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하시지 않는 하느님”, 로널드 롤하이저, 이선정 옮김, 허찬욱 감수, 생활성서사, 2025
시대를 대표하는 영성 작가 로널드 롤하이저 신부가 오랜 묵상과 기도 안에서 수많은 이의 절절한 체험을 녹여낸 사순 시기 묵상집이다. 예수의 수난기를 읽고 해설하는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 쉽지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놀라운 영성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활짝 열어 준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2025년 정기 희년을 맞아 발표한 교종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Spes Non Confundit)를 통해 “희망을 지지하고 북돋우”라고 전한다. 이번 희년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그들의 “희망이 빛이 모든 사람을 비추기를” 바라며, 희년과 순례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시기에 이 책은 우리를 둘러싼 고통 속에서 희망으로 안내하는 하느님의 은총을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 암흑 속 고통을 느끼게 하시는 이유는, 하느님이 우리가 생각하는 하느님이 아니시고, 참신앙도 우리가 상상하는 신앙 너머에 있음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느끼고 상상하는 것 너머에 계십니다. 신앙도 가슴으로 느껴지는 따뜻한 감정이나 마음속의 확신이 아니라, 사고와 감정을 넘어 영혼에 찍힌 낙인처럼 존재한다는 걸, 하느님은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56쪽)
“완덕의 길”(개정판), 예수의 성녀 데레사, 최민순 옮김, 바오로딸, 2025
그리스도교 역사상 뛰어난 신비가이자 첫 여성 교회박사인 예수의 성녀 데레사(1515-82, 대데레사, 아빌라의 데레사로도 불림)의 주옥같은 작품 중 하나다. 성녀가 창립한 첫 개혁 가르멜 수도원인 성 요셉 수도원 수녀들에게 전하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회원들을 위해 이 글을 썼다. 수도 생활과 영적 생활 전반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 권고에서 신비 체험까지, 겸손하면서도 대담하고 솔직한 이야기체로 풀어 간다. 모두 42장으로, 기도를 위한 전제 조건인 덕행(청빈, 순수한 사랑, 이탈, 겸손)을 강조하고, 다양한 기도의 길(구송기도와 묵상기도, 관상기도)과 단계를 설명한다. 특히 ‘주님의 기도’의 각 구절을 풀어 기도 여정과 악의 유혹에 대처하는 방안도 가르친다.
지난해에는 성녀가 가르멜회 수녀들에게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기도와 영성 단계를 담은 고전 "영혼의 성" 개정판이 먼저 나왔다. "완덕의 길"은 고 최민순 신부의 번역으로 1967년에 초판이 발행됐고, 개정판은 “영혼의 성”과 통일성을 갖춘 판형과 디자인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두 책 모두 최민순 신부의 시적이고 유려한 필치를 보존하면서, 어렵거나 의미가 모호한 표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수정하거나 설명을 달았다.
“이걸 잘 알아두십시오. 이름을 얻으려는 데에는 언제나 돈이나 재산의 욕심이 따릅니다. … 그러나 진정한 청빈에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이름이 따르는 법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주님을 위하여 가난하게 됨을 일컫는 것으로서, 이 경우 하느님 외에 그 누구의 마음에 들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누구도 아쉽지 아니할 때, 도리어 많은 벗을 얻는다는 것은 아주 뻔한 일로서 나는 경험으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82-83쪽)
“역설들”, 앙리 드 뤼박, 곽진상 옮김, 가톨릭출판사, 2025
앙리 드 뤼박은 20세기 중반에 나타난 ‘새로운 신학’의 주창자로, 혹독한 의혹에 시달리다 1950년에는 예수회 내부 결정으로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1964년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준비 위원으로 임명되며 정통성을 인정받았고, 공의회 내내 신학을 쇄신하는 데 기여했다.
이 책은 그가 가장 아끼는 제자들이자 드 뤼박 신학 연구자(조르주 샹트렌 신부, 미셸 살 신부)가 편집해 그의 신학 사상과 방법, 내용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역설들”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원천을 바탕으로 신학을 깊이 연구하며, 본질을 탐구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각 단편을 따로 떼어 묵상하거나 다른 유사한 단편들과 연결해 묵상하면서 풍미를 음미할 수 있다. 어느 때든, 어디를 가든, 영적 쉼이나 여유가 필요할 때 읽을 수 있게 구성되었다.
“단 한 걸음이면 가장 진실한 진리에서 가장 거짓된 오류로 갈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확증한다. 이처럼 사실에 대한 확증에서 위험하리만큼 진리를 오류와 가깝게 여기며 단죄하는 데까지도 한 걸음에 불과해서 자주 한계를 넘어선다. 이런 경우 큰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109쪽)
“천주의 아이들”, 김성범, 청동거울, 2025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와 정착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천주교 박해의 처참한 역사를 소년의 눈으로 생생하게 그려낸 청소년 장편 소설이다.
이 소설은 정해박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고 있다. 찬성이의 아버지는 1814년 을해박해로 목숨을 잃었다. 주인공 찬성이는 청송에서 태어나 곡성 옹기촌에서 자라면서 자신의 처지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점차 깨우치고 서서히 천주교를 받아들인다. 14살에 일어난 정해박해 때 마을을 지도해 온 회장과 찬성이 어머니 등 일부는 미리 피신해 위기를 넘기지만, 수많은 마을 사람은 관아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힌다. 결국 이들마저도 1839년 기해박해로 함께 처형되고 만다.
당시 아이들은 박해에서 제외되었기에 찬성이와 아이들은 무사할 수 있었으나 황폐해진 마을에 남은 아이들과 함께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찬성이는 아이들을 모아 굳세게 옹기촌을 재건하면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피워 나가게 된다. 이 소설은 박해 사건을 중심으로 한 소년이 마을 지도자로 커 나가는 희망찬 성장 서사를 보여 준다.
“난,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했단다.”
엄마는 다시 말을 끊고 한참 동안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말을 이었다.
“고문 받는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신음 소리만으로도 치가 떨리게 무서웠다. 난 네 핑계를 댔단다. 하느님, 하느님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 찬성이를 살려 주십시오, 하느님!”
엄마는 나를 안고 있는 듯, 어린 나를 어르는 듯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난 내가 고문을 당하는 걸 상상하는 것도 싫었고 무서웠지만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되면 너를 어떡한단 말이냐? 그렇잖아도 병치레 많은 너를 돌봐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난 모든 게 너무너무 무서웠단다.”
엄마가 배교를 한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다.(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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