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페루, 아우구스티노, 레오 14세, 시노달리타스, 평화와 한국
지난 5월 8일 레오 14세 교종이 선출되었다. 일부 언론은 이번 교종 선출을 ‘절묘한 신의 한 수’라 표현할 만큼 많은 이에게 신선한 충격과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성령의 바람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말처럼, 이번 콘클라베 또한 최근의 다른 교종들 선출처럼 언론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를 낳았다.
그로부터 3주간 진행된 다양한 행사와 활동을 통해, 새 교종이 추구하는 방향이 점차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콘클라베 당시 언론은 현실 정치의 ‘보수-중도-진보’ 구도 관점에서 분석하고 예상하였다. 주된 관심사는 새 교종이 ‘프란치스코 교종의 개혁과 쇄신을 이어 갈 것인가’ 혹은 ‘과거로 회귀할 것인가’였다. 언론은 첫 일주일 동안 교종의 메시지뿐 아니라, 그가 입은 옷, 구두의 색, 유머와 몸짓 속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 했다. 지금은 이제 많은 언론이 대체적으로 프란치스코의 다양한 유산을 이어 가되 레오 14세 방식으로 추진한다는 데 동의하는 것 같다.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제 주된 관심사가 ‘‘레오 14세 방식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로 옮겨 가고 있다.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출신으로,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페루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레오 14세의 선출은 단순한 새 교종의 등장을 넘어, 21세기 세계 가톨릭교회의 향방을 결정짓는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역사적 의미를 ‘미국’, ‘페루’, ‘아우구스티노’, ‘레오 14세’, ‘시노달리타스’, ‘평화’, 그리고 ‘한국’이라는 일곱 개 핵심어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시대의 징표 속에서 하느님께서 가톨릭교회를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이끄시는지 식별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미국: 깨진 금기와 열린 가능성
레오 14세 교종의 선출이 지닌 가장 큰 역사적 의미는 "미국인은 교종이 될 수 없다"는 오랜 금기가 마침내 깨졌다는 데 있다. 이는 마치 미국인이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되지 않는다는 불문율과도 유사한 맥락의 전통이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출신이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되는 것은, 교회의 보편성과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오랫동안 있어 왔다. 그러나 레오 14세의 선출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그의 당선은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영성과 사목 경험에 대한 국제적 인정을 반영한 결과였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종 시절 트럼프 대통령과의 이민 정책 갈등을 목격했던 추기경들은, 오히려 미국 국적을 지녔으면서도 남미에서 20여 년 선교한 그의 독특한 배경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 국적’이 제약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 교회에 봉사할 수 있는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레오 14세가 미국 안에서도 복합적 뿌리를 지닌 인물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미국의 흑인 혼혈 계보학자는 레오 14세의 외가가 뉴올리언스,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를 거친 크리올 혈통이라고 보도하였다. 이러한 배경은 그가 단지 미국 출신이라는 범주를 넘어, 다문화적 경험과 정체성을 가진 지도자란 것을 강조한다. 실제로 그는 즉위 연설에서 바티칸의 공식 언어인 이탈리아어와 라틴어는 물론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진정한 국제적 지도력을 보여 주었다. 특히 선교사로서 20년 이상 봉사했던 페루 치클라요 교구에 스페인어로 감사를 표하며, "신실한 백성들이 그들의 주교와 함께 동행하고, 신앙을 나누며,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실한 교회가 되기 위해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교종이 되기 이전,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여전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교종의 첫 미사에서는 영어로 인사말과 모두 발언을 하였다. 이는 영어가 미국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교회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언어란 걸 고려한 선택이었다.
한편, 미국 정계와 바티칸의 관계도 새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종 장례식에 참석했고, JD 밴스 부통령은 교종 선종 전 마지막으로 만난 외부 정치인이었다. 보수 성향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밴스 부통령과 루비오 국무장관은 지난 5월 25일 레오 14세 즉위 미사에 직접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례식에서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과 베드로 대성당에서 무릎을 맞대고 약식 정상 회담을 갖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바티칸과 트럼프 정부 간의 관계가 ‘허니문’ 단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팔레스타인-가자 지구 문제와 이민과 난민, 기후 위기 등 국제 해결에 있어 바티칸이 미국에 어떤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할지, 국제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페루: 가난한 자들과 함께한 20년
레오 14세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핵심 핵심어는 바로 페루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과 로마에서 수학했지만, 자신의 사제적 정체성은 페루 북부의 가난한 원주민 마을에서 형성되었다. 30대 시절 10여 년 동안 페루의 빈민촌과 산골 마을에서 살아가며, 그는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미국인’이 되었다.
페루에서의 체험은 그에게 해방신학의 정신을 삶으로 체득하게 했다. 비록 해방신학자는 아니었지만,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 속에서 복음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다. 그의 페루 체험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강조한 ‘가난한 교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라는 전망과도 깊은 맥을 같이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러한 그의 경험과 역량에 주목해 2014년 그를 페루 치클라요 교구의 주교로 임명하였고, 10년 뒤인 2023년에는 교황청 주교부 장관이라는 중책을 맡기며 최측근으로서 중대한 역할을 맡게 하였다.
레오 14세의 이러한 이력은 북반구와 남반구,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독특한 자산이 되었다. 이로 인해 다수 남미 주교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많은 추기경이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아우구스티노: 전통의 힘과 ‘개방적 보수주의’
레오 14세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출신으로는 최초의 교종이다. 13세기에 설립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는 예수회보다 규모가 작지만, 내적 성찰, 학문 탐구, 공동체 생활을 중시하는 전통을 지켜 왔다.
바티칸 역사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을 포함해 30여 명의 교종이 수도회 출신이었다. 그러나 레오 14세는 15세기 이후 가톨릭교회가 비유럽 지역으로 확산된 이래, 비서구 남반구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최초의 교종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수회 역시 선교를 사명으로 하는 수도회이지만, 프란치스코 교종은 자국인 아르헨티나 밖에서 선교사로 일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오 14세는 2001년부터 12년까지 두 차례의 임기 동안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총장으로 로마에서 활동했다. 이 동안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아프리카 등 50여 개국에 활동하고 있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를 직접 방문하며, 미국과 페루를 넘어 보편 교회의 현실을 몸소 체험하였다. 이러한 경험과 역량은 그가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임명되는 데 있어 중요한 배경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교종 즉위 인사말에서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을 인용해, “여러분과 함께일 때 저는 그리스도인이고, 여러분을 위해 있을 때 저는 주교입니다”라고 자신의 사목 정체성을 밝혔다. 이 표현은 교회 내 다양한 전통과 흐름을 존중하고 포용하면서, 일치를 지향하는 그의 사목적 방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레오 14세: 혁신적 전통 계승
미국과 페루, 그리고 아우구스티노는 그에게 주어진 과거였다. 그러나 '교종명'은 자신이 걸어갈 미래를 위해 스스로 선택해야 할 첫 과제였다. 선출 이틀 뒤, 레오 14세라는 이름이 자신을 교종으로 선출한 추기경단 앞에서 처음 발표되었을 때, 적지 않은 이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프란치스코 2세’를 예상하기도 했다는 후문도 있었다. 그러나 이름의 배경과 그 상징적 의미가 알려지자, 놀라움은 곧 수긍과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가톨릭교회 역사에서 레오 13세(재위 1878–1903)는 ‘교회의 현대화’를 이끈 인물로, 흔히 가톨릭 사회교리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가 1891년에 반포한 사회 회칙 '새로운 사태'는 산업 혁명 시기의 노동자 권리와 인간 존엄을 옹호한 문서로, 당시로서는 ‘혁명적’ 선언이었다. 이 회칙은 인권 분야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로 평가되며, 가톨릭 사회교리의 출발점이자 교회가 세상과 본격 대화를 시작한 전환점이 되었다.
인공지능 문제는 프란치스코 교종 역시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는 2024년 1월 1일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인공지능과 평화’를 주제로 삼았으며, 같은 해 1월 교황청 신앙교리부와 문화교육부는 인공지능의 윤리적 사용을 위한 방침 성격의 문서 '옛것과 새것'(Antiqua et Nova)를 발표하기도 했다.
따라서 레오 14세가 이 교종명을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레오 13세가 산업 혁명이라는 시대적 도전에 응답했던 것처럼, 레오 14세는 제4차 산업 혁명으로 불리는 디지털 혁명과 인공지능 시대의 도전에 응답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드러내었다. 노동의 존엄성을 강조한 레오 13세의 정신은 오늘날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인한 노동 위기 속에서 더욱 절실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기업의 이윤 추구 논리와 일부 국가의 기술 선점 경쟁 속에서 유엔이 인공지능에 대한 윤리적 통제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레오 14세의 등장은 마치 프란치스코 교종이 가톨릭교회의 기후 환경에 대한 관심과 실천 그리고 전 세계 기후 정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것처럼, 디지털 정의를 위한 전 지구적 운동에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레오 13세는 동방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노력한 교종이기도 하다. 이는 레오 14세가 향후 교회 일치 운동과 종교 간 대화에도 적극 나설 것임을 시사한다.
시노달리타스: 함께 걷는 교회의 실현
레오 14세의 이름이 대사회적 메시지를 상징했다면, ‘시노달리타스’(공동합의성, 함께 걷기)는 교회 안 협치에 대한 방향과 의지를 드러내는 핵심어다.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가는 여정’을 뜻하는 시노달리타스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강하게 강조한 교회의 새로운 체계며, 이는 레오 14세의 선출 과정과 그의 첫 메시지에서 가장 명확히 나타났다.
그는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첫 대중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는 시노달리타스적인 교회, 걸어가는 교회, 언제나 평화와 사랑을 추구하며, 특히 고통받는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시노달리타스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임기 후반기인 2021년부터 중점으로 추진한 구상으로, 2024년 주교 시노드를 거쳐 그 결과 문서를 2025년 5월부터 2028년 10월까지 단계적으로 실행하기로 되어 있다. 레오 14세는 이러한 시노달리타스 여정을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이번 콘클라베는 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출신 주교들 간의 폭넓은 대화와 합의의 결과물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최종 선출에서 제외된 추기경들조차 밝은 표정으로 새 교종의 탄생을 축하했다는 사실이다. 추기경 다수는 교종이라는 ‘큰 십자가’를 지지 않게 된 데 대한 안도감과 함께, 교회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이루어졌다는 공동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러한 모습은 교종 선출이 권력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절대다수의 합의를 바탕으로 ‘시노달리타스의 종(servant)’를 선택하는 과정이란 것을 아름답게 보여 주었다. 콘클라베의 이러한 과정과 결과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정치 양극화와 승자 독식의 탐욕적 정치를 넘어서는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레오 14세는 이러한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을 더욱 심화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그의 선출 자체가 전 세계 교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결과였기 때문이다.
평화: 겸손하고 인내하는 평화의 사도
교종 선출 소식과 함께, 많은 이들이 새 교종의 첫 메시지에서 어떤 단어가 중심을 이룰지에 주목했다. 나를 포함해 적지 않은 이들이 예상한 핵심어는 바로 ‘평화’였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팔레스타인과 중동 지역의 지속되는 분쟁, 그리고 그가 선출된 바로 그날 일어난 인도-파키스탄 간 무력 충돌 등,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무고한 희생이 계속되고 있는 세계 곳곳의 갈등 상황과 맞닿아 있었다. 많은 이가 이러한 비극 앞에서 새 교종이 강력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내 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예상대로 레오 14세는 첫 공식 발언에서 ‘평화’를 가장 강조하는 주제로 내세웠다. 그는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인사말로 연설을 시작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무장하지 않은 평화, 무장을 해제시키는 평화, 겸손하고 인내하는 평화입니다.”
이 발언을 접한 순간, 나는 깊은 영적 전율을 느꼈다. 짧고 단순한 표현 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가 지닌 본질과 내가 활동하고 있는 가톨릭 평화운동 단체 ‘팍스 크리스티’(Pax Christi, 그리스도의 평화)의 의미를 이 명료하게 반영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삼종기도, 일반 알현, 언론인 및 외교단과의 만남 등 다양한 공식 석상에서 레오 14세는 줄곧 평화의 가치를 강조해 왔다. 그는 무기를 내려놓고, 대화와 이해를 통해 갈등을 해결할 것을 국제 사회에 일관되게 호소하고 있다.
올해 69살인 레오 14세는 앞으로 적어도 10년 이상 교종직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10년은 신냉전의 격화, 경제 갈등과 분열, 기후 위기,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 등 인류가 직면한 복합적 위기와 도전이 중첩되는 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희년의 부활절 다음 날, 프란치스코 교종의 갑작스러운 선종은 전 세계 교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도 큰 충격과 불안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레오 14세의 선출과 함께, 이제 우리는 이러한 세계적 도전에 맞서 ‘희망의 순례’를 계속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새로운 희망과 도전
레오 14세의 선출은 한국 가톨릭교회에 새로운 희망과 동시에 깊은 도전을 안겨 준다. 한국 교회는 1960년대 김수환 추기경을 시작으로 정진석, 염수정, 유흥식 등 4명의 추기경을 배출해 왔다. 이번 콘클라베에 한국 국적자로 참여한 유흥식 추기경은 이탈리아 언론에서 유력한 교종 후보로 거론되었고, 이는 그의 개인 자질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위상 변화와 세계 교회가 한국에 거는 기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남미 출신 교종이 두 차례 연속 선출된 이후, 다음 교종은 아시아에서 나올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고, 그 중심에 한국 출신 추기경이 설 수 있다는 기대 또한 더욱 커지고 있다.
레오 14세의 한국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특별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언론에 따르면, 그는 2002년 첫 방문을 시작으로 총 다섯 차례에 걸쳐 격년으로 한국을 찾았다. 특히 한국 천주교의 순교 전통, 민주화 과정에서의 교회 역할, 그리고 다종교 사회 속에서 불교와의 대화 경험이 인상 깊었다고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두 교종이 한국을 공식 방문한 바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은 1984년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과 19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참석을 위해,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4년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을 계기로 방한했다. 이들은 모두 교종으로 즉위한 뒤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하였다. 반면, 레오 14세는 교종이 되기 전에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교종이다. 그것도 무려 다섯 차례나. 이는 그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 종교적 전통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미 준비된 교종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 역사적 기회와 도전
이미 많은 언론이 보도했듯, 레오 14세는 약 2년 뒤인 2027년 8월,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YD)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공식 방문할 예정이다. 이는 단순한 행사 참석을 넘어, 교황청과 교종이 가진 국제외교적 위상과 영향력 속에서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레오 교종 선출 10일 전인 지난 4월 29일, 팍스 크리스티는 이백만 전 교황청 대사의 저서 "나는 갈 것이다, 소노 디스포니빌레"를 소개하는 책 이야기 마당을 주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북 구상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당시 교종의 북한 방문 의지와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제2차 정상 회담이 결렬되며 방북이 무산되었던 아쉬운 기억도 되짚었다.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많은 천주교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레오 14세가 전임 교종이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국회는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서울시의회 또한 관련 결의안을 채택해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나 일부 불교계에서는 해당 특별법이 천주교에 대한 특혜라고 주장하며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2023년 8월 리스본에서 서울을 2027년 세계청년대회 개최지로 발표한 이후, 이 행사가 특정 종교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모든 청년에게 열려 있는 열린 기회란 점을 강조해 왔다. 한국과 같이 다종교 사회에서는 개신교와의 교회 일치 운동뿐만 아니라, 불교 등 이웃 종교와의 대화와 협력도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다. 이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 기후 위기 극복 등 인류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불가결한 요소다.
특히 1985년 로마에서 첫 대회가 열린 이래, 가톨릭이 다수인 국가가 아닌 지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세계청년대회는 이웃 종교와의 협력 및 다양한 배경을 지닌 청년들의 폭넓은 참여 여부가 중요한 성공의 척도가 될 것이다. 레오 14세 교종은 한국을 비롯한 다종교 국가들을 여러 차례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가톨릭 절대다수 국가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종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교회 일치와 종교 간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2027년 세계청년대회는 ‘가톨릭만의 행사’가 아니라,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처럼 전 세계, 특히 가난한 나라 청년들도 함께 참여하며,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는 공공 외교의 장이자 역사적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의 징표를 읽고, 하느님의 이끄심을 분별하며 실천해 나가는 지혜와 용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이성훈(안셀모)
아시아시민사회지속가능발전목표(SDGs) 파트너십 대표로 팍스크리스티코리아(PCK) 창립 및 제3기 상임대표(2024-25).
서울대가톨릭학생회(울톨릭) 활동 경험을 계기로 홍콩(1988-91), 제네바(1997-04), 방콕(2005-08)에서 국제 가톨릭 및 아시아 인권 NGO에서 일하고 2008년 귀국. 약 30년간 인권과 민주주의, 지속가능발전과 개발협력 및 평화 분야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해 왔다. 최근에는 천주교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으로 평화와 기후 및 SDGs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과 지식을 나누기 위해 경희대, 아주대, 성공회대 대학원에서 강의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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