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양운기 수사]
해병 대령 박정훈은 해병대 수사단장으로 지난 7월 19일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호우피해로 실종된 민간인을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해병 채수근의 사망사건을 총괄 조사했습니다. 대통령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엄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터였고 박 대령은 대통령 지시와 군 사법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조사했습니다. 거기엔 이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하는 지휘관 8명(임성근 해병 1사단장 포함)의 혐의 사실, 혐의 내용(과실치사 등)이 적시 되었습니다.
7월 30일 오전 박 대령은 이 조사내용(사건 인계서)을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하게 됨을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 결재를 받고 오후엔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실장 조태용, 1차장 김태효) 요청에 따라 위 내용의 언론브리핑 예정 자료를 보냈습니다.
7월 31일 그러나 국가안보실은 박 대령에게 언론 브리핑을 취소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느닷없는 브리핑 취소 요구였지만 박 대령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8월 1일 박 대령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5차례 통화 중 “조사내용에서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다 빼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제목을 빼라.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혐의를)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를 들었습니다. 이에 박 대령은 반문하길 ‘직접적 과실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채수근 해병에게 직접 물에 들어가라고 한 대대장 이하를 말하는 것이냐?’라고 물었고 유 관리관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박 대령은 ‘사단장과 여단장도 사망에 과실이 있다고 광의로 판단했다. 그리고 어차피 수사권은 경찰에 있으니 경찰이 수사해 최종 판단하면 될 것 아니냐?’며 유 관리관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박 대령은 ‘직속상관인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경찰로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직속상관의 지시를 받는 박 대령의 합당한 태도입니다. 물론 당연히 국방부 유 법무관리관의 태도는 외압으로 작용하는 불법행위로 처벌 대상입니다.
8월 2일 박 대령은 예정대로 조사 내용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습니다. 경북 경찰은 이첩된 내용을 가지고 성실하게 수사하는 임무가 있고 당연히 국방부는 사건에 직접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국방부는 경북 경찰로 이첩된 보고서를 경찰에서 회수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경찰은 이를 국방부에 돌려주는 황당한 행동을 했습니다. 경찰의 이 태도 역시 범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리고 국방부는 박 대령의 수사단장 지위를 보직해임하고 국방부 검찰단은 채수근 해병 사망사건 수사와 관련해 박 대령을 ‘항명’ 혐의로 입건하며 지난 11일 수사하려 했으나 박 대령은 “국방부 검찰단은 적법하게 경찰에 이첩된 사건 서류를 불법적으로 회수하고, 수사에 외압을 행사하고 부당한 지시를 한 국방부 예하 조직으로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며 수사를 거부하면서 이 사건은 사회를 폭풍을 몰고 왔습니다.
8월 1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고 채수근 해병의 사망사건 수사 자료를 경찰로부터 회수한 국방부가 이를 다시 경찰로 이첩해야 한다고 말하고 국방부 검찰단이 경찰에 수사 자료를 보내지 않는다든가 일부를 취사선택하여 보낼 경우 사건 축소, 은폐 의혹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 개정된 군 사법절차가 적용되었습니다. ‘성범죄와 군인 사망사건 관련 범죄, 입대 전 저지른 범죄’ 등은 1심 과정부터 일반 법원이 관할하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2021년 8월 국회를 통과,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것입니다. 이에 채수근 해병 사망사건 수사는 민간 경찰에 반드시 이첩해야 하며 따라서 박 대령의 업무처리는 이 절차에 따른 원칙입니다. 아울러 박 대령은 7월 30일 국방부 장관의 결재를 받고 이를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한 것입니다.
군 사법절차가 개정된 배경과 취지는 군에서 사망사건과 성범죄 등이 발생했을 때 군이 대처하는 방법에 문제가 많았고 극도의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군은 사망사건과 성범죄 사건 등이 발생했을 때, “수사, 기소, 재판이 모두 군 조직 내부에서 이뤄진다면 피해자 인권을 보호하기보다는 ‘군 지휘관들의 비위를 보호’하는 ‘제 식구 감싸기’로 군 내부의 심각한 문제들을 은폐했기 때문”입니다.
2014년 4월 7일 육군 28사단 윤승주 일병이 상관의 폭력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군 당국은 사건 축소와 은폐를 시도했습니다. 특히 2021년 5월 21일 이예람 공군 중사가 상관으로부터 성추행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사건을 처리하는 군 당국의 태도는 오로지 지휘관들의 책임 회피, 윗선의 부당한 압력으로 수사에 개입하고 수뇌부의 책임을 덮는 행위 등으로 군 수사당국은 이미 국민적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군 수사당국이, 사건이 발생할 때 고위 지휘관들의 책임 회피와 사건 은폐, 축소 등의 행위는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고 오로지 자신의 기득권만 지키는 군으로 형편없는 조직이었습니다. 군의 특성상 민간이 사건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군은 안보를 빙자한 핑계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폐쇄적 태도로 오히려 불신은 최고조에 있었습니다. 국민의 군대가 아니라 군대를 위한 군대였던 것입니다. 즉 2021년 군 사법 체계가 바뀐 이유는 이 같은 허무맹랑한 군 수사체계의 개혁이었던 것입니다. 그 개혁의 성과 중 하나가 채수근 해병의 사망사건 수사를 민간 경찰에 이첩하는 것입니다.
이는 긴 시간 군 당국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수사권을 움켜쥐고 지속적으로 ‘군 인권을 개선하라’는 요구에 저항하는 ‘반개혁적 태도를 유지’해 왔던 군 당국이 ‘그동안 억울하게 희생된 장병들의 희생 앞에 어쩔 수 없이 찔끔 양보(?)한’ 소중한 ‘군 사법 체계 개혁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군 사법 체계의 변화는 수많은 장병의 죽음과 희생으로 얻은 소중한, 때늦은 것입니다. 박 대령이 이에 따른 절차로 채수근 해병 사망사건을 민간 경찰에 이첩한 것은 군 사법 체계 변화에 당당하게 부응한 것이며 ‘군의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적 요청’에 응답한 국민의 군인으로, 정당한 태도입니다. 더 이상 ‘군을 위한 군대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군’으로 거듭나려는 ‘참 군인’의 태도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국방부 검찰단의 태도나 유재은 법무관리관의 태도야말로 그동안 “군 사법제도의 개혁을 요구해 온 국민적 열망을 뭉개고 과거 군 당국의 은폐와 노골적인 수사 개입, 제 식구 감싸기, 고위지휘관 보호하기” 등으로 “반인권적 반국민적 군으로 돌아가는, 즉 ‘군을 위한 군’으로 돌아가는 군 사법개혁에 노골적으로 저항하는 행위이며 이는 심각한 안보 저해 행위”입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군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면 이것이야말로 ‘이적 행위이며 반국가적 범죄 행위’입니다.
문제는 현재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의 개입 의혹입니다. 박 대령은 ‘7월 30일 오후 안보실 대령이 수사(조사)보고서를 보내달라’는 요구를 받고 거절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이는 안보실의 명백한 외압이지요. 안보실은 이 사건에 개입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왜 안보실이 나서는가? 장관의 결재가 끝나고 절차상 문제가 없는 업무처리에 왜 안보실이 나설까요? 안보실장 이하 안보실에 대대적 수사가 필요합니다.
안보실은 강요 미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 등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안보실을 통제할 사람은 윤 대통령밖에 없습니다. 장관이 결재한 서류를 권한도 없는 안보실에서 들여다보겠다고 하는 것은, 안보실을 통제할 힘은 대통령뿐이라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수사 전문가인 대통령이 나서서 정리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의혹을 받기 충분합니다.
박 대령은 이런 거대하고 불의한 권력 구조를 보면서 홀로 외로운 밤을 새웠을 것입니다. 불의한 구조에 저항하는 것, 그것으로 지난 30여 년 군인의 명예와 가족과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두려움이 엄습했을 것입니다. 약간만 비겁하게 살면, 한순간만 눈감으면 그는 자신의 지위를 보장받고 양지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 대령은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 나는 항명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양심’을 선택했습니다. 그가 조직의 생리를 모를까요? 30여 년 생활에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군 조직의 생리를 분명히 알 것입니다.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행동이 어떤 결과가 돌아올 것이라는 ‘두려움’를 그는 어떻게 넘어섰을까요? 사랑하는 아내와 육군사관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 자신의 형제자매, 부모, 사랑하는 이웃들이 눈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래가 깜깜한 구름에 휩싸일 것을 그가 몰랐을까요? 언론의 공격, 동료 군인들과 상관들의 눈총, 그도 발길을 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의 고뇌가 어느 만큼이었을까요?
몇 달 전 박 대령과 그의 부인과 차 한잔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과거의 헌병감, 그러니까 지금의 군사 경찰로 해병대 경찰의 총책임자로써 묵직한 군인으로 기억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박 대령을 만난 그날 ‘참 군인’을 만났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혈혈단신, 단기필마로 거대한 군 조직과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실 안보실을 상대해야 하는 그의 고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특히 군 조직 생활에서 군 조직에 저항한다는 것을 박 대령이야말로 몸으로 경험했을 터, 제3자가 그의 고뇌의 무게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만큼 그의 고뇌가 깊고 깊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때 예수님은 '피땀을 흘렸다’고 기록합니다. 박 대령의 고뇌와 스승 예수님의 고뇌가 오버랩 됩니다. 무엇보다도 ‘진실’ 그것만을 선택한 박 대령의 십자가가 눈에 들어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십자가를 지는 것은 마음속에 품은 진실, 그것 하나 때문입니다. 양심과 진실을 선택할 때 돌아오는 값비싼 대가를 그가 모를 리 없습니다. 그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모든 것을 잃고도 오직 ‘진실’만을 손에 쥐겠다는 그의 신념은 악취가 진동하는 군 권력에 던지는 한줄기 향기입니다. 그의 십자가와 향기가 암흑 같은 군 질서에 새벽을 여는 한 줄기 빛으로 불의한 권력에 균열을 낼 것입니다.
그러나 ‘양심과 진실’을 위한 헌신의 대가는 박 대령을 대상으로 한 국방부의 수사 개시였습니다. 권력과 군의 협잡(挾雜)으로 박 대령은 영어(囹圄)의 몸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윤석열 정부 1년간 행태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군 개혁을 거부하는 세력들과의 지난한 싸움에 나서는 박 대령과 연대하는 행동이 간절한 시점입니다. 진실과 정의와 평화를 위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의가 서지 않으면 평화는 없습니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사목헌장' 78항) 군 사법 체계에 정의가 없으면 평화가 없는 것이며 군에 평화가 없으면 이 땅에 평화는 난망한 일입니다. 박 대령은 그 “평화 지킴이로 온 몸을 던진 것”입니다. 우린 이 땅의 안보를 지켜야 할 군의 범죄를 원하는가? 아니면 정의와 평화를 원하는가? 평화를 파괴할 것인가? 평화를 건설할 것인가? 이제 윤 대통령이 대답할 차례입니다.
양운기 수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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