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박수 소리’(이길보라, 2014), ‘반짝이는 워터멜론’(이혜영, 2023)
코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
청각 장애인을 위한 미사는 수어(수화 언어)와 자막을 통한 철저히 시각적인 미사이기에, 미사를 봉헌하는 공간이 어두워서도 안 되고, 앞에 있는 주례 사제와 해설자, 독서자들이 잘 보여야 한다. 수어 미사가 끝나고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청각 장애인이 대화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볼 수 있었다. 한참 밥을 먹다가도 서로를 주시해 잠시 식사를 멈춘다. 손짓으로 표정으로 무언가를 즐겁게, 가끔 심각하게 이야기 나눈다.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가끔 대화하는 상대방을 제대로 못 볼 때가 많지만, 수어로 대화할 때는 상대방을 뚜렷하게 바라봐야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음성 대화보다 훨씬 집중도가 강해 보였다. 그렇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만약 청각 장애인이 손을 다쳐 석고 붕대를 한다면 몸의 답답함에 소통의 답답함이 더해지겠다고 생각했다.
건청인임에도 꼭 수어를 배워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는 청각 장애인을 부모로 둔 이를 뜻한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부모님이 잘 못 듣고 말을 못 한다면, 아이는 어떻게 말을 배울까? 비장애인 가정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주 뚜렷한 소리로 ‘엄마’, ‘아빠’부터 해서 말을 가르칠 텐데, ‘코다’의 엄마 아빠는 그렇게 해 주고 싶어도 못 한다.
이길보라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농인’ 부모와 ‘건청인’ 자녀인 코다가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이 영화는 2014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다큐멘터리 옥랑문화상 부문 초청 상영작으로 처음 공개했으며,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 관객상과 제15회 장애인영화제 대상을 받은 수작이다. 감독의 부모는 교회에서 만나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감독을 낳는데, “침묵의 세계는 아이를 낳음으로써 말의 세계와 정면으로 부딪혀야 했다.” 어머니는 “너 낳고 우리가 들리지 않아서 소리를 들을 수 없잖아. 네가 먹는 게 부족했나 봐. 결국에는 온몸에 노란색 황달 왔어. 그때 많이 울었어”라며,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고충을 이야기한다. 아이는 더 커서 울지 않게 되었는데, 엄마의 손짓을 따라했다. 감독은 말한다. “아이들이 입으로 옹알이를 할 때, 나는 손으로 옹알이를 했다.” 그러다 보니 이길보라 감독은 유치원에 간 후부터 말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보통 아이와 다른 삶을 살아야 했던 그는 부모님과 세상 사이에서 소통하며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렸다. 무척 애잔하고 안쓰러웠지만 해맑고 착한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길보라 감독은 성장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분명 부모의 사랑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이 작품은 코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는데, 사실 코다의 삶은 무척 다양해 어떤 코다는 수어를 잘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인생 만세, 수박의 향연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반짝이는 박수 소리'의 기시감을 느끼게 해 주는 드라마다. ‘워터멜론’ 즉 ‘수박’을 거꾸로 하면 ‘박수’가 된다. 드라마 초반부에서는 형마저 농인으로 가족 중 유일한 건청인 주인공이 가족에게 갖는 무거운 책임감이 드러난다. 아주 똘똘한 주인공의 모습에서 ‘반짝이는 박수 소리’ 속 이길보라 감독의 모습이 비친다.
드라마 속 주인공 은결은 음성 언어, 수어 그리고 음악이란 언어에 빠져든다. 이 드라마는 이렇게 삼중 언어의 구조를 장착하는데, 음악을 하고 싶어 하던 은결은 아빠와 갈등하다가 2023년에서 1995년 과거로 흘러간다. 거기에서 만난 예전 아빠는 농인이 아니었는데, 무척 차분한 아빠의 느낌과 달리 다소 껄렁껄렁하기까지 하다. 은결은 과거의 아빠에게 공부와 음악을 가르치는데, 더 나아가 아빠에게 후천적 장애를 안겨 준 사고를 막아야 한다. 드라마 전개상 그렇게 기를 쓰고 아빠에게 사고가 생기지 않게 했던 이유는 가족 중 유일한 건청인으로 겪었던 또 다른 외로움과 책임감 때문이었다. 물론 미래는 바뀌었지만 아빠의 사고를 막지는 못했다.
은결은 과거의 아빠뿐만 아니라 과거의 엄마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엄마 윤청아의 과거는 처참하다. 그녀의 아버지 즉 주인공의 외할아버지는 잘나가는 회사를 운영하지만 딸아이 양육은 새엄마에게 맡기고 수어를 가르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청각장애가 있는 딸이 세상에서 조용히 지내기만 바랄 뿐이다. 딸아이가 어떻게 힘들게 살아가는지도 잘 모르는 과거의 외할아버지와 직면한 은결은 이런 제안을 한다. 이제 은결은 과거에서 어릴 때 자기에게 수화를 가르쳐 주었던 엄마에게 수화를 가르쳐 주게 된다.
“따님에게 수화를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따님의 행복을 위해 간청을 드리는 겁니다. 우리 부모님도 농인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밝고 건강하고 지나치게 행복해요. 왜냐면 소통을 하기 때문입니다. 눈빛으로 마음으로 그리고 손으로요.... 어떤 명분이라도 사람의 말을 빼앗는 거는 그 사람의 세상을 빼앗는 겁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식민지로 만드는 거예요. 따님에게 세상을 돌려주고 싶습니다. 더는 고립된 섬처럼 외롭지 않게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게 다리를 놔 주고 싶어요.”
‘첫사랑 기억 조작단’으로 시작한 밴드 이름은 윤청아가 제시한 프리다 칼로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워터멜론 슈가’로 바뀐다. ‘인생 만세’가 새겨진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물로서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한다. 수박이 주는 청량감은 청춘들에게 작은 위안이자 응원의 상징이기도 하다. 요즘 드라마의 트렌드처럼 훗날 연인이 되는 남녀의 동반 회귀를 취하며 사랑 이야기로 귀결하고 많은 시청자가 원하는 인생 역전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그럼에도 소통의 위대한 힘이 드라마 내내 관통한다는 미덕이 있다. 미래의 아들에게서 수화를 배우면서, 훗날 남편이 되는 이찬은 물론 다른 친구와도 즐겁게 지내며 성장해 간다. 게다가 아버지와 관계도 개선된다.
드라마가 장애를 이해시켜 주는 방식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제14화 ‘영옥과 정준 그리고 영희 1’에서는 장애를 대하는 의미심장한 두 장면이 있다. 정준이 연인 영옥의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는 쌍둥이 언니 영희를 보자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마을 사람도 영옥과 영희를 보며, 처음에는 놀라지만 이런 대화가 오간다. “영옥이, 영희 보민 모른 척하라.”, “그게 예의라이, 응.” 맥락상 외면하라는 말이 아니라, 비장애인 바라보듯이 바라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사회학자 정수복의 최근 저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시민예절에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나 외국인 노동자 등 소수에 속하는 사람들을 보통 사람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예의 바른 무관심(civil inattention)’도 포함된다. 소수자는 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을 차별의식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정수복, “이타적 개인주의자”, 파람북, 2024, 85쪽)
이미 영옥은 영희 문제로 이전 연인과 헤어졌던 상처가 있기에, 정준에게 곧바로 철벽을 쳐버린다. 정준은 잠시 당황하지만 항변인 듯 변명인 듯 이렇게 말하며 헤어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영희 누나 보고 놀랐어. 근데 난 그럴 수 있죠. 다운증후군을 처음 보는데, 그럴 수 있죠, 놀랄 수 있죠. 그게 잘못됐다면 미안해요. 그런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집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몰랐다고요. 그래서 그랬어요.”
일면 맞는 말이다. 앞서 이야기한 '반짝이는 워터멜론'이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주인공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장애를 보여 주는 방식이 어떤 미화나 자칫 생겨날 왜곡의 우려가 없지는 않지만, 자꾸 돌아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좀 더 익숙하게 해 준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본다. 어쩌면 학교나 집에서 잘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을 드라마가 가르쳐 주는지도 모른다. 드라마를 통해 외면하지 않고 조금씩 익숙해지고 알아가는 것, 그것은 분명 엄청난 순기능이다. 한국인이 소수자를 흔쾌히 환대하지 못하는 풍토를 드라마나 영화가 많이 개선해 주었다고 보는 편이다. 하여간 장애인이 살아가는 데 큰 불편 없는 시스템을 구축함과 동시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고 경험해 보면 그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있다. 이준석의 장애인에 대한 배려 없음에 맞서 시민들의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연대 후원 행렬에서 나타나듯이, 조금씩 상식 수준을 높여 가는 중이다. 보기에 따라 아주 더딜지 모르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훈련 중이라고 믿는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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