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출처 = America Magazine)
제임스 마틴 신부
작년 10월에 열린 세계주교시노드 정기 총회 제1회기에서 많은 시노드 대의원이 성소수자 쟁점이라고 느슨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놀랍지 않았다. 내가 놀란 건 반대하는 강도와 사용 언어, 그리고 이 주제가 일부 대의원에게 불러일으킨 분노였다. 내가 성소수자 사목을 해서인지, 많은 대의원이 의견과 질문, 도전 과제를 공유했다. 경청하고, 성찰하고, 응답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이제 10월 2일부터 시노드의 마지막 제2회기가 시작될 예정이다.
총회 논의에 대한 비밀 서약을 유지하면서도, 지난해 원탁 토론과 시노드 현장에서 일부 대의원이 전에 내가 교회 지도자들에게 들은 반대 의견을 뛰어넘는 발언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이 보편 교회 담론의 일부라는 것을 아는 것과 그 주장을 직접, 때로는 얼굴을 맞대고 듣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나와의 대화에서 '역겹다', '혐오스럽다', '부자연스럽다', '병적이다'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었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서 온 많은 대의원은 제1회기 작업 문서 또는 의안집에서 두 번 언급된 사목적 필요 사항인 성소수자 공동체에 다가가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표현했다. (올해 의안집은 교회 내 여성의 역할이나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와 같은 특정 쟁점보다는 일반적인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 개념에 초점을 맞추었다.)
작년에 나는 대의원들의 반대를 이해하기 위해 그들을 찾아다녔다. 시노달리타스는 경청을 기반으로 하는데,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떻게 훌륭한 대의원이 될 수 있겠는가? 총회에서 어느 대의원이 동성애를 "서구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하자, 한 추기경이 "그 사람과의 만남을 주선해 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나에게 물었다. 이를 계기로 솔직하고 열린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다른 대의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우려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의 ‘전제’를 적용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는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의문이 들더라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시노드가 끝나갈 무렵 또 다른 시노드 참가자가 내게 "내년에는 당신과 의견이 다른 대의원 및 다른 가톨릭 지도자들과 만나 그들의 우려를 듣고 대화함으로써 다리 놓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라고 제안했다.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전 세계의 추기경, 주교, 사제, 남녀 수도자, 가톨릭 평신도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특히 반대 의견을 보이는 대다수가 동유럽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인 것으로 보이는 점에 주목하여, 이 지역 사람들과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내가 들은 이야기와 나의 답변이다. 여기서는 ‘성소수자 쟁점’이라는 용어를 써서 사목적 접근 방식(성소수자 가톨릭 신자에 대한 환대 확장하기)부터 더 명백한 신학적 쟁점(동성애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과 최근의 쟁점(특정 상황에서의 동성 커플 축복 승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설명하겠다. 답변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반대 의견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는데, 많이 언급된 순으로 나열해 보겠다.
1. 성소수자 쟁점은 이데올로기다, 2. 신식민주의의 한 형태다, 3. 서구의 관심사다, 4.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5. 성소수자는 교회를 싫어한다.
1. 성소수자 쟁점은 이데올로기다. 성소수자를 언급하는 가장 일반적 반응은 이 주제와 관련된 쟁점이 단지 '이데올로기', 즉 순진한 사람들, 주로 청소년에게 강요하는 잘못된 신념 체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많은 대의원이 '성소수자'라는 용어를 공동체의 정체성이 아니라 위험한 이데올로기의 반영으로 간주하여, 사용하는 것조차 꺼려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주장은 많은 교회 지도자와 시노드 대의원 사이에서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도 ‘젠더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는 것으로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 용어는 주로 트랜스젠더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많은 가톨릭 신자에게는 모든 성소수자 쟁점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일부 대의원은 이에 대한 논의, 심지어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들의 생생한 경험에 대한 논의조차 위험한 이데올로기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몇몇 대의원은 성소수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단지 (그들을 게이로 만드는) 이데올로기에 동의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 아프리카 대주교는 내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게이가 된 이유는 미국인들이 게이가 되라고 돈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돈을 주고 ‘게이가 되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에 관한 우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법은 오늘날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많은 관념, 입장, 생각이 있지만 대다수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는 관념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 따라 반응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물론 미디어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성적 취향이나 정체성에 의문을 품고 실험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의사, 생물학자, 사회과학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소수자 당사자들은 그들이 아이디어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느낀 경험에 반응한다고 할 것이다.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의 경우, 이는 머릿속으로 동의한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창조되었다고 느낀다. 그리고 트랜스젠더는, 도미니코회 루이사 데루엔 수녀가 자주 지적하듯이, 어떤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그들 인생 여정의 일부다.
2. 성소수자 쟁점은 신식민주의의 한 형태다. 시노드 총회 기간 및 지난 12개월 간의 대화에서 또 다른 일반적 반응은 첫 번째 반대 의견과 관련된 것으로, 식민지 세력이 이 이데올로기를 수출했다는 것이다. 즉, 동성애는 다른 지역, 특히 개발도상국의 고유한 문화 규범과 맞지 않는 것으로 서구 식민주의자들이 수입해 왔다는 것이다. 한 주교는 자기 나라에 동성애가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주교는 ‘수입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교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고 했다.
또한 많은 사람은 해외 원조가 특정한 소수자 권리를 받아들이는 것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드러냈다. 즉, 일부 서구의 원조 종합 정책에는 해당 국가가 성소수자 권리를 수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한 아프리카 신부는 내게 "당신은 이것이 어떤 국가와 어떤 사람들에게 얼마나 굴욕적인 일인지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굴욕적’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반면에 또 다른 아프리카 신부는 원조 규정이 동성 결혼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가 괴롭힘, 폭력, 투옥, 처형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타깝게도 '식민주의'와 '이데올로기' 주장은 동성애 혐오 정책을 지지하는 정부와 독재정권에서 자주 사용되며, 교회는 이러한 정치적 탄압에 동참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국가가 교회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 정부가 승인한 동성애 혐오에 반대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동유럽의 한 주교는 "우리 정부는 이를 혐오 선전에 이용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둠과 분노가 너무 많습니다." 가톨릭 신자들도 정부가 통제하는 미디어의 영향을 받아 이를 '식민주의' 또는 ‘이데올로기’ 위협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지역 주교들이 성소수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한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소수이고 정부 지도자들이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국가에서는 가톨릭 지도자들이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데 더욱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시노드, 더 넓게는 교회에서 이 쟁점에 관한 대화의 어려움 중 하나는 성소수자와 함께 사목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듣도록 격려하고 싶지만 ‘식민주의자’로 보일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번 시노드에서 몇몇 아프리카 대의원이 제기한 일부다처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자는 요청이 동성 커플 문제보다 더 열렬히 환영받았다. 이는 교회의 가르침과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 삶을 사는 가톨릭 신자 그룹에 관한 비슷한 지원활동이라고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성소수자 쟁점과는 달리, 최근에 나온 제2회기 의안집에는 ‘아프리카 교회의 일부다처제에 대한 신학적, 사목적 문제를 식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 유럽 대의원은 "일부다처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성소수자 쟁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면 식민주의자로 비춰질까 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교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하는 일부다처제 부부를 환영하는 것을 지지하는 한 아프리카 주교에게 왜 동성 커플에 대해서는 같은 논리를 사용할 수 없는지 물었다. 그는 "일부다처제 부부는 자연스럽고 동성 부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많은 학자가 지적하듯이 동성애는 식민주의 시대 이전부터 고대의 수많은 비서구권 문화에도 있었다. 피터 턱슨 추기경은 최근 자신의 모국어인 아칸어에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단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루이사 월은 식민지 시대보다 훨씬 이전부터 태평양 섬에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아웃리치>(Outreach, 미국 그리스도교 잡지)에 기고했다.
실제로 성인전에서 많이 알려진 우간다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동성애의 공포를 설명하는 데 자주 쓰인다. 1885년, 가톨릭 신자 22명과 성공회 신자 22명, 그중 일부는 아주 어린 나이에 현지 국왕의 폭력적인 성적 접근을 거부한 뒤 끔찍한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또 다른 측면은 종종 간과된다. 동아프리카의 한 사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들을 반대하는 데 이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식민지 시대 이전에도 동성애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아무도 그런 말을 좋아하지 않죠"라고 말했다. 동성애는 모든 국가, 지역, 교구에 존재한다.
여러 대의원이 지적했듯이 식민주의의 더 깊은 영향은 동성애 혐오의 지속적인 유산을 남긴 ‘남색 금지법’(anti-sodomy laws)의 역사로 특히 대영제국이 집행했던 법이다. 따라서 식민주의가 끼친 악영향을 고려하려면 이것도 같이 다루어야 한다.
3. 성소수자 쟁점은 서구의 관심사다. 이것은 ‘신식민주의의 한 형태다’라는 말과는 다소 다르다. 교구 안에 성소수자가 있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한 아프리카 주교가 말했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지 않죠."
한 아프리카 사제는 자신의 나라에서 성 정체성은 공개 석상뿐만 아니라 가정에서조차 드러내 놓고 논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문화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불신이 깊고, '강요된' 대화를 하는 것이 서구적으로 보인다. 아프리카 일부 사람에게는 이 주제는 혐오스러운 주제다. "주교들은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며, 이 문제를 제기하면 주교들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나 문제가 된다는 것을 부인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주교가 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뿌리 깊은 문화적 태도와 더불어 심지어 어느 아프리카 사제가 ‘교정 강간’이라고 부르는 폭력적 관행 때문에 이 주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교정 강간’이란 레즈비언을 ‘치료’하기 위해 강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가톨릭 지도자들은 자국에서 이러한 주제를 논의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이를 서구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더 구체적으로 서구의 관심사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특정 상황에서 동성 커플 축복을 허용하는 선언 '간청하는 믿음'을 아프리카-마다가스카르 주교회의연합회(SECAM)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포를 거부한 것에서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간청하는 믿음’이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당연히 교회의 가르침이다.)
한 사제는 또한 동성애 혐오가 만연한 자기 나라에서 깊은 수치심을 느끼는 성소수자 사제들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밀어내고 부정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마크 게비서의 저서 "핑크 라인"(The Pink Line)에 자세히 설명돼 있는 것처럼, 박해와 폭력을 피해 도망치는 성소수자가 늘어나는 것이 ‘서구의 선입견’이라는 주장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일 수 있다. 수십 개 국가에서 동성 관계를 맺거나 성소수자 권리를 옹호하면 투옥될 수 있다. 7개국에서는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두려움 때문에 고국을 떠나는 성소수자들 사례는 만연해 있으며, 때로는 박해를 피해 난민 캠프로 향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에게, 그리고 이들의 국가와 교회에게 이것은 매우 큰 문제다.
4. 성소수자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반대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동성애 행위는 ‘본질적으로 무질서하다’는 교회의 가르침에 반대하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에 대한 언급은 금지되어야 한다. 물론 교회의 가르침에 반대하고 동성 간 성행위를 하며 동성 파트너와 결혼한 성소수자들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일부 가톨릭 지도자의 반대는, 교회 가르침에 반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심하고 노골적이다. 작년에 내가 만난 동성 커플의 이야기를 공유한 뒤, 한 라틴아메리카 고위 성직자는 동성 관계에서 자기 헌신적 사랑은 높이 평가하지만 성행위 자체는 교회 가르침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역겹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반대가 ‘문화적이지 않고 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구약 및 신약 학자가 지적했듯이, 성경에서 소위 ‘처벌하는 구절’(동성애에 대해 명확하게 비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성경 구절)을 사용하는 것은 그 독서가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의미가 있던 것이었으며(노예에 관한 성경 구절과 유사), 더구나 (간음한 여성을 돌로 치라는 등) 다른 많은 성경의 명령과 지침은 더 이상 따르지 않기 때문에 매우 문제가 될 수 있다. ‘처벌하는 구절’을 사용하는 것은 거의 항상 매우 선별적으로 이루어지며, ‘환대의 본문’이라고 불리는 것 대신에 거의 항상 성소수자들에게 불리하게 사용된다.
이런 대화에서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어떤 종류의 연애도 하고 있지 않고 조만간 결혼할 계획도 없지만, 교회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15-16살 청소년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권유한다. 아니면 ‘교정 강간’의 공포에 시달리는 레즈비언이나 난민 수용소, 혹은 감옥에서 고통받는 동성애자도 있을 수도 있다. 이들은 어떤 교회의 가르침에 반대하고 있는가?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교회의 가르침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5. 성소수자들은 교회를 싫어한다. 이 주장은 특히 동유럽에서 온 여러 시노드 대의원에게서 들었다. 일부 가톨릭 지도자의 경우, 성소수자에 대한 주된 경험은 그들이 언론에서 교회를 비판하는 것을 듣거나 직접 시위하는 것을 본 것이다. 교회와 성당 앞(때로는 퀴어 퍼레이드 중)에서 시위를 벌인다는 보고를 여러 번 들었다.
이것은 성소수자들을 항상 어디서나 교회에 대한 반대와 연결시키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주교들이 귀를 닫게 만든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신을 악마화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어려우며 성소수자들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한 가지 대응책은 많은 성소수자(이 중 다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님)가 교회 지도자들의 동성애 혐오 발언에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도록 하고, 이러한 시위대가 대다수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 대부분은 그저 하느님이 자신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자신과 함께하며 성령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교회가 자신의 집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또한 성소수자들 역시 교회 지도자들과 대화를 원한다면 교회를 혐오하는 발언이 얼마나 비생산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 한 해 동안 가톨릭 지도자 및 시노드 대의원들과 토론을 마무리할 무렵, 나는 종종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우려에 어떻게 하면 가장 잘 대응할 수 있을까요?" 거의 모든 사람이 같은 대답을 했다. 성소수자를 고정관념이 아닌 사람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위에서 언급한 모든 이유로 성소수자 쟁점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자녀, 즉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형제자매로 알아가는 것이다.
기사 원문 : https://www.americamagazine.org/faith/2024/09/19/father-james-martin-lgbtq-synod-248840
번역 : 예여공(예수님과 여성을 공부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 네이버 카페 '예여공'에서 월례 모임 등 정보를 볼 수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