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부산교구 서공석 신부 선종 1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이들이 '서공석 신부의 신학과 신앙'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이날 강창헌 씨가 발표한 서 신부의 '교회론'을 한 달간 4번 나누어 싣습니다. - 편집자
1. 말문을 열며
서공석 신부 신학의 특징 중 하나는 그의 신학 내용을 밝히는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다. 그의 글에는 학술적인 논문에서조차 각주가 많지 않다. 다른 학자들을 참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충분하고 깊은 독해를 통해 자신의 언어로 승화했기에 각주가 별로 없는 것이다. 삼위일체 교리나 계시론, 신학적 해석학 등 쉽지 않은 내용을 너무도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한 배경에는 그의 깊은 사색과 성찰이 있다. 카를 라너나 이브 콩가르, 우르스 폰 발타자르, 앙리 뤼박 등 세계적 석학들처럼 서공석 신부 역시 학술적인 책과 대중적인 글을 남겼으며, 대중을 위한 책들에서는 경어체를 사용했다.1) 그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들의 발간사나 머리말도 전부 경어체로 쓰였다. 그는 독자들을 깊이 존중했으며,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자신이 이해한 복음 메시지의 핵심을 전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간명한 그의 문체 자체가 신앙인 공동체에 대한 사려 깊은 봉사였다.
서공석 신부는 한국 가톨릭 신학사에서 중요한 저술을 여럿 남겼지만, 그의 저술에 대한 제대로 된 공식적인 평가나 비평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여기에는 그가 교회 지도자들과 가졌던 불편한 관계, 권위주의적 사목에 대한 통렬한 비판 및 한국 가톨릭 신학자들의 주체적인 사유 부족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서공석 신부는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교회론’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은 그의 여러 저술에서 어렵지 않게 추적할 수 있다. 그의 교회관은 그의 자비로우신 하느님 이해, 그의 예수 그리스도 이해, 그의 복음 이해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서공석 신부의 교회관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글은 "예수-하느님-교회" 15장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와 16장 '오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기 위하여', 그리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11장 '교회 쇄신' 및 12장 '교회 권위주의', "종교신학연구" 제8집 '우리가 청산해야 하는 문화가 있다', "영성생활" 제3호 '우리의 체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교회'를 꼽을 수 있다. 본고는 이 글들을 중심으로 서공석 신부의 교회관을 탐색하고자 한다.
2. 서공석 신부의 교회 비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래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 신학이 무너졌다고들 하지만 한국 가톨릭교회는 여전히 공의회 이전의 신학적 자장 안에 머물고 있다는 징후를 여러 차원에서 보여 주고 있다. 갈수록 더 강화되는 교회의 출판 검열, 관보(官報)에 가까운 교회 언론, 부재하다시피 한 비평적 신학, “봉사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군림하도록 되어 있는 현재 교회의 제도”2) 등이 모두 현재 진행형이다.
서공석 신부는 예수의 삶과 죽음에서 그리스도 신앙 체험을 읽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인간을 외면하고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고 이해했다. 그의 교회관에는 이러한 관점이 농도 깊게 녹아 있다.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하느님을 위해서 예수가 변했듯이 스스로 변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빌며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다.”3)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하느님을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변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아버지라는 예수의 하느님에 대한 호칭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가 변해야 함을 말한다. 아버지를 모시고 산다는 것은, 또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버지에 맞추어 내가 변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베풀고, 용서하고, 사랑하시는 분이면 우리도 그렇게 되 어야 한다는 것이다.”4)
신앙인이라면, 자비로운 하느님이나 용서하시는 하느님,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관계할 때 자신이 받을 어떤 혜택을 생각하기에 앞서 죽기까지 스스로를 내어 준 예수를 따라 하느님의 생명 현상을 살아야 한다고 그는 권고한다.
1) 시대의 산물인 교회의 언어와 제도
교부 시대는 그리스도교 사상사에서 가장 역동적이며 창의적인 시대에 속한다. 교부들은 그리스도교가 당면했으며 오늘도 당면하는 문제, 그리고 그 반대 국면들을 총체적으로 처음 직면한 사람들이었다.5) 그래서 교회가 오늘의 방식을 취하게 된 연원을 물을 때 우리는 교부 시대를 참조해야 한다.6) 그러나 시대를 외면하는 우리 교회의 실상은 치열했던 교부들의 사상을 해석해 반영하기보다 트리엔트 공의회(1543-63)와 제1차 바티칸공의회(1869-70)의 정신에 충실한 신학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기에, 간략하게 그 시대의 교회상을 살펴보는 게 좋겠다.
서공석 신부는 현재 가톨릭교회 언어와 제도의 근간이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만들어졌으며,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선포한 교황의 무류권이 로마 중앙집권화를 실현하는 무기처럼 되었고, 이후 교회 내 모든 새로운 신학적 시도들은 이단시되었다고 회고한다.7) 그리고 한국의 신학이 있기 위해서는 우선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 안에 절대적인 것으로 군림하는 중세 유럽의 언어와 제도를 탈피해야 한다고 성찰한다.8)
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종교개혁 개신교의 격렬한 공격에 대항하여 교회 제도를 옹호하면서 반종교개혁적 교회론을 전개하게 된다. 교회에 관한 교리가 트리엔트 공의회의 의제는 아니었지만, 공의회는 교회 개혁을 목적으로 삼았기에 간접적으로 교회에 관한 교의를 분명히 하였다.9) 사제직은 거의 전적으로 성찬례와 관련된 중세적 사제상이 일방적 강세를 띠게 되었고, 직무사제직을 일반 신자들의 사제직과 구별함으로써 임직에서 평신도의 역할을 거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성사 없이 구원이 없다는 것을 언명함에 따라 당연히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공인하게 되었고, 교회 생활의 실천 면에서는 교황청을 비롯하여 여러 기관과 조직의 개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법치적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10)
서공석 신부는 이와 관련해 아래와 같이 평가한다.
“교회의 조직제도는 시대적 산물입니다. 로마제국에서는 제국의 국가조직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유럽 중세 봉건사회에서 사람들은 봉건적 조직 외의 것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인류 역사 안에 살아가는 교회입니다. 8세기 유럽 봉건사회의 정착과 더불어 봉건제도적으로 확립된 교회의 조직입니다. 16세기 개신교의 분열을 겪으면서 놀란 교회는 봉건주의적 교계제도를 더 강화하여 그런 비극이 다시는 역사 안에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장치하였습니다. ... 교구의 모든 일은 주교가 결정하고 본당의 모든 일은 본당 신부가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400년 전의 결정들이 아직도 통용된다고 유구한 전통을 자랑할 일은 아닙니다.”11)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교회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교회론은 가시적 조직을 더욱 강조한다. 로베르토 벨라르미노(1542-1621)에 따르면 “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고 같은 성사를 받으며, 정당한 목자들 특히 교황의 지도하에 모인 사람들의 단체”다.12) 대체로 호교론적 특징을 띠고 있던 16-17세기의 교회론은 주로 사회 조직으로서의 교회의 존재 이유, 그 정당성, 제도의 타당성, 국가 사회와의 관계 등을 다루었다. 그래서 교회는 구원의 방법들과 그 방법을 구사하는 교계 제도와 그 교계 제도가 명하는 규율을 합한 법인체로 묘사되었고, 그 법인은 국가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완전 사회요, 이 사회를 이끄는 교황의 권위 또한 완전한 것으로 논하게 되었다.13) 결국 트리엔트 공의회와 그 이후 교회상은 봉건 시대의 산물로서 강력한 위계 제도(교황-주교 -사제-신자)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고, 이러한 제국적 교회상과 중세기적 사제상의 법적인 고착은 오늘날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 고 있다.14)
자연과학의 발달과 인본주의 및 종교개혁으로 서방 세계의 중세적 통합은 무너지고 분열을 낳았다. 이러한 사정은 프랑스 혁명으로 더욱 심화되면서 정치 사회적으로 분열되고 종교 도덕적으로 방황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두된 합리주의와 자유주의, 허무주의와 무신론에 대처하기 위해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소집되었다.
공의회는 신앙과 계시의 속성, 그리고 이성과 신앙 및 교황의 무류권과 수위권에 대한 헌장들을 반포했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긴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지만, 인간 이성이 창조에 대한 성찰을 통해 창조주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15) 그래서 공의회는 하느님을 부인하는 자가 이제 더는 신자들의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다고 단정한다. 하느님의 실재가 신조화되고, 한 분 하느님은 창조주이고 전능하며 영원하고 불변하며 세상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분으로 그려진다. 하느님은 만물의 근거로서 만물보다 우월해야 하며 자신의 본질 안에서 시간성과 역사성은 아무런 관계도 없게 묘사된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객관화된 신관에 따라 세상과 인간이 하느님과 맺는 관계성은 크게 약화되었다. 하느님에 대한 본질 묘사는 생명 없고 관계없는 하느님으로 나타나 며, 인간이 체험 실재로서의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러한 신관은 교회관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곧,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통합된 세계의 재현을 시도하고, 옛 질서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으로 발전하여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권을 도그마로 선포했다. 공의회가 로마의 중앙집권적 체제를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무류권을 선포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교황을 구심점으로 한 중앙집권적 교계 제도를 강화하게 되었다. 서공석 신부는 트리엔트 공의회와 제1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여파를 간략하게 평가한다.
“주교들과 신부들의 시선은 로마로 향하고, 신앙인들 삶의 현장을 외면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인간 삶의 체온을 잃고 화석(化石)이 되어 갑니다. 현대사회와 호흡을 함께하지 못하는, 유럽 중세 유적지와 같은 집단이 되어 간다는 말입니다.”16)
인간의 구체적 실존 상황이나 사회와 무관한 신관은 또한 인간의 구체적 실존 상황 및 사회와 무관한 교회관으로 발현됐고, 이러한 교회에서 성직자나 신자들은 그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권위적 제도에 입각한 교회관은 교회의 단일성을 잘 표현하고 주교의 독립성을 뚜렷이 했지만, 획일성을 통일성으로 착각하게 하며 교회의 내적 생명보다는 외적 구조에 치중하게 되고, 관료적 율법주의가 교회나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지배하게 되는 요소를 함께 지니게 됐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시작돼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절정에 이른 권위주의적이고 호교론적 교회관은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가톨릭교회를 주도하였고, 당연히 한국 교회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에 따라 신학과 사목의 흐름은 상당 부분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에 토대한 전통 신학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곧, 구원사와 세속사를 엄밀히 구별하면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은 인간의 영혼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그것은 교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입장에 따라 인간의 전체적인 실존 상황이나 총체적 구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고 교회가 그러한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교회의 활동 영역을 넘어서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오늘까지 공고화된 로마 중앙집권적 조직 제도에 대해 서공석 신부는 아래와 같이 비판한다.
“주교들의 선임은 밀폐된 주교회의가 상신하고 로마가 임명합니다. 한국어 전례서들은 로마의 인준을 받아야 사용 가능합니다. 로마가 한국의 실정을 한국사람들보다 더 잘 알고 있어야 하고, 한국어도 한국사람들보다 더 통달하고 있어야 그 실효성이 보장될 것입니다. 과거 중세의 관행을 고수하는 교회입니다. 따라서 여성들은 교회의 의사 결정 에서 온전히 제외되어 있습니다. ... 주교들의 서품식과 착좌식이 중세 유럽의 황제 및 영주들의 대관식과 착좌식을 본딴 것이고, 사제 서품식이 유럽 중세의 기사(騎士) 수임식과 비슷하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17)
1) "예수-하느님-교회"는 그리스도론을 중심으로 전개한 일종의 교리서이기에 경어체로 진술하며, 일반 신앙인을 대상으로 쓴 두 권의 복음 묵상서 "하느님의 생명"과 "예수님의 숨결"도 경어체를 사용한다.
2) "새로워져야 합니다", 244.
3) '우리의 체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교회', 40.
4) 같은 글, 37.
5) 보니페이스 램지 "초대 교부들의 세계", 이후정 홍삼열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94, 26 참조.
6) 위계적 교회 구조는 고대에도 강고했다.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얻은 때의 지배적 사상은 신플라톤주의였다. 이 사상이 제공한 이념 안에서 교회는 여러 계층과 서열이 있는 피라미드와 같은 조직이 된다. 하느님, 그리스도, 교황, 주교들, 신부들, 부제들, 그 밑에 수도자들이 있고 그리고 평신도들, 먼저 남자들 그리고 여자들과 어린이들이 있다.” - "새로워져야 합니다", 248-249.
7) '우리가 청산해야 하는 문화가 있다' in "종교신학연구 제8집", 354-366참조. 이하 트리엔트 공의회와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 대하여 정하권 "교회론 I", E. 스힐레벡스 "교회직무론", I.C 헤넬 "폴틸리히의 그리스도교 사상사", 기스벨트 그레사케 "은총", 하센휫틀 "하느님" 등 참조.
8) '우리의 신앙언어는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385.
9) 정하권 "교회론 I", 분도출판사, 1979, 150.
10) 같은 책, 151.
11) "예수-하느님-교회", 262.
12) 정하권, "교회론 I", 151.
13) 같은 책, 152.
14) E. 스힐레벡스, "교회직무론", 정한교 역, 분도출판사, 1985, 134-138.
15) 서공석 신부는 예수가 보여 준 것은 하느님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의 삶 안에서 지니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의 신앙언어는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383.
16) "예수-하느님-교회", 262.
17) 같은 책, 263.
강창헌
신앙인아카데미에서 10여 년간 일했고, 지금은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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