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전시
(공진화 :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처음 언급된 용어로, 한 생물 집단이 진화하면서 이와 관련된 두 개의 종이 서로 영향을 미쳐 진화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진화생물학의 개념이다.)
2023년 4월 개관한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에서 발굴해 낸 1차 자료들로 다양한 매체들의 아카이브로 전시를 한다.(홈페이지 바로가기)
'아카이브 하이라이트' 그 첫 번째 전시는 김용익 작가에 관한 아카이브다. 김용익은 이미 그의 사십 년 화업을 돌아보는 전시 '가까이...더 가까이'(일민미술관, 2016)에서 모더니즘과 개념미술, 민중미술, 공공미술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 미술의 궤적들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에 들이는 시간만큼이나 행한 글쓰기와 영상 기록들을 작품과 함께 전시했다.
김용익의 처음 미술 작업은 에어브러쉬를 사용한 천의 실제 주름과 주름을 그린 그림 사이의 착시를 활용한 '평면 오브제(1974)'였다. 이런 평면 오브제로 주목을 받던 1981년, 이 작품들을 종이 상자에 봉하여 이전 작업과의 단절을 ‘선언’한다.
“모더니즘이라는 한국의 특수 상황이 만들어낸 브랜드화를 거부하고 그들과의 결별을 선언한 작품”이 종이 상자 세 개 '무제(1981)'라는 것은 그의 인터뷰와 글쓰기 작업, 그리고 그간의 작가적 행보에 대한 기록이 말해 준다. 이후 현재까지 그의 작품 세계는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하고 다양한 양상의 미술 활동에는 항상 ‘말’과 ‘행동’이 그의 작품들과 함께 어디선가 기록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평면 오브제' 시리즈를 종이 상자에 넣어 정권에 대한 암묵적 반항을 보이면서도 정치에 대한 호소에 집중한 민중미술의 형식에는 유보적인 입장임을 학보를 통해 보게 된다. 전시 벽면이 아닌 중간에 매달아 놓은 작품 '가까이... 더 가까이(1996-2013)'는 전시 공간을 이동했을 때 사용한 비닐 포장 상태를 볼 수 있고, 어디에서 전시했는지의 기록은 캔버스 반대편에서 읽히길 기다린다. 이후 이 작품은 나무 관과 유리 액자로 마감을 하여 “낮고 미약한 사람들이 전면으로 부상하게 될 시기라는 징후”를 작품의 유리 표면에 언급하면서 제작년도는 작품을 편집한 생애 주기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작가의 텍스트는 이제 미술관의 디지털 아카이브로 저장되어 공적, 사적인 플랫폼에서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손 안의 저장고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블로그에는 작가의 다큐멘테이션이 연일 갱신된다.
인터넷을 통한 예술을 매체(medium)로 사용하면서 ‘프레이밍(framing)’의 변화를 가져오는 동시대 미술의 현장이다. ‘프레이밍’은 본래 예술이 허구를 허구로 제시하기 위해 은폐해야만 했던 장치다. 그러나 인터넷을 매개로 하는 디지털 아카이브의 경우 오프라인에서 기능하는 현실과 연동되어 비허구를 전제로 나름의 기능을 한다.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작업이나 일상을 누리 소통망 서비스(SNS)에 라이프 로깅(Life Logging)을 하는 오늘날 작가들은 제도적 예술의 프레이밍 없이도 스스로 온라인을 통해 ‘예술 다큐멘테이션’을 한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정보가 관람객들의 인터넷 플랫폼에 재포맷(format)되면서 변형을 거치기도 한다. 최근 예술 기관들이 작가를 홍보하기 위해 컬렉션 일부를 효과적으로 구성하여 인터넷상에 공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시에 누리 소통망 서비스를 통한 ‘예술 다큐멘테이션’은 작가의 이력서로 기능한다. 자신이 특정한 생각과 욕망을 가진 인간임을 보여 주는 예술 다큐멘테이션 자체가 작가들에게는 예술적 생산이 되고, 콘텐츠 제공자 입장에서는 미래 소비 경향을 예측하는 정보로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다. 이 두 가지를 연동해 오늘날 예술계는 다큐멘테이션에 의해 드러난 해석과 기술적 정보 사이에 사이버 전쟁터가 되었다. 이렇게 변화한 프레이밍이 실제 현실에서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 여기서 ‘예술 다큐멘테이션’을 우리는 단순 사실 기록에 대한 아카이브로만 보아도 되는 것일까?
매체를 통해 기억을 영속화하려는 ‘아카이브 미술’에서, 재현하고 있는 과거는 늘 현재에 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메시지에서처럼 아카이브는 항상 발신한 정보가 잘못된 곳에 전달되거나 일부만 가게 되는 사고의 가능성에 노출해 있는 것이다. 우편 기술로서 손편지의 지연을 벗어날 수 없었던 과거에서 오늘날 전자메일과 누리 소통망 서비스는 인류의 공적 사적 공간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매체 없는 실제 경험은 있을 수 없기에 지금 우리는 예술, 혹은 예술 다큐멘테이션을 통해 경험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도착방황성에 노출되어 있다는 전제로 행한 아카이브 전시를 우리는‘기술 매체와 공진하는 아카이브 미술’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아카이브 미술에서 핵심인 기억을 담는 방식은 기술 매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억의 외재적 대상인 기술, 다양한 사회적 인프라들은 새로운 주체로서 관계성에 의해 기억을 재구성할 수 있다. 북한산과 홍제천을 근처에 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건물이 주변 지형을 따라 낮게 수평적인 공간감을 만들어 안과 밖을 서로 유기적이고 탈중심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이력서: 박미나와 Sasa[44]' 전시를 마친 두 작가는 지난 20여 년간 선보인 전시와 그 기록들을 이력서의 형식을 빌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재구성했다. 이력서는 한 사람이 거쳐 온 다양한 활동을 기록하는 문서 양식이지만 ‘나’에 대한 서사적 자아를 사회적 인식에 맞춰 정보로 조직하고 타인에게 알리는 수단으로 쓰인다. 이러한 이력서가 정보를 구조화하는 하나의 체계는 결국 그 시대의 에피스테메(Episteme, 미셸 푸코는 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의 무의식적 체계, 혹은 특정한 방식으로 사물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기초를 에피스테메라 칭했다)를 드러낸다.
따라서 기억을 외재화 하는 아카이브 미술,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지식이 잠정적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김연희
홍익대학교 예술학 박사(미술 비평 Art Theory and Criticism ph.D)
미술 평론 및 대학에서 예술 이론 강의를 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