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하는데, 내가 사는 이곳 알라메다에는 며칠 간 혹독한 찬비가 내렸다. 아늑한 다락방 구석에 앉아서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느끼는 일이, 행복하지만 죄스럽다. 집이 없이 거리를 서성거릴 사람들, 그리고 언제 추방될지 몰라 두려움에 숨죽이고 있을 많은 서류 미비 이민자들을 생각할 때, 자꾸만 미안하고, 인간다움과 그 존엄을 지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어지럽고 걱정스런 현재의 횡보에 여기저기 불안감이 감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영성 지도자 모임(Spiritual Directors International)은 최근의 여러 행정 명령들 앞에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주제로 특별 모임을 가졌다. 특히 다양성과 다름을 포용하는 우리의 취지가 위협받을 수 있는 현실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주제와 함께 (사실 트럼프 정부의 행정 명령 중 하나는 DEI 프로그램에 관련된 연방 정부의 지원을 끊는 것인데, DEI는 Diversity 다양성, Equity 공정, Inclusion 포함된 사람의 약자로, 서로 다양성을 받아들임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는 많은 사람이 상처 받았다) 줌으로 모인 우리는 서로의 느낌을 나누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경청했다. 그러면서 결국,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의 가치나 본질적인 부분을 포기할 수는 없으며, 지금 사람들이 느끼는 모든 분노와 두려움을 보듬어 주고, 들어 줄 수 있는 공간을 가능한 많이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새로운 에너지를 느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이런 일련의 폭력적인 상황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메시지는 우리가 무력하다고 느끼는 것이니, 그에 대한 저항으로, 날아가는 새가 계속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조그만 몸짓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나도 고개를 엄청 세게 끄덕였는데, 그 모임에 온 다른 사람들도 그런 듯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경직된 분위기에서 풀려나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 우리가 살면서 어려움과 시련 속의 힘든 시간도 지나지만, 결국 영성적인 인간, 그래서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는 존재란, 유머를 잃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존재란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는 많은 성인에게서 넘치는 유머를 본다. 온몸이 꽁꽁 얼어붙는 추운 겨울 밤, 웅덩이에 빠진 마차를 힘들게 끌어 올리던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하느님이 친구가 별로 없는 이유는, 친구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시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몸이 늙고 불편해서 잘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늙은 당나귀라고 부르며, 자신을 향해 웃던 거룩한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우리 귀에 익숙하다.
사실 요즘 같은 세속화된 세상에 주님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조심스럽고 또 어려우며, 심란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하느님을 대면하면서 자신의 거룩하지 못한, 죄스런 실존을 보고 아 망했다!라고 신음한 이사야의 고백이 마음에 계속 남는다. 요즘의 세상을 바라보며 두려움, 무력감과 분노를 잘근잘근 씹으며,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 내게 하느님이 오셔서 나를 부르시면 나도 이 예언자처럼 아, 망했다!라고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는 루카 복음 5장의 베드로처럼, 그물을 던지라고 하신 곳에 던진 덕에 고기를 많이 잡은 날이 많았음을 고백하게 된다. 나름 주님을 따르는 길에 얻어진 내 일이라 주장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책을 쓰고, 영성 지도를 한 모든 일이, 실은 그저 그물을 던지라고 하신 곳에 던진 수고 외에 그다지 한 일이 없음을 느낀다.
그래서, 나도 베드로처럼,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랑 때문에만 살아온 시간이 너무 적어서. 그러니 망했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주님께는 차라리 저를 떠나 달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제 내 생의 등잔에 얼마만큼의 기름이 남아 있는지 모르는데, 조바심도 나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내 앞에 있는 어떤 사람을 순전한 사랑으로 섬긴 순간이 아니었다면, 인정을 받고자 했거나, 습관적으로 했거나, 혹은 제 잘난 맛에 했던 어떤 봉사였다면, 그것으로 고기는 제법 많이 잡았겠지만, 부끄럽게도 사람을 낚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그릇된 사랑이었어도, 사랑이었다면,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낚았으리라.
오늘 나는 우리 수녀님들과 함께 더 깊은 공동체를 살아가고 싶은 열망을 만나고 돌아왔다. 많은 수녀님이 이제 양로원으로 가시고, 우리는 더 작게, 그러나 더 깊은 사랑의 공동체를 열심히 만들기로 약속했다. 내 비록 내 수도생활은 이사야 예언자처럼, 망했구나!일지라도, 낮은 마음으로 하느님을 바라면서 새롭게 살아가길 소망해 본다.
이제 곧 뿔뿔이 흩어져 정든 베이 지역을 떠나게 될 수녀님들의 모습이 처연하고 아름답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사랑이 부족했음을 노래하면서, 이제부터 사람 낚는 어부가 되고 싶다는 절절한 희망을 노래하는 운명의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 모임을 마치며 우리는 매우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를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서로의 노년을 축복하며 속삭인다. 아! 어제까진 망했어. 그러니 이제부턴 사람을, 그리고 사랑을 낚아 보자고.
박정은 수녀
홀리네임즈 대학 명예교수. 글로벌 교육가/학습자.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인문학"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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