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도전하고 싶다
대통령 노무현이 죽고 나서 노무현재단이 펴낸 책 제목은 “노무현이 없다”이다. 안타깝게 그는 사라졌다. 민족극 문화운동의 기획자이자 뒷패 최정완이 죽었을 때 그를 기리는 책 제목은 “나는 없다”이다. 그렇게 그도 사라졌다.
노인이 되면 사라지기를 원한다. 본인도 그러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더 원한다. 그러나 사라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 문재인이 임기를 마치면서 ‘잊히고 싶다’ 했지만 그리 쉽게 잊힐 수 없는 운명이다. 노인의 잊어짐이란 바로 그러한 갈등 안에 있다. 자타가 그러기를 원하지만 그리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자 사진작가 김원명이 이런 제목의 책을 썼다. “우리는 힘이 세다”
진정으로 힘이 센 사람들은 힘을 과시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이웃과 약자들 그리고 역사의 발전을 위하여 힘을 사용한다. 그래서 죽은 뒤에 비록 본인은 사라지고 잊히지만 약자, 평범한 시민들과 함께 역사는 끊임없이 성장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없다”, 없지만 그들은 흔적으로써 다음 세대의 바탕을 이루어 준다. 인생이란 벽돌로 쌓아가는 건축물과 같아서 아래의 벽돌을 빼내버리면 그 건축물은 무너져 버리고 말 듯이 역사도 그 바탕을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잊어지고 죽고 사라지지만 다음 사람들은 그 흔적 위에서 존재하고, 설사 흔적마저 바탕이 되어 없어지더라도 그러나 그 위에서 미래의 희망으로 다시 싹틀 테니까 그것을 새로운 말로 ‘힘이 세다’라고 할 수밖에.
은퇴하기까지의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이제 뒤늦게나마 힘이 세고 싶다. 진정으로 예수의 제자답게 힘이 세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은퇴를 정의하려 한다. 은퇴란, 후배들을 위한 흔적으로 남기 위해 자리를 비껴주는 선택이지 결코 잊히기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또 은퇴란, 젊은이들이 하지 않는 분야 또는 젊은이들이 할 수 없는 분야를 담당함으로써 사회의 빈자리를 채워 가는 분담 차원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은퇴 후 노인의 도전이란 새로운 일의 개척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계속 도전하고 싶다. 새로운 일을 개척하며 도전하는 젊은 노인으로 살고 싶다.
오지, 시골의 공부방
광주교구의 어느 신부가 젊은 시절, 면소재지인 시골로 발령이 나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작은 시골에서 발견한 현상은, 바로 조손 가정과 다문화 가정이 시골에 점점 많아진다는 실상이었다. 그래서 성당에다 공부방을 만든 과정을 신부들 모임에서 생활나누기로 보고하였고 그로부터 도시가 아닌 시골의 공부방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 사거리 성당 공부방은 그렇게 시작하였다. 마침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이 도시에서는 빈민촌, 시골에서는 마을 단위로 노인 돌봄터와 아이들 공부방을 일찍부터 시작하고 있던 차에 함께하였다.
농촌이던 어촌이던 오지에서 자란 아이들의 미래는 암울할 경우가 많다. 숙제를 비롯해 부모나 보호자가 학업을 도와주지 못하면 학업에서 뒤떨어지는 경우가 생기기 십상이고 그러다 포기해 버리면 졸업 후 도시로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젠 시골이 오히려 도시보다 공부방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1980년대 도시의 빈민촌에서 시작한 공부방이 이 시대에는 작은 시골에 더 필요한 현실이 된 셈이다.
정년퇴직을 한 많은 교사가 주말을 이용하여 오지로 가서 아이들 숙제도 도와주고 부족한 과목을 도와주는 열정으로 이어 간다면 노령화의 새로운 개척이 아닐까? 정년퇴직한 교사들의 아까운 자산을 활용하는 방안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퇴직은 하였으되 노인의 축에 끼이지도 못하는 60대 초반에게는 아직 도전해야 할 일들에 해당하기도 한다.
마을 운동의 자료들에는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들로 이런 목록을 꼽는다. 마을 사무장, 도서 관리자, 마을 조사단, 한글 교실, 학교 보조교사, 방과 후 교사 등.
이런 일을 하려면 권정생 선생처럼 또는 정호경 신부처럼 살아야 한다.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그들의 투철한 삶에 나의 느슨한 마음가짐으로는 도무지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렇지만 결코 어려운 일만도 아니다. 주말 프로그램이라면 해 볼 만하니까 말이다.
코로나 시국에 오지라고 평판을 얻는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오래된 경력단절을 뛰어넘고 오지의 사정을 현장에서 더 깊이 알기 위해 시도하였으나 더 깊은 오지로 가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해 중간에 멈춰 섰고, 아직도 기웃거리고 있는 중이지만 늘 권정생 선생과 정호경 신부를 떠올리면 마음이 급해진다.
나의 성소는 주일학교 교사입니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소양인이라서 그러하다. 소양인은 속에 열이 많으니 찬 것을 넣어주어 속의 열을 식혀 주어야 몸의 상태가 좋아진다. 그래서 그는 겨울에도 아이스커피, 냉면, 빙과류 등등을 달고 산다. 그는 소양인치고는 배가 제법 나온 편이다. 그래서 내가 뱃살 빼는 비결을 알려 주었다. 소양인에게 찬 음식이 좋긴 하지만 설탕이 너무 많은 종류들로 처리하다 보니 설탕 과다 섭취로 인해 뱃살이 생기는 거다. 아이스크림과 빙과류, 과자들 등등 설탕을 끊어 보라!
그는 또 MBTI 유형에서는 I와 S성향 쪽이다. 조용하고 신중하며 천천히 사람을 끌어당기는 성격은 늘 주변에 놀라움을 선사한다. 내가 그런 사람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편이라 은근히 수도자의 길을 소개하였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말했다.
“저의 성소는 주일학교 교사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소를 가지고 산다. 성소에는 성격 유형과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성소를 찾아내려 할 때 성격 유형을 참고하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소를 통해 내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아나가고 다른 이를 위한 봉사에로 나아가게 한다.
'저의 성소는 주일학교 교사입니다.' 젊은 사람이 순간의 선택, 짧은 시간의 봉사에 그치지 않고 긴 시간, 인생을 관통하는 긴 결단으로 ‘나의 성소’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그저 놀랍지 아니한가? 나는 그에게 배우기를 청했다. 15년 넘게 주일학교 교사이니 청소년들에 관해서 배울 점이 참 많다.
나는 친구들보다 그들의 아들딸들과 이야기하기를 즐겨한다.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 주제는 미래와 청년에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과 자주 만나야 살아 있는 청년의 문화를 알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청년의 정서에도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라고 자식들의 문화를 다 아는 건 아니니까.
노인학교의 커리큘럼에 변화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인은 주로 과거를 이야기하고 사고가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선입견을 고쳐 나가려면, 또 노인 스스로가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살아가려면 이래야 한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노인학교에서도 건강과 죽음 문제만 다룰 게 아니라 미래를 향한 즉 어린이, 청소년, 청년 문제들도 선택해야 한다. 손자를 엄마아빠보다 더 잘 이해하여 대화가 통하는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면 세대 간의 갈등이 아니라 세대 간 결합을 이루는 통로가 되어 주지 않을까? 그래서 노인들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다, 나의 성소는 젊은이 친구 되어주기랍니다.
조욱종 신부(사도요한)
부산교구 은퇴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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