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3일 안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주차장에서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 예배를 드렸다. 지난해 2024년의 ‘10주기’처럼 ‘특별하게 특별한’ 숫자적 계기가 없었고, 현직 대통령 탄핵과 파면 등 정치적 사건으로 격동하는 때였다. 게다가 비 그친 후 꽃샘추위에 강풍까지 불어, 다른 때보다 사람들이 적게 올까 봐 걱정했다. 기우였다.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고 온 이들이 우리가 준비한 의자 400여 개를 다 채웠다. 감사한 일이었는데, 한편으로는 내심 믿고 예상하던 바였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어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그리스도인 유가족과 함께 11년째 예배와 기도회를 드려 오면서 알아차리게 된 집단 지성 또는 집단 감성이 하나 있다. 뭔가 어려울 때, 상황이 좋지 않을 때, 한 발짝 더 마음을 내어 연대하는 이들이 꼭 있다는 거다. 4·16생명안전공원 부지, 광화문 광장, 청와대 앞, 서울시의회 마당의 세월호 기억관 앞 등 야외에서 드리는 예배와 기도회여서, 비나 눈이 오거나 너무 덥거나 춥거나 하면, 나는 속으로 ‘오늘은 오시는 분들이 적겠구나. 부모님들 서운하시겠네’ 하고 걱정한다. 하지만 그런 날이면 평소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온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나, 어린이날 같은 공휴일이 낀 때도 마찬가지다. 그때마다 나처럼 걱정하며 ‘그래, 나라도 가서 자리 채워 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는 이들이 많은 거다. 따뜻한 연민과 연대의 마음이 어쩜 그리 한결같을까.
하지만 10년이 지나 11년이 되도록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생명안전사회 건설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적 참사가 이어졌다. 내 가방에는 다섯 가지 색 리본이 서로 안아 주듯 달려 있다. 노랑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주황은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초록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 희생자, 보라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파랑은 아리셀 화재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며 추모하는 색이다. 다섯 색깔 리본을 만지작거리며,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는 검은색 리본도 달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우리에겐 얼마나 더 많은 색의 리본이 필요한 걸까 생각하며 슬퍼한다. 바다에서도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우리는 안전하지 않다. 일터에서도 거리에서도 심지어 집에서도 우리는 안전하지 않다.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은 세월호 참사 이전부터 한국을 “특별하게 위험한 사회”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울리히 벡은 한국 사회의 변화 가능성도 이야기했다. 세월호 참사가 있던 해 여름, 한국을 방문한 그는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를 겪으며 시민의 생각과 삶의 방식이 완전히 변화되는 ‘탈바꿈(Verwandlung)’이 일어날 거라고 했다. 그가 말한 탈바꿈은 어떤 의도적, 목표 지향적, 이념적 투쟁의 일부 또는 결과가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의 마음의 벽 뒤에서 잠재적으로 진행 중인 가능성”이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각성과 다시는 같은 비극이 있게 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시민의 내면에서 일어날 거라는 뜻이었다.
돌아보면 세상은 바뀌지 않은 것 같아 보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바꾸어 온 것을 깨닫게 된다. 세월호 이전의 대한민국과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되게 할거라던 박근혜의 약속은 공허한 정치적 수사였을 뿐이지만, 수많은 이가 세월호 이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지금도 내가 만나는 ‘세월호 활동가’들은 참사 이전에는 대부분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자기 삶의 안전한 경계 안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았던 이들이 탈바꿈하여 유가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공감하며 연대해 왔다. 그 누구보다도 철저한 탈바꿈을 실천한 이들은 유가족이다. 자식 잃은 부모들이 진상 규명을 위해 싸우는 활동가가 되었고, 진실을 찾는 노력을 전하는 유튜버가 되었고, 고통 속에서 신앙의 의미를 찾아 하느님과 씨름하는 신학자가 되었고, 말할 수 없는 슬픔을 표현하는 예술가가 되었고, 고통받는 다른 이들을 돌보는 사회적 치유자가 되었다.
또래 친구들을 잃은 1997년생 ‘세월호 세대’도 탈바꿈을 겪었다. 이들은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로 인한 아픔과 트라우마(사고 후유 장애)를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세대다. 2014년 4월 16일 바다에서 친구들을 잃은 청소년들이 청년이 되어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골목에서 다시 친구들을 잃었다. 이들에게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는 시간과 장소만 다른 ‘같은’ 참사다. 세월호 참사 때는 어려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지만,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는 더 이상 친구들의 죽음을 수수방관하지 않았다. '10·29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 모임' 간사 김지애 씨도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들과 같은 97년생이다. 그에게 ‘2014년 4월 16일’은 “입술 끝에만 닿아도 마음 아픈” 날이다. 친구들의 죽음에 엉엉 울며 기도했던 청소년이 청년이 되어 세월호 유가족 곁에서 함께 울며 함께 싸웠고, 같은 마음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연대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 예배 때 김지애 씨는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겪으며 깨닫고 다짐한 것을 나누었다.
"기억하는 일은 움직여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진실, 책임, 생명, 안전을 위해 움직여야 했습니다. 기억만 했더니 2022년 10월 29일, 또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97년생인 나는 2014년 살아남았고, 2022년 또다시 살아남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를 그저 살아남은 사람으로 두지 않으렵니다. 또다시 살아남은 저는 이제 기억의 투쟁 속에 증인이 되려 합니다."
‘97년생 김지애’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탄식만 하는 대신, 기억의 투쟁 속에 증인이 되는 이로 탈바꿈했다.
지난겨울 윤석열의 내란과 탄핵으로부터 이번 봄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선고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의 빛나는 광장에도 세월호 세대가 있었다. 12월 7일, 탄핵 촉구 집회에서 에스파의 '위플래시'에 맞춰 “탄핵, 탄핵, 윤석열 탄핵~”을 외치며 응원봉 집회 문화를 만들어 내는 데 기여한 사회자 박민주 씨도 1997년생이다. 그는 자신이 탄핵 집회 사회자로 서기까지의 과정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세월호 세대로서, 세월호 참사 당시에 학생이었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 미안함... 그래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활동가로 살게 됐는데, 2022년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과 같이 거리로 나서면서 처음 마이크를 잡았어요."
그 역시 사회적 참사를 반복해서 겪으면서 탈바꿈한 이다. 그런 세월호 세대 ‘김지애들’, ‘박민주들’이 응원봉을 들고 남태령 고개로 달려가 농민들과 연대하며 길을 열었고, 한강진역에서 밤새 폭설을 맞으며 저항했고, 계엄에서 파면까지 123일 동안의 빛의 혁명을 이끌었다. 이제는 사회의 행위 주체로서 그 누구도 외롭게 고립되어 잊히거나 배제되지 않게 하겠다는 사회적 사랑의 실천이었다.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 예배에서 우리는 그 고통의 봄날 이후 지금까지 수없이 부르고 또 불렀던 기억과 약속의 노래 '잊지 않을게'를 아픈, 그러나 따뜻한 가슴으로 함께 불렀다.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
꼭 기억할게 다 기억할게
아무도 외롭지 않게
우리는 ‘세월호 이전’, ‘12.3 내란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꿈꾸며 만들어 가려는 세상은 아무도 외롭지 않게 하는 세상,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는 세상, 아무도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는 평등 세상이다. 차가운 바람을 함께 맞는 따뜻한 영혼의 사람들과 '잊지 않을게'를 함께 부르면서 깨달았다. 그 세상이 우리 가운데 있었다.
정경일
해방신학과 참여불교를 비교 연구했으며 사회적 영성을 탐구하고 있다. 성공회대 신학연구원 연구교수, 심도학사 원장으로 일하면서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한국민중신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아픔 넘어 : 고통의 인문학"(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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