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 번역, 출간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가 예수회 소속 미국 포덤대학교 퀴어학생연합이 낸 기도와 묵상집 “기도하는 포덤”(Queer Prayer at Fordaham)을 한국어로 옮겼다. 이 책은 기금을 통해 출판, 무료 배포될 예정이다.

한국어 제목 “퀴어 기도”로 출판될 이 책에는 퀴어 그리스도인을 위한 영적 자료와 기도문 퀴어 당사자, 연대자들의 경험과 삶, 신앙이 31개 묵상 글로 녹아 있다. 원문과 별도로 한국의 가톨릭 퀴어와 앨라이의 이야기 8편도 실었다.

지난 7일, 옮긴이 10명 가운데 5명을 만나 책 내용과 옮긴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직장 생활과 학업을 이어 가고 있는 이들은 윤슬, 소소, 카리, 정경, 코코넛이란 별칭을 썼다.

처음 이 책을 접한 것은 정경 씨였다. 2023년 세계청년대회 사전 대회에 참여했다가 프랑스와 미국의 퀴어 청년들을 같은 조에서 만났고, 그 가운데 한 미국 청년이 이 책을 낸 포덤대에서 퀴어학생연합 대표로 활동한 이였다. 그들의 나눔과 이야기가 유독 마음에 와닿던 정경 씨가 받고 돌아온 책이 이 책이었다.

그 뒤 책 내용을 주변 친구들과 함께 보면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생각하게 됐고,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 운영위원인 소소 씨에게 전달됐다. 그리고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를 통해 모인 사제 1명과 평신도 청년 9명이 번역에 참여하기로 했고, 사업팀으로 구성된 이들은 2023년 9월 첫 모임을 시작했다.

소소 씨는 “당시에 정경 씨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 주고 번역해서 한국에 소개하면 좋겠다는 제안도 이어졌다”면서, “개신교 쪽에는 퀴어 그리스도인의 경험에 대해 엮은 책이 있지만, 기도, 영성 그리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제안하는 책은 가톨릭에는 거의 없었다”며 이 책이 가진 의미를 설명했다.

"퀴어 기도" 책과 모든 과정을 만들어 낸 이들의 손. ⓒ정현진 기자

책 구성은 크게 기도와 그에 대한 묵상글로 되어 있다. 성모송, 성인들의 기도와 같이 우리가 익히 아는 기도문과 대중 노래 가사를 두고 묵상한 내용도 있다. 덧붙인 한국인 저자들의 글 8편도 기도문이나 영성 자료는 직접 썼다. 

이들이 가장 먼저 번역해 미사에서 나눈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기도’는 포덤대 학생 벳트 댄거넌 씨가 쓴 기도문이다.

“이 기도는 버림받고 배척받은 이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하느님께서도 여러분을 환영하십니다.
(중략)
이 기도는 버림받은 이들,
거침없이 말하는 이들, 깨어지고 마음이 무너진 이들,
잃어버린 은전과 무지개빛 양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후략)”

시의 일부다. 그는 이어 묵상 글에도 이렇게 썼다.

“지난 몇 년 동안 저의 퀴어함을 인정함에 있어, 저는 이를 저의 신앙, 영성 그리고 제가 속한 종교와 일치시키는 여정에 올랐습니다. 저는 저의 퀴어함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반대된다고 여긴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 성령 안에서, 퀴어 당사자들이 교회 안에서 경험한 모든 외면과 괴롭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주님께서 여전히 그들을 환영하신다는 것을 알리는 기도문을 작성하고 싶었습니다. 교회, 혹은 신앙을 가진 가족 구성원들에게 배척받아서 더 이상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퀴어 친구들이 많습니다. 이제, 이 악순환이 깨질 때가 되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며, 어떤 이(익명)는 이렇게 묵상한다.

“성 프란치스코의 이 기도는 매우 아름답지만 한 가지 도전을 줍니다. 퀴어들은 지나치게 자주 자신에 대한 진실을 부정해야 한다고 느끼는데, 어떻게 ‘자기 버림’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런 강요된 부정을 막으려면, 자기 버림을 자기 수용의 다음 단계로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자기 수용에는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어졌으며, 우리 모두 하느님의 계획에서 고유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모두의 존엄성을 긍정하는 사회가 되도록 힘쓸 때, 우리의 자기 수용은 ‘자기 버림’이 됩니다.”

"퀴어 기도" 머리말 중에서. (자료 제공 =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

저자들은 자신들의 기도와 더불어 성모송, 주님의 기도, 성경 구절에 자신만의 이야기와 묵상을 연결시킨다. 그럼으로써 성소수자와 그의 가족, 친구들뿐 아니라 그야말로 “버림받은”, “버림받지 않은” 모두를 위한 기도와 노래와 영성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 번역팀은 단어 하나하나를 애써 골랐다. 각자 분담한 내용을 번역해서 모이면, 다른 사람들의 번역 내용을 합평하고, 보다 일반적이고, 어떤 누구만을 위한 용어나 단어가 되지 않도록 머리를 맞댔다. 약 15개월은 “너무너무 치열하고 꼼꼼하고 섬세하게 살피며 지나온” 시간이었다. 이후의 검수 기간은 한 번 회의가 진행되면 3시간도 모자랐다. 청년, 사제, 수도자, 부모, 신학 전공자, 인권 활동, 청년 단체 활동 등,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입장과 역할은 촘촘히 씨줄과 날줄로 엮였고, 고통이라면 고통이었을 작업 결과는 깊은 의미로 남았다.

“번역하면서 가장 중심에 둔 것은, 물론 퀴어 감수성을 존중하는 것이었어요. 아들과 딸을 일컫는 ‘자녀’라는 단어는 이분법적 성별의 의미를 덜 갖는 ‘아이들’로 바꾼다거나 하는 것이죠. 또 ‘퀴어’라는 풍부한 맥락을 갖는 단어를 단순히 어떤 정체성으로 부르는 한계도 극복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해야 했어요. 미국의 문화적 특성을 한국의 맥락 안에서 제대로 반영되도록 하는 것도 있었죠.”

'성인들의 기도' 편을 옮긴 카리 씨는 “성모송, 성 소화 데레사에게 바치는 기도 등은 이미 번역된 것이지만, 묵상 글 번역을 통해서는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퀴어 영성 시각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면서, “특히 무성애자가 성모송을 묵상한 내용은 무성애자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결합해서 살아갈 것인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참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정말 의미 있다고 느낀 점 중 하나가 이 책이 현재 처해 있는 퀴어가 차별, 고립, 고통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통해 투쟁하면서 발견한 하느님 이야기들로 우리를 데려가고 이끌고 가 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 모두가 기도하는 자리에서 차별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았어요. 누가 그래야 한다고 한 것이 아니라 이미 모두가 그걸 전제로 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함께 계속 고민했어요. 이 책이 퀴어 당사자들은 물론, 교회 안에서 너무 큰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어요. 이 목소리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이 기도문 하나가 도착했을 때, 그들의 내적 자유로움과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고, 교회로 돌아올 수 있는, 교회 안에서 막혀 있었던 부분을 풀어줄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들과) 같이 기도하고 싶어요.”(윤슬 씨)

(자료 제공 =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

옮긴이들은 퀴어들의 기도, 퀴어와 공명하는 기도문을 읽고 번역하면서 결국 그 모든 것에 참여하고 읽고 나누는 모두를 위한 것이 됐다는 것에 동의했다.

후원자들 중에서, 또 기관이나, 단체, 개인 등 원하는 곳에 책을 무료 배포하기 위해 지난 2월 5일부터 출판을 위한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23일 마감 예정이었지만 모금 창구를 연 지 하루 남짓만에 목표액 300만 원이 모두 찼고, 11일 현재 142퍼센트인 426만 원이 모였다. 책은 인쇄물로도 제작하고 곧 무료 파일로도 배포할 예정이다.

이들은 모금 과정에서도 ‘연대’의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했고, 댓글로 보내는 응원 한마디 한마디에 정말 많은 울림이 있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여정을 마무리한 소감을 들었다.

“저에게는 저의 신앙에 도움이 많이 됐던 책과 번역 과정이었습니다. 분명 읽으시는 분들께도 그런 책일 거라고 알고 있고 믿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결과도 그렇고 이 책이 끌어안는 모든 사람을 생각했을 때도 이 모든 과정이 진짜 신비롭게도 하나님께서 하셨다라는 생각이 분명하게 들었습니다. 분명 읽으시는 분들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정경 씨)

“많은 토론을 했고, 시간도 힘도 많이 들었고, 감사한 분들도 많습니다. 고생만큼 좋은 결과가 나와서 너무 좋고, 알맞은 때에 알맞은 책을 알맞은 사람들이 만나서 작업했다는 것이 모두 신비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의 정체성과 신앙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이 책의 기도문들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잃은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코코넛 씨)

“하느님께서는 모두를 사랑한다는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사실을 모두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습니다. 책을 읽으시는 분들도 그걸 많이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카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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