신효순양이 다녔던 효촌초등학교와 사고현장에 세워진 추모탑을 거쳐 임진강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셋째 날 여정은 당시 가장 큰 이슈였던 평택 쌍용자동차와 용산 참사현장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어느 곳 하나 한가로울 수 없는 휴가 여정이었지만 오래도록 눈에 밟힌 곳이 바로 고 심미선, 신효순 양의 죽음자리였다.

2002년 6월 13일. 온 나라가 월드컵의 용광로 속에 들어앉아 있을 즈음 아이들은 우리 곁을 말 한마디 못 남기고 떠나갔다. 친구 생일잔치를 가던 신효순, 심미선양이 미군장갑차에 의해 희생당했었다. 갓길을 걷던 두 여중생은 50톤 장갑차에 깔려 전신 뼈마디가 으깨지고 뇌수가 터져 참혹하게 죽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의 죽음을 알리기에는 너무 소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 <미 제2사단>이 건립한 '효순이 미선이' 추모비

“어느 누구의 과실도 없다”

사건 발생 다음날 즉 6월 14일 미 제2사단은 사회단체를 배제하고 유족들만 참여시킨 채 현장브리핑을 실시하였다. 같은 날 한국축구팀은 강호 포르투갈을 맞아 박지성의 슈팅 하나로 16강 진출이 확정되었다. 국민들은 더 크게 열광했다. 6월 28일 미2사단 공보실장은 여중생 죽음과 관련하여 “어느 누구의 과실도 없었다. 궤도차량은 사고 당시 모든 안전수칙을 이행했다. 한미 합동조사 결과 누구도 힐책 받아야 할 사람이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고 밝혔다. 그 날은 한국축구팀이 이미 4강에 진출하여 터키와 최종 3‧4위전을 하루 앞둔 날이라 세상에는 샴페인 향이 가득했었다.

2002년 월드컵이 그해 6월 30일 브라질의 우승으로 막을 내리면서 세상은 조금씩 아이들의 억울한 울음소리를 귀담아 듣기 시작했다. 7월 3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여중생 사망사건 진상조사 중간발표를 했다. 그러자 7월 4일 당시 주한 미사령관 리언 러포트가 전면에 나서 “미 육군이 이 비극적인 사고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말이었다. 그들은 주한미군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불평등 조항을 십분 활용하였고 결국 11월 20일 주한미군 군사법정은 두 여중생 사망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던 장갑차 탑승자 두 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들은 그들의 나라로 갔고, 휴먼군대 미군은 추모탑을 세워주었다.

장갑차만 캐터필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월드컵기간에 움직이는 무한궤도 캐터필러를 조심하라는 말이다. 군사용 탱크나 장갑차만 무한궤도라 불리는 캐터필러를 쓰는 것은 아니다. 바로 며칠 전 한국이 남아공월드컵에서 첫 승을 따던 날, 4대강의 곳곳을 차지한 포클레인(삽차)의 캐터필러 움직임은 쉬지 않았다. 어디서 그 많은 포클레인이 왔는지 모를 일이지만 강 곳곳에서 소꿉장난이 아닌 죽기 살기로 강바닥을 파고 있었다. 6월 12일 ‘경남예술인들과 함께 걷는 낙동강순례’ 길에서 마주친 낙동강의 모습을 보고 순례참가자는 “이제는 슬픔의 눈물이 아닌 무서움의 소름이 끼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무지막지한 광경은 이곳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
었다.

한강의 이포보․ 여주보․ 강천보, 금강의 금남보․ 금강보․ 부여보, 영산강의 승촌보․ 죽산보, 낙동강의 상주보․ 낙단보․ 구미보․ 칠곡보․ 강정보․ 달성보․ 합천보․ 함안보까지 한반도 남쪽의 거의 모든 강줄기마다 버티고 선 삽차 캐터필러의 종횡무진을 기껏해야 21세기 초엽을 살다가 갈 한반도 남쪽 거주민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대들이 이 땅과 이 산과 이 강의 주인이란 말인가?

▲ 낙동강 본포다리에서 만난 무더기 삽질 현장

생명의 죽음 소리 들어보라

2002년 월드컵의 함성 속에 두 아이의 몸이 장갑차 캐터필러에 의해 전신 뼈마디가 으깨졌지만, 2010년 월드컵의 함성 속에는 수많은 생명체의 원천 같은 모래톱이 사라지고 강바닥이 으깨지고 있다. 운동경기의 열광 속에 그 소리 듣지 못한다면, 혹은 누군가가 고의로 그 소리 듣지 못하게 한다면 그대에게 날아가는 짱돌은 여지없다. 그나저나 4대강 파괴 반대한다는 현수막 내걸어 놓고는 그 생명체들의 비명을 듣지 못한 채 본당 안에서는 축구에 들떠 대형화면 걸어놓고 맥주 마시지 마라. 여간 볼썽 사나운 일이 아니다.

김유철 /시인.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지부장.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교회비평집 <깨물지 못한 혀>(2008 우리신학연구소).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2009 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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