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자수도회 근황을 13회에 걸쳐 소개하였다. 미국 여자수도회가 경험한 일이 조만간 한국 수도회에도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수도자들이 이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셨을지 궁금하다.

미국과 우리 문화가 달라 미국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 한국 교회에 같은 형태로 반복되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몇 가지는 같을 가능성이 크기에 이 현상들이 의미하는 바를 잘 읽고 대비하면 미래 준비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거스르기 어려운 장기 하락 추세

[그림 1] 미국 여성 수도자 총수 추이(1943-2013)
[그림 1] 미국 여성 수도자 총수 추이(1943-2013)

[그림 1]은 1943년에서 2013년까지 미국 가톨릭교회 수녀 총수 변동 추이를 보여 준다. 이 그림에서  1965년(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폐막한 해)을 정점으로 반세기 동안 수녀 총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사이 일시 반등이 두세 차례 있었지만 대세 하락 추세를 거스르진 못하였다. 2013년 이후에도 이 하락 추세는 계속 이어졌다.

수녀 총수는 정점이었던 1965년에 18만 명을 조금 넘었다. 2023년에는 대략 7만 명 정도라 한다. 이는 정점 대비 40퍼센트 수준이다. 다만 남은 수녀들의 평균 연령이 80살에 육박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성소는 가늘게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그림 1]은 대세 하락 국면에 들어서면 반등이 쉽지 않다는 걸 보여 준다. 또한 수도회가 쇠퇴기에 접어들어도 종말에 이르기까지 수십여 년이 걸린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그럼 수도회는 이러한 숫자의 감소 이면에서 어떤 일을 경험할까?

수도회 통폐합

회원 수가 줄고 나이가 들어 독자 생존 불가능한 시기 또는 그 직전에 수도회를 통폐합하였다. 같은 수도회의 경우는 다른 지부나 관구에 통합되었다. 규모가 작은 수도회의 경우는 유사한 카리스마를 가진 수도회에 병합되었다. 더 규모가 작은 수도회 회원은 개인적으로 자신을 받아주는 수도회를 선택해 전적하였다. 퇴회하여 다른 수도회를 창설하거나 평신도들과 새로운 공동체를 시작하기도 하였다. 평생 애정을 가지고 투신해 온 수도회가 더 이상 존속하지 못하고 다른 수도회에 통합/병합되는 것은 서글픈 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건강상의 이유로 남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어떻게든 수도자 신분을 유지하며 수도생활을 계속하고 싶은 경우 불가피하게 이러한 선택을 하였다.

물론 수도회들은 이러한 선택을 하기 전에 백방으로 자구책을 찾았다. 입회 상한 연령을 높여 수도생활 문턱을 낮춰 보았다. 학자금 대출 빚을 갚아주며 초대도 해 보았다. 그러나 대세 하락 국면에서 성소 계발이 그리 성공적이진 못하였다. 어렵게 입회한 경우에도 기성 회원과의 세대 차이로 종신에 이르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극소수만 살아남았다. 이들이 희망이면 좋겠는데 숫자가 너무 적고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수도회들은 재산을 정리하여 어떻게든 존엄한 노후를 맞으려 애를 썼다. 그런데 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수도생활에는 좋은 입지 조건이었는데 주거용으로 생각하면 교통이 좋지 않아 매수자를 찾기 어려웠다. 이 경우는 교구에 기부하거나 평신도 사도직 단체에 양도하였다. 그래도 안 되는 경우는 비워 둘 수밖에 없었다. 용도를 변경한 경우도 있었다. 같은 수도회에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다른 관구나 지부가 있으면 그곳 회원의 양성 또는 사도직을 위하여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였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내리사랑을 실천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백방으로 노력해도 쇠퇴를 거스를 수 없게 되었을 때 부득이 문을 닫았다.

살림 규모를 줄이고 생활 수준을 낮추면서도 적극적인 투신에 나서는 수도회, 회원들도 많았다.(나는 이런 유형을 ‘장렬전사형’이라 부른다.) 그렇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수도회가 존속이 가능한 한 은퇴 없이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은 존엄한 노후 실현의 한 형태를 보여 준다.

수도회의 정신적 유산을 나누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였다. 그동안 자기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공유해 왔던 평신도들을 더 깊숙이 개입시키거나 아예 그들에게 운영권을 위임하였다. 그런 이들이 없으면 신자가 아니어도 이런 정신을 연구하거나 실천하는 이들에게 정신적 유산을 양도하였다. 어떻게 해서든 창설자와 창설 카리스마가 이어지는 것을 기대하며 움직였다.

공동체 내부적으로는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힘들어졌다. 모두가 종신서원자 그것도 40년 이상 수도생활을 한 이들이 한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새롭게 들어오는 젊은 회원들과는 소통 단절이었다. 세대 차이가 세대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대체로 이 경우는 젊은 회원이 포기하는 선택을 하였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그저 안 맞아 헤어졌다. 체력과 기력이 떨어지면 관대함도 같이 떨어지는 경우가 흔하였다. 따스한 공동체와는 거리가 먼 경우도 많았다. 어찌 보면 이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이처럼 수도회가 쇠퇴기를 맞아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필자는 이러한 시기에 최후를 맞는 방식을 세 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 앞에서 첫 번째 유형인 장렬전사형을 소개하였다. 두 번째는 요양원형이었다. 양로원은 노인끼리 살지만 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고 요양원은 남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다. 따라서 요양원형이라 하면 수동적으로 최후를 맞는 방식 또는 그런 태도를 가리킨다. 마지막이 카리스마의 적극적 해석 유형이다. 이런 시기에는 카리스마를 넓게 해석하여 마지막까지 사랑을 나눠 줄 대상을 찾아보는 것이다. 작더라도 자신의 카리스마를 이어 가려는 노력을 이어 가는 방식이다. 당연히 이 세 가지 사이에 우열이 있진 않다. 그저 최후를 맞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박문수

가톨릭 신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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