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구자환 영화감독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관련 다큐 영화를 제작해 온 구자환 감독의 새 영화 '장흥 1950-마을로 간 전쟁'이 2일 개봉했다. ‘레드 툼’, ‘해원’, ‘태안’에 이은 그의 다큐 시리즈 마지막 편이다.
한국전쟁 시기 전국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로 죽은 이는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가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서를 토대로 확인된 피해자는 5만 8000명뿐이다. 구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군경과 좌우 세력이 장흥 일대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을 유가족들에게서 듣고, 국가가 조사와 국민 화해에 적극 나설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아래는 구자환 감독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지금여기> : 이번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특히 장흥 지역의 민간인 학살 문제를 조명하게 된 배경을 듣고 싶습니다.
구자환 : 개인적으로 민간인 학살 유가족은 아니고, 아버님이 국민보도연맹원이셨다가 다행히 살아오신 경험이 있다. 앞서 제작했던 영화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2013년 ‘레드 툼’에선 경남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중심으로 민간인 학살을 다루었다. 당시만 해도 국민보도연맹이란 단어 자체가 역사학자들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던 시기였다. 2017년 ‘해원’에선 한국전쟁 당시 정부가 전국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과 이 학살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근원을 추적했다. 2020년 ‘태안’에서는 충남 태안 지역 마을 사람들이 좌우로 나뉘어 서로 죽인 비극과 그 뒤에 숨어 있는 권력 문제를 해부했다.
이번에 개봉한 '장흥 1950'의 부제가 ‘마을로 간 전쟁’인데,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고 싶었다. 전남 장흥뿐 아니라 그 일대에서 빨치산들의 활동이 많았고, 좌우를 막론하고 양쪽에서 학살이 일어났다. 군경에 의해 돌아가신 분들도, 소위 적대 세력에 의해 돌아가신 분들도 당연히 국가가 보호해야 했던 국민들인데, 이 문제에 지금까지도 국가는 아무런 조치가 없고, 정치권에서도 정치적 이해 득실에 따라 이용만 했다는 생각이 많다. 민간인 학살 문제는 유족들에게만 맡겨 두어서는 절대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해결 의지를 갖고 나서서, 전체 학살 사건에 대한 조사와 추념일 지정, 대통령의 사과가 있어야 화해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본다.
<지금여기> : 이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로서, 관객들이 어떤 점을 기억하길 바라시는지요.
구자환 : 영화 초반 부분이 1948년에 있던 2.7 구국투쟁(함양투쟁)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이 투쟁은 48년 남북 분단이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그간 지하에서 활동하던 남로당을 비롯해, 민족 자주 세력들이 분단 반대를 외치면서 전국적으로 들고 일어난 사건이다. 지금으로 보면 거의 폭동 수준에 가까운 운동이었지만, 많은 분이 잘 모른다. 해방 이후 한국 전쟁 시기까지 7, 8년 간의 역사가 단편적 사건 사고만 있을 뿐 교과서에 없다. 그 역사가 어찌 보면 내란 사태로 혼란스러운 오늘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룰 때 어느 편이 더 많이 죽였는가가 아니라 왜 이런 학살이 일어나게 됐는지, 그 원인을 조금 더 영화를 통해 궁금해 하고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기대가 크다.
<지금여기> : 영화를 제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나 인상 깊은 순간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구자환 : 이번 영화는 제작 과정에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것인데, 두 번이나 중단될 위기가 있었다. 유족 인터뷰를 하면서 당황했던 것은 학살 현장에서 어머니를 잃고 살아났던 할머니를 비롯해서 다른 유족분들이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하거나, 심지어 웃으면서 이야기하시는 경우였다. 너무 당황스러웠는데, 그분들은 이번 영화 제작 과정뿐 아니라 다른 자리에서도 몇 번 증언을 하셨다고 들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아픈 기억들이 막 되살아나니까 아무렇지 않은 듯이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특별히 장흥 대덕면은 좌우익 양쪽에서 학살이 일어난 지역이라 양족 어른들이 모여서 과거 이야기를 하면 또 분란이 일어나니까 이야기하지 말자고 해서 인터뷰에 애를 먹었다. 그렇더라도 그분들을 현장에 모시고 가면 인상이 싹 변하고, 눈물이 글썽글썽거리는 모습을 보면 그 아픔들을 한평생 살아오면서 얼마나 잊으려고, 벗어나려고 했는지 느껴진다.
<지금여기> : 민간인 학살 문제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보시는가요? 진상 규명과 화해를 위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구자환 : 진상 규명과 관련해서 대통령 직속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역할이라는 것이 전체 학살을 드러내고 찾는 것이 아니라, 유족들이 신청한 부분에 대해서만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증거를 찾는 그 과정에 머물러 있다. 그것도 대개는 유족들에게 증거를 찾아와라 목격자나 참고인을 데리고 오라는 수준이다 보니 진상 규명 과정이 매우 더디다. 마치 의료 사고가 났을 때, 진상 규명의 책임을 전문가도 아닌 환자에게 지우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이유도 있는데, 증거 자료 없이 진실 규명 자료를 가지고 법원에 가면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에 접근하는 방식을 국가가 가해자고, 국민이 피해자이니 증거 자료를 피해자한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주도적으로 피해를 주장하는 유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국가에서 기록으로 보존할 의무가 있는데도 그렇지 못한 경우에 대해, 여순 사건을 비롯해 몇몇 재심 과정에서 국가 기록을 보존하지 못한 점에 국가의 잘못을 인정한 판례도 있다.
<지금여기> : 가톨릭교회는 과거사 문제와 사회 정의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이 영화가 신앙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요? 교회가 기억과 화해의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구자환 : 제가 만든 다큐 4편이 다 너무 어둡고 아픈 영화다. 심지어는 마음 아파서 못 보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저는 종교를 가진 분들이 조금 더 아픔을 보듬어 주고, 이 의제를 공론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가톨릭 정의평화위원회에서도 몇 차례 영화 상영을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민간인 학살 피해 유가족들이 4.19 혁명 이후에 전국에 유족회를 조직한 적이 있다. 불행히도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이분들을 군사 재판에 회부시키고 처벌하면서 해산되었다. 그 뒤로는 민간인 학살 사건은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때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80년 광주도 없었을 것이고, 이번 계엄 사태가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사회가 국민들의 생명이 존중되지 않고 인권 침해가 계속 이루어지는 이유가 1950년대에 있었던 이 학살에 대해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그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을 벌고 지위를 얻었기 때문에, 이후에 권력을 잡는 사람들도 그걸 따라가려고 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노력를 하고 있지만, 특별히 가톨릭 쪽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역할을 해 주시기를 기대한다.
<지금여기> : 이 영화는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나요?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작품이나, 더 다루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구자환 : 4월 2일, 13군데 개봉관에서 개봉한다. 기본적으로 일주일은 상영한다. 상업 영화가 아니다 보니 극장 사정에 따라 사람들이 전혀 보지 않는 시간에 배치할 수 있고, 관객이 없으면 격일제로 상영하기도 해서 극장에 시간 문의를 하고 가시면 된다.
민간인 학살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이번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상황이 된다면 항일 독립운동가를 소재로 한 다큐 영화를 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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