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청하는 믿음’으로 경계에서 무지개 그리기
"대화를 위한 여성신학"을 주제로, 6주에 걸쳐 6명의 여성신학자들이 예수회센터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 강의를 펼친 여성신학 입문 강좌가 지난 29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마지막 배턴을 이어받은 최지은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 연구활동가는 ‘간청하는 믿음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를 기원하며, 가톨릭교회와 성소수자의 만남을 살펴봤다.
퀴어? 앨라이?
최 연구활동가는 가부장제에 기반한 이성애와 가족을 정상 규범으로 보고, 거기에 속하지 않은 정체성과 (가족) 공동체를 죄악시하는 이분법을 비판하고, 다양한 성 정체성을 포괄하는 ‘퀴어’와 ‘앨라이’를 설명했다.
‘퀴어’(Queer)는 성소수자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로, 성소수자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재정의하며 자긍심의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퀴어가 포함하는 정체성들은 동성애자(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바이섹슈얼), 무성애자(에이섹슈얼), 성 전환자(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비이분법적 성별), 젠더플루이드(유동적인 성 정체성), 인터섹스 등이다. 즉, 전통적 성별 지향 이분법(남/여, 이성애/동성애)에 속하지 않는 다양한 존재를 아우른다.
앨라이(Ally)는 성소수자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비성소수자를 뜻한다. 즉, 자신이 성소수자는 아니지만, 성소수자의 권리, 존엄, 목소리를 지지하고 함께 행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동성애를 장애이자 죄악으로 규정해 온 가톨릭 교리
최지은 연구활동가는 동성애를 바라보는 가톨릭교회의 편견과 혐오를 담은 교리서 항목을 비판했다.
"동성애는 기나긴 시대와 다양한 문화를 거치며 갖가지 형태를 띠어 왔다. 동성애의 심리적 기원은 거의 밝혀져 있지 않다. 동성애를 심각한 타락으로 제시하고 있는 성서에 바탕을 두어, 교회는 전통적으로 동성애 행위는 '그 자체로 무질서'(intrinsically disordered)라고 천명해 왔다.
동성애는 자연법에도 어긋난다. 동성의 성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인정될 수 없다. 상당수의 남녀가 깊이 뿌리박힌 동성애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그들의 경우는 스스로 동성연애자의 처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무질서'(objectively disordered)인 이 성향은 그들 대부분에게는 시련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존중하고 동정하며 친절하게 대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동성애자들은 정결을 지키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내적 자유를 가르치는 자제의 덕으로, 때로는 사심 없는 우정의 도움을 받아서, 또한 기도와 성사의 은총으로, 그들은 점차 그리고 단호하게 그리스도교적 완덕에 다가설 수 있고 또 다가서야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357-9항 참조)
최 연구활동가는 교리서의 이러한 가르침은 “성소수자와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상호 배타적 관계로 설정하게 만든다”고 말하며, “그리스도 신앙을 가진 동성애자를 동정과 연민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일종의 혐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두 공동체(교회와 동성애 집단)의 상호 배타성이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에게 ‘이중 낙인’을 부여”하고, 성소수자 신앙인에게 고통을 안기며 “극심한 존재론적 위기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성향은 인정하나 행위는 죄악?
최 연구활동가는 또한 “자연법을 비롯해 생식과 출산을 중심으로 성에 대해 접근할 경우, 성향은 죄가 아니나 행위는 죄악이라는 윤리 도덕적 단죄를 낳는다”고 말하며, 이는 “성소수자에게 ‘가학적 고통을 안겨 주는 하느님’이라는 신상 왜곡의 문제로 연결되기도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교회가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가를 묻는 표를 보여 주며 거수를 부탁했다.
좌중은 5번 차별 항목에 압도적으로 많은 손을 들었다.
최 연구활동가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2023년도에 공표한 교황청 신앙교리부 선언 '간청하는 믿음'을 소개하며 가톨릭교회의 변화를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모든 형제자매는 교회 안에서 언제나 축복받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행위에서 존재로, 그리고 관계로
최지은 연구활동가는 여성신학의 거두 엘리자베스 존슨의 발언을 근거로 성소수자들과 가톨릭의 ‘잘못된 만남’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경험과, 전통적인 규범들과의 긴장 속에서 더 깊은 이해로 성장해 왔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새롭게 듣는 지금, 긴장을 끌어안는 것, 풍성한 전통의 핵심을 보존하면서도 현실에 직면하여 이를 확장하고 새롭게 응답하는 것이 필요하다.”(엘리자베스 존슨)
또한 앞서 언급한 프란치스코 교종의 '간청하는 믿음'과 '사랑의 기쁨'이 제시하는 가톨릭의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 없는 사랑을 전달했다.
역사 속 다양한 성소수자 집단과 문화
고대 그리스에서는 유명 남성과 제자들 간에 동성애가 공공연한 유행이었다. 선생의 유명세에 비례해 제자들이 많았으며, 그중 동성애를 맺는 제자는 특별한 총애를 받는 것으로 인식했다. 이들의 동성애에는 남성 우월 의식과 여성 혐오가 동시에 존재했고, 또한 선생과 제자라는 권력관계가 혼재된 양상으로 나타났다.
제3의 성으로 공인된 인도의 ‘히즈라’는 매춘을 생계로 삶을 이어 가는 성소수자 집단이다. 성 전환자가 아닌 자연발생적 성소수자들이 모여 고유한 하위문화 공동체를 형성했다. 히즈라는 ‘두 영혼’을 의미하며, 부족 안에서 종교적 인물로 실아가기도 하는데, 특히 2015년 히즈라 출신 시장이 당선되면서 인도 히즈라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졌다.
마두 바이 킨나르는 역사상 최초의 히즈라 출신 정치인으로 2015년 라이가르 시장으로 당선됐다. 이는 2014년 인도 대법원에서 성 전환자를 제3의 성으로 인정한 지 9개월 만이었다.
경계, 틈, 주변부에서 무지개 그리기
최지은 연구활동가는 미국의 목회 신학자이자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과 치유 중심 목회를 펼친 래리 그레이엄(Larry K. Graham, 1942-2017)을 인용해 결론을 대신했다.
“소극적인 관용이나 어설픈 포용은 적극적인 환대와는 다르다. 적극적인 환대는 레즈비언과 게이가 그들 자신으로서 무조건적인 가치가 있으며, 사회와 교회가 진정으로 상호 유익한 관계에 있기를 원한다는 치유와 돌봄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느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서로의 타자성과 신비로움 속에서 서로를 환영하는 것으로, 진정한 차이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준다.”(Discovering Images of God: Narratives of Care among Lesbians and Gays,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7)
질의응답 시간에 특히 온라인 줌을 통한 질문이 쏟아졌다.
“성 전환자는 신의 소명을 거부하는 죄인가”, “신학교에서 동성애자 입학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교리에도 어긋나는 혐오이자 차별”, “가톨릭 교리가 동성애자들에게 전환 치료를 강요하다 죽음에 이른 사례가 많다. 가톨릭은 성소수자를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앨라이 활동가와 성소수자 간에 긴장 관계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시혜적 동정이 아닌 변혁을 위한 동반자 관계로 풀어 가야 한다”, “베트남 불교에서는 여성성을 강조한다. 신은 남성이 아닌 성을 초월한 사랑이며, ‘사랑의 관계’를 통해 우주를 창조했다” 등의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여성을 비롯 성소수자들이 위험과 가난, 심지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현실 앞에서, 조민아 교수("대화를 위한 여성신학" 저자)는 “성 폭력과 차별의 문제는 권력 문제와 직결된다. 그러한 권력 구조에서 파생되는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수는 없지만, 남성 중심 권력 구조를 넘어 평등한 교회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나아가자”고 열린 결말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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