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과 천지만물이 스승일 터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과거와 이상도, 원수와 자식마저도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겸손은 이루기 쉽지 않은 덕목이어서 우리가 인격적으로 만나고 대화를 나눈 인물 중에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실로 큰 축복이라 하겠다.

지난 4월 27일 서공석 신부님께서 선종하셨다. 존중받는 성직자나 수도자라고 해서 그들의 죽음이 특출난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신부님도 갖가지 고통스러운 병고를 오랫동안 겪고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 노환 끝에 돌아가셨다. 우리의 죽음은 보통 아름답지 않다. 우리의 죽음은 보통 고통스럽다. 우리의 죽음은 현세의 무참한 고통이 이제 마무리되었다는 점에서 축복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서 확인 가능한 참된 평등은 어쩌면 존재론적 죽음밖에 없을 것이다.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 이 이상의 평등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스도 신앙은 죽음을 부정하면서 탄생한다. 예수는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 신앙인은 죽지만 죽지 않는다. 우리의 죽음은 끝이 아니기에 고통의 바다인 이 세상은 희망의 발판이며 축복일 수 있다. 물론 확인 가능한 언어는 아니다. 죽을 것을 알지만 죽음이 끝이 아닌 것처럼 살다가 가신 분들의 증언이 있을 뿐이다.

신부님이 대학에서 하신 '신론' 강의는 수강생들에게 깊은 여운과 감화를 남겼다. 신부님이 알려준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보통 신앙인이 떠올리는 하느님, 또는 주변에서 만나는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이 설교하는 일반적인 하느님과 다른 분이었다. 신부님의 강의를 듣고 전공을 신학으로 옮기거나 신학에 관심을 갖게 된 학생들이 여럿 있었다.

나는 뒤늦게 들어간 대학원 과정에서 신부님을 처음 만났고 신부님은 졸업 논문을 지도해 주셨다. 학생과 지도 교수가 함께 공부하면서 논문을 작성한다는 것이 신부님의 지론이셨다. 논문의 얼개가 통과된 다음부터는 논문을 다 쓸 때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다. 한 장을 써서 보여드리면 신부님은 내 글을 읽고 일주일 뒤 만나서 수정할 사항을 알려 주셨고, 나는 그때 또 다른 장을 써서 신부님께 보여드렸다. 신부님은 전주에 읽은 내 글의 수정 사항을 알려 주셨고 나는 또 새로운 장을 써서 보여드리는 방식으로 논문이 진행되었다. 당시에는 모든 교수가 이런 방식으로 논문을 지도하는 줄 알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야 흔치 않은 지도 방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뛰어난 신학자요 헌신적인 사목자이자 복음을 근거로 교회의 권위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던 사제라는 점에서 신부님은 내가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교부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라는 세례명이 무척 잘 어울리는 분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광야에서 부르짖는 이의 소리”였다.

2024년 4월 27일 서공석 신부님이 선종하셨다. ©경동현
2024년 4월 27일 서공석 신부님이 선종하셨다. ©경동현

신부님은 사제나 신앙인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말을 아꼈다. 예수께서 당시 정치와 종교 기득권층의 희생자이기는 했으나 주도적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 가지 이유는 될 것이다. 교회 내 인사가 교회 밖의 정의를 외치려면 교회 내 정의를 먼저 보살피고 지키는 게 우선이라고 보셨던 것 같다. 신부님의 신학은 해석학에 바탕을 둔 신학이었다.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무시되지 않길 바랐으며,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무조건 믿으라는 말을 혐오하셨다. 신앙 언어의 출처와 배경 및 그 언어가 전달된 과정과 오늘 우리에게 지니는 의미를 중시했다. 우리 교회는 ‘믿어라, 지켜라, 바쳐라’라고 말하면서 현대인의 자유와 소신을 외면하고 있다는 게 신부님의 비판이었다.

신부님은 우리 부부의 결혼식 주례 사제셨다. 보통은 덕담으로 끝나는 결혼식 강론이지만 신부님의 강론은 예사롭지 않았다. 강론 중 일부를 독자들과 함께 나눈다.

“두 사람이 공부한 신학은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얻는 수단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지식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삶과 어떤 실천을 요구하는 언어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발생한 생활 운동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기에 열리는 세계를 수용한 사람들이 일으키는 삶의 운동이었습니다. 이 세계는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 인식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켜보는 가운데 오는 것이 아닙니다’(루카 17,20). 이 언어 안에는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어떤 특권을 획득한다는 사상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주변을 불쌍히 여기고 돌보아 주는 봉사를 촉구하는 언어입니다.”

은퇴 후 건강이 아주 나빠진 상태에 계셨던 신부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신부님께 삶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렸다. 신부님의 관심사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다. 현행 교회의 교계제도는 현시대와 맞지 않아서 무너져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실종되는 상황이 무엇보다도 걱정되며 아쉽다고 말씀하셨다.

신부님에게 가장 중요하고 보람 있는 일은 무엇이었던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복음을 실천하며 그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이었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이었다. 지면으로 신부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 신부님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강창헌

신앙인아카데미에서 10여 년간 일했고, 지금은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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