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이후, 작은 행동이 미래 바꾼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개표 결과를 보고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다. 누구는 정권 심판을 이룬 승리라고 하고, 누구는 패배라고 하는데 원외로 밀린 진보 정당은 어쩌나. 돌이켜 보면 매 선거마다 야호! 하며 좋았던 적이 없었다. 선거 때마다 위기라며 버텨 온 시간이 녹록지 않아서 다가올 시간이 더 무겁다. 녹색정의당은 기존에 있던 의석을 잃는 것이라 뼈아프고, 녹색당과 노동당은 계속해서 반등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예전보다는 커졌지만, 기후 총선, 기후 유권자라는 말이 실질적인 투표로는 연결이 안 되었다. 진보 정당과 진보 정치에 대한 여러 말이 분분하다 보니, 이대로 계속 정당을 유지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회의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계속해서 이렇게 가기엔 너무 지치지 않겠냐고. 낙담하고 어깨가 처진 나 자신과 우리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총선 결과에 낙담하고 있던 차에 광주에서 국순군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내가 지역에서 처음으로 탈핵운동에 연대할 즈음에 “어디서부터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국순군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었다. “허허허, 일단 들어와서 보고 배우시오”라고 하셔서 이런! 아는 게 있어야 뭘 하지 않냐고 손사래를 치는데도 일단 들어오라고 해서 얼떨결에 엮여(?) 버렸다. 막상 들어오니 배울 것이 많아서 헉헉거리는데, 어찌나 열정적으로 저만치 가시는지 버둥대며 따라갔다. 그렇게 다른 이들 토론하는거, 논평 쓰는 거 보면서 때로 현장에 나가고 때로 행사를 준비하거나 가끔 글을 쓰다 보니 이젠 탈핵운동가들 사이에 좀 덜 어색하게 앉아 있는 정도가 되었다. 얼마 전에 몸이 많이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 찾아봬야겠구나 생각만 하던 중에 부고장을 받아버렸다. 전 재산을 환경단체에 기부한다는 소식과 함께. (관련 기사) 투병 중에도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고 애쓰시고, 환경 교육과 탈핵을 위해 모든 걸 다 내어놓으신 것이다.
가만히 나의 벗, 동료, 스승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삼척, 가덕도에서, 환경부 앞에서 오늘도 묵묵히 손팻말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비가 오나 폭염이 오나 혹한이 오나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있을까 했던 광화문 금요행동은 이번 주도 그림처럼 금요일 점심시간을 지킬 것이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새만금 수라갯벌에 들고 영화 ‘수라’ 공동체 상영을 이어 간다. 금요일마다 홍성에서는 양수발전소와 송전탑 건설 백지화를 위해 기도회를 한다. 월성 핵발전소 앞에서는 10년째 주민 이주대책위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각자가 움직이는 현장 영역은 다양하다. 공장제 축산업에 반대하며 먹거리에서부터 변화를 보여 주기 위해 지구를 위한 밥상을 차린다. 자원 순환을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한다. 텃밭에서 손을 흙으로 만지며 땅과 생명을 살리는 농사를 짓고, 아나바다 장터를 열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노력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더 말하고 전달하기 위해 강의한다.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현장에서 각자가 움직이고 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해야지 하면서 생활을 하나씩 바꿔 가고 있다.
누군가는 분노로, 억울함으로 시작했을 수 있고 신념으로 이어 갈 수 있다. 우리에게 분노와 신념만이 있었다면 분명 지금쯤 지쳐 버렸을 것이다. 계속해서 소진하고 교체되면서. 그러나 내가 만난 대부분 사람은 ‘웃으며’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을 ‘희망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낙천적이고 편안하게 늘어져 있다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삶에서 의미를 찾으며 앞으로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사회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러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웃으며 멀리 보며 걸어가고 있다.
예전에 강우일 주교님께 “때로 앞이 보이지 않아서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며 위로의 말을 청했다. 주교님께서는 “우리가 현실을 들여다보면 용기가 안 나고 좌절하고 기가 꺾이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역사를 좀 긴 눈으로 보면 우리에게 가능성이 있다. (중략) 우리나라 역사는 한 발자국씩 천천히 움직이고 있고, 좋은 쪽으로 가고 있다. (중략)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우리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나을 것이다. 우리가 하는 행동이 분명 변화를 가져온다는 생각을 공유하면 좋겠다”고 하셨다.(관련 영상)
얼마 전 해외 멸종반란(Extinction Rebellion)의 누리 소통망 서비스에는 “사람들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면 그때의 작은 변화가 현재에 큰 영향을 줄 것을 걱정하면서, 오늘의 작은 행동이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진이 올라왔다. (이미지 보기) 그렇다. 우리가 하는 행동이 이미 오늘을,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2024년 찬미받으소서 주간(5월 19-26일)의 주제는 ‘희망의 씨앗’이다. 이 씨앗이 상추나 깻잎이 아니라 떡갈나무나 어쩌면 선인장인지도 모르겠다고 혼자 키득거린다. 우리는 씨앗을 심고 가꾼다. 오늘 낙담한 당신이 충분히 휴식하고, 스스로 돌보고, 어느 형태로든 다시 희망하고 사랑하는 길에 서길 토닥인다. 오늘 조금 더 힘이 있는 당신이 계속해서 기쁘게 길을 가며 낙담한 벗을 토닥여 주시길 바란다. 우리는 오늘도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며 간다.
덧붙임. 고 국순군 선생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하며, 고인의 뜻을 이어 가겠노라 다짐합니다.

오현화
가톨릭기후행동 공동대표, 마을 활동가, 세 아이 엄마.
매일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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