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걷는예수의길]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 5,1-11) 복음 묵상

꼬마였을 때 앨리스라고 불렸고, 평생 ‘미스 럼피우스’라고 불린 루핀 부인은 바닷가 도시에 살았습니다. 집 현관 계단에서 보면 커다란 돛단배들이 북적이는 부두가 보였다고 해요. 어릴 적에 뱃머리 장식품을 만들던 할아버지 무릎에 올라앉아서 머나먼 세상 이야기를 듣곤 했지요. 이야기가 끝나면 앨리스는 “나도 어른이 되면 아주 먼 곳에 가 볼 거예요”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다, 얘야. 그런데 네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구나.” 앨리스가 “그게 뭔데요?” 묻자, 할아버지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지” 했답니다. 바버러 쿠니가 쓰고 그린 "미스 럼피우스"라는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처음 제자들을 부르시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몬 베드로와 그 동료들이 밤새 그물질을 하였으나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갈릴래아의 이 어부들은 이날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됩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복음서는 전래동화처럼 “그 후로 그들은 예수님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았더랍니다” 하고 끝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기대한 것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5,10) 하였고, 그들은 배를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은 깊은 곳에 그물을 치는 일입니다. 그 일은 아주 두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놀라운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은 이런저런 경우에 예수님에게 수없이 “두려워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결국 예수님이 하고자 하신 일은 ‘두려움을 넘어서는 사랑’이었던 것이지요. 예수님과 제자들이 하는 사랑은 위험을 무릅쓰는 사랑이었지요. 스스로 고난을 부르는 사랑이지만, 그래서 위대한 사랑이겠지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랑이었지요.

앨리스는 어른이 되자 제일 먼저 열대의 섬으로 갔고, 그곳에서 만난 바파 라자는 진주 조가비에 그려진 ‘천국의 새’를 보여 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겁니다.” 아마도 미스 럼피우스는 그곳에 잘 살았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만년설이 덮혀 있는 산봉우리도 올랐고, 정글을 뚫고 지나기도 했고, 사막을 횡단하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곳에서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어찌 보면 많은 일과 사람으로 버거웠던 미스 럼피우스는 죽을 자리에서 살기 위해 바다가 보이는 곳에 집을 구합니다. 그곳에서, 그녀가 이미 만난 세상은 멋졌지만, 더 아름답게 할 만한 일을 찾습니다.

미스 럼피우스는 집 주위에 꽃씨를 뿌리고 정원을 꾸몄습니다. 이듬해 그녀의 창문으로 파란 꽃, 보라 꽃, 빨간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올 여름엔 루핀 꽃씨를 많이 뿌려야지, 생각합니다. 언덕 위에 올라가 보니, 미스 럼피우스의 정원에서 번져 나간 루핀 꽃이 가득했습니다. 바람이 한 일입니다. 그때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미스 럼피우스는 서둘러 꽃씨 가게에 가서 루핀 꽃씨 5부셸을 주문합니다. 그 뒤로 그녀는 꽃씨를 주머니에 가득 넣고 다니며 들판이며 언덕이며 고속도로 곁에도, 시골길에도, 교회 뒷마당에도, 도랑에도 돌담에도 뿌렸습니다. 사람들은 ‘저, 정신 나간 늙은이’라고 입방아를 찧었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이듬해엔 그녀이 눈길이 닿은 모든 곳에서 루핀 꽃이 피었습니다.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카르타고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160-220)는 ‘진리에 미친 자’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지옥에 면하는 데 있지 않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얕은 물이 아니라 깊은 물로 불리운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사소한 행복을 넘어서야 그분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내 집 앞마당에 꽃씨를 뿌리고 즐거워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온 마을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갈망하는 사람이겠지요. 요즘 진행되는 국정조사와 헌법재판소 변론을 듣다 보면, 대의명분 뒤로 숨겨진 복잡한 이해관계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소한 욕망이 사람을 추하게 만듭니다. 비틀린 권력에 갈피갈피 엮인 사람들이 비루하게 변명합니다. 그래서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과 국가정보원 홍장원 차장의 떳떳한 발걸음과 입바른 소리에 박수갈채를 보내게 됩니다.

지난 4일, 윤석열 탄핵 심판 5차 변론기일에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윤석열 대통령이 지시한 '정치인 체포'에 대해 증언했다. (사진 출처 = KBS NEWS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지난 4일, 윤석열 탄핵 심판 5차 변론기일에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윤석열 대통령이 지시한 '정치인 체포'에 대해 증언했다. (사진 출처 = KBS NEWS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일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입니다. 제 욕망이 아니라 공동선을 위해 일하는 것은 아직 위태로운 일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일이 얼마나 우리를 두렵게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가난한 백성들에게 위로가 될 만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의 성전 세력과 로마 군병들에게 심문과 고문, 처형을 당한 분이 왜 이런 가혹한 현실을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하물며 부활하신 그분이 제자들을 만나서도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빈 무덤을 찾아왔던 여인들에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처음부터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라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그분은 그 사람들이 갈릴래아에 있고, 그 사람들 속에서 나를 보게 되리라 장담합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며 가난하게 살던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들을 뜻하는 아나빔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역시 그들 가운데 하나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숨결을 사랑하는 이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사랑이 있는 곳으로 ‘두려움 없이’ 가라고 그분은 오늘도 우리에게 당부합니다. 더는 억울한 눈물이 없을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한상봉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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