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재생의 숲', 김성헌 작가

인류세와 생태미술

지난 몇 세기에 걸친 이산화탄소 배출로 현재 지구 환경에 속하는 자연의 형태는 크게 벗어나 있다. 온실가스가 주요 원인인 기후변화 또한 이를 ‘자연재난’으로 봐야 할지 ‘인공재난’으로 봐야 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자연과 사회 영역을 확고히 분리해 왔던 근대적 사유가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된 오늘날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더 많은 사건이 이와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다.

바로 ‘인류세(Anthropocene, 人類世)’다.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뤼천과 규조류(硅藻類, 물에 떠서 사는 조류 무리) 연구자가 제안한 인류세의 논의에서 구체적인 시기와 구분은 달라도 ‘인간의 활동’이 그 주요한 원인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한 오늘날 인류세 작가들은 생태미술가들로 발전하기도 하면서 지구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인간과 비인간의 연결망 안에서 사유한다. 말하자면 생태미술은, 자연이 더 이상 무한하지도 않으며 언젠가 무용의 에너지로 변환한다는 엔트로피 이론과도 관련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류세 담론 속 생태미술가들은 지구를 하나의 총체적인 시스템이자 지속가능한 구조로 파악하고 예술 작업을 수행해 나간다고 할 수 있다. 

'재생의 숲', 2021. ⓒ김성헌
'재생의 숲', 2021. ⓒ김성헌

지속가능한 환원적 수행

폐플라스틱을 수집하고 그것을 재활용하여 자연 이미지를 구현하는 김성헌 작가는 2021년부터 이러한 작업 의도를 가지고 생태 미술 작품을 설치해 왔다. 다양한 질감과 색상의 폐플라스틱을 녹여 만든 나무들은 낯설고 불안정한 모습으로 자연의 숲처럼 설치된다. 그렇게 조성한 인공 자연, 그것도 환경 문제를 주제로한 플라스틱 재료로 가공한 인공 숲이라니! 이러한 재료가 주는 의미는 몇 가지 맥락이 있다.

작품의 제작을 위한 재료(폐플라스틱)를 수집하면서 작가는 지인들의 인식 변화를 촉구하고 그들의 참여로 폐플라스틱을 모은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는 작가의 생태미술 주제에 공감하며 다른 주변인들과의 지속적인 공조로 연결된다. 이러한 상호관계망은 제 1, 2, 3....로 무한히 확장된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생태예술가들은 종종 환경 이슈에 대한 공동체 활동에 관객이 참여하도록 유도하며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변화를 이끌어 내려고 한다. 작품 '재생의 숲' 역시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통해 버려지는 환경오염 물질을 새로운 광물이자 자원으로 환원하여 다시 사용한다. 이를 통해 인간과 환경과의 얽힘 속에서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실천 행위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인류세 담론에서 나타나는 생태 미술에서 자연은 인간에게 두려움이거나 숭고의 대상이 아니다. 펠릭스 가타리의 말대로 “인간과 비인간의 연결망 안에서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는 서로 뒤얽혀 있으며 예술은 이 둘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따라서 생태미술 객체들의 관계에서 서로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인간과 사회, 자연과의 관계란 서로 얽혀 있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이러한 현대미술에서 나타난 생태미술의 경향은 앨런 손피스트의 '불타는 숲'(Burning Forest)을 비롯한 인류세 담론 속 최근의 생태미술의 동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김성헌 작가의 '재생의 숲'은 환경 문제 해결이라는 작가의 실천적 행동이 작업 과정에서 또 다른 환경 문제를 야기한다. 따라서 작품은 언제나 ‘이율배반’적이고 모순된 형식으로만 존재한다. 결국 이것은 인류세 담론 속 멈추지 말아야 할 생태미술로 정치적 구호가 아닌 예술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왼쪽) 우리는 무엇을 버렸나? 플라스틱 펜 꾸껑, 레진. (오른쪽) 일상 속에서 버려진 펜 3600개를 사용했다. ⓒ김성헌
(왼쪽) 우리는 무엇을 버렸나? 플라스틱 펜 꾸껑, 레진. (오른쪽) 일상 속에서 버려진 펜 3600개를 사용했다. ⓒ김성헌

김연희

홍익대학교 예술학 박사(미술 비평 Art Theory and Criticism ph.D)

미술 평론 및 대학에서 예술 이론 강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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