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하느님의 말씀으로 매일매일 변화되십시오.”
교종, 1월23일 ‘하느님의 말씀 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23일 오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하느님의 말씀 주일’ 미사에서 강론한 후 곧이어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자들과 함께 정오 삼종기도를 이끌면서 매일 복음을 읽고 하느님의 새로움과 기쁨으로 영감과 변화를 받으라고 격려했다. 가르침 내용.
오늘 전례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나자렛 회당에서 설교하시면서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를 위한 위로와 해방에 관한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은 오늘날과 모든 시대를 관통하며 항상 유효합니다. 당시 예수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많은 것을 깨달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생각과 편견으로 인해 흐려졌습니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의미를 채우는’ 기름부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설교가 우리 자신에 일반적이거나 추상적으로 남아 있을 때는 잘 쓰여지고 전달된다 하더라도 사람들 영혼이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설교는 하느님의 말씀을 향상시키고 복음을 시간 밖의 어떤 것으로 또는 추상적 개념으로 제시될 위험이 있습니다. 대신 설교는 성령의 기름부음과 오늘 복음에서 회상되는 ‘예수님의 오늘’의 체험처럼 흘러나와야 우리를 변화시키게 합니다.
저는 특히 이번 하느님의 말씀 주일에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모든 이에게 감사드리며 이 직무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성경을 살아나게 하는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도록 기도할 것을 권고드립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항상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우리를 위로하고 변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인도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평범한 하루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오늘로 변화시키십니다. 모든 사람이 복음을 가까이 두고 매일 작은 구절을 조용히 읽고 또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느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떻게 직접적으로 작용하고 더 나은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느끼게 될 것입니다. 복음이 이 세상에 들어오면 하느님으로 충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새로움과 기쁨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또한 보편교회 전체에서 시작된 시노드 여정을 안내하는 등대입니다. 주의와 분별력으로 서로 들으려고 애쓰면서 함께 하느님의 말씀과 성령의 말씀을 들읍시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위해 날마다 복음으로 우리 자신을 양육할 수 있는 불변성을 얻게 하소서. 아멘.
“1월26일은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
프란치스코 교종은 삼종기도 가르침 말미에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긴장상태가 결과적으로 유럽 대륙 전체의 국경을 뒤흔드는 전쟁위기에 대해 걱정하면서 1월26일을 전 세계 모든 신자가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날로 지내자고 제안했다. 말씀 내용.
저는 현재 우크라이나 평화에 새로운 타격을 가하고 유럽 대륙 안보에 의문을 제기하며 더 큰 영향을 미치도록 위협하는 긴장의 고조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행동에 대한 저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호소는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모든 정치적 행동과 계획이 당파적 이해가 아닌 인간 형제애에 도움이 되도록 전능하신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도록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진심으로 호소합니다.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여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소명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고 현재의 긴장을 감안할 때, 저는 다음 주 수요일인 1월26일을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제안합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종은 증오와 전쟁과 죽음을 이기는 기도의 능력을 믿으면서 최근 몇 년 동안 레바논(2021년), 콩고와 남수단(2018년), 시리아(2013년)에서와 같이 그리스도교를 신앙으로 하는 모든 사람의 기도를 모아 인류를 위협하는 절박한 위협에 맞서 왔다. 현재도 인류는 새로운 전쟁의 망령이 맴돌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몇 주 동안 외교적 합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26일을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로 선포한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고조되는 긴장은 실제로 국제사회 전체를 걱정시키고 있다.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군사적 침략을 피하기 위해 연일 회의와 화상회의를 확대하고 있다. 영국은 모스크바가 우크라이나에 친 러시아 정부를 세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영국 외무부가 말도 안되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을 중단하라"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 국경과 돈바스 지역에는 이미 12만 명 이상의 러시아 군대가 배치되어 있으며 키예프와 마찬가지로 연일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24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미국과 독일 대사관은 직원가족을 대피시키기 시작했으며 NATO 국가에서 탄약과 군사 고문단이 계속 투입되고 있다. 미국도 바이든 대통령 명령으로 무기 약 90톤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1월24일에는 유럽연합 27개국 외무장관이 제네바에서 모스크바와 협상을 마치고 돌아오는 블링켄 미 국무장관을 화상으로 만나 러시아의 침공시 가능한 제재방안을 검토하게 된다. 이와 함께 영국과 러시아의 양자회담도 기대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실천하자.”
교종, 1월23일 ‘하느님의 말씀 주일’ 미사 강론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23일 오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된 연중 제3주일이자 ‘하느님의 말씀 주일’ 미사 강론에서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시키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입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날 미사에서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온 남성 5명과 여성 3명에게 새로운 교리교사직을 수여했다. 강론 요지.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는 두 가지 측면이 강조됩니다. 즉,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을 계시합니다. 그분의 말씀은 우리를 다른 사람에게 향하도록 이끕니다. 복음(루카 1,1-4; 4,14-21)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고 밝히시면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시고 인간에게 가까이 계시며 그들을 돌보기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그분의 말씀은 우리들이 두려움의 잿더미 속에서 희망에 불을 붙이고, 슬픔의 미궁에서 기쁨을 재발견하도록 도우며, 고독의 감정을 희망으로 채우도록 이끄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믿음을 양육하고 새롭게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영적인 삶의 중심에 이 말씀을 놓읍시다! 또 하느님의 계시는 우리를 인류공동체로 이끕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발견할 때 ‘외적 예배로 축소된 종교’, 즉 우리의 삶을 건드리지도 않고 변화시키지도 못하는 종교에 자신을 가두려는 유혹을 극복하게 합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해방시키시는 사랑의 고요한 능력으로 우리 스스로를 떠나 형제자매를 만나도록 재촉합니다.
특히 예수님은 나자렛 회당에서 설교하실 때 가난한 자를 자유롭게 하려고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 즉 이웃을 돌보는 예배를 보여 주십니다. 현대 교회의 경직성에 대한 유혹은 '변태와 우상', 즉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는 일종의 현대적 '펠라기우스주의'입니다.(역자 주: 4세기 아일랜드 출신의 수도자 펠라기우스는 원죄는 인간의 본성을 오염시키지 않았으며 도덕적 의지는 하느님 도움 없이도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하느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도전과 혼란을 주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불균형적으로 가해지는 이 세상의 고통에 무관심하지 않도록 이끕니다. 또한 하느님에 대한 경배와 남성과 여성에 대한 관심을 결합하여 행동하도록 촉구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또 다른 유혹인 일종의 ‘천사적 영성’, 즉 현실과 동떨어진 하느님의 말씀을 제안하는 일종의 ‘영지주의’에 대한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대신 하느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생활의 구체적 상황에서 육신이 되시어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무관심하지 않고 형제자매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창의적이고 예언적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 말씀이 모든 이의 육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미사 중에 교리교사직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섬기고 그분을 선포하는 중요한 일에 부름을 받아 예수님의 위로와 기쁨과 해방이 모든 사람에게 전할 수 있도록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는 또한 모든 그리스도교인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든 믿는 이들은 성경에 대한 열정을 키워 하느님의 말씀을 교회의 삶과 사목활동의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하고,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경직된 ‘펠라기안주의’(역자 주: 5세기 펠라기우스가 가르친 그리스도교 이단으로 인간 본성의 선함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면서 원죄에 대한 교리와 유아세례 필요성을 거부했다.)의 경직성에서 해방될 것이며, 우리를 형제자매를 돌보지 않고 주변의 궤도에 남겨두는 영성의 환상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실천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교종, 2세기 성 이레네오를 교회박사로 선포”
동방과 서방 그리스도교의 ‘영적, 신학적 다리’로 일치와 평화의 상징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21일 2세기 프랑스 리옹의 주교 성 이레네오를 ‘교회박사’로 선언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켈트족과 게르만 민족의 사도이자 교리의 수호자이며, 평화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성 이레네오는 ‘통합박사’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교종은 성 이레네오를 교회박사로 선언하면서 "위대한 스승님의 교리가 주님의 모든 제자들이 완전한 친교를 향한 길을 더욱 많이 격려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희망했다. 교종은 선언에 앞서 동방에서 와서 서방에서 주교직을 수행한 성인의 삶과 일 두 가지 측면을 강조했다.
교종은 ”성인은 동방 그리스도교인과 서방 그리스도교인 사이의 영적, 신학적 다리였습니다. 그의 이름 이레네오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화해와 일치로 재통합되는 평화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제 바티칸 시성성의 긍정적 의견을 수용하면서 2세기 리옹 주교를 완전히 정의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를 밟았습니다. 그분은 오늘날에도 동방 그리스도교인과 서방그리스도교인 사이에 영적, 신학적 다리의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그분 이름의 그리스어 어근인 Ειρηναίος(Eirenaios)은 ‘평화를 이루는 자’를 의미합니다. 주님의 평화는 타협할 수 있는 평화,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합의의 결과가 아닌 화해하고 다시 통합되는 평화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평화입니다”라고 강조했다.(역자 주: 성 이레네오(130-202년)는 로마제국 영토였던 갈리아 지방 루그두눔(프랑스 리옹)의 주교이자 초대교회 신학사상을 구축한 교부로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유명한 신학자다. 그는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에서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으며, 사도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카르포의 문하생이다. 이레네오의 대표적 저서 "이단논박"은 영지주의 이단에 대항해 정통교리를 수호하는 내용이다. 가톨릭에서는 6월28일, 정교회는 8월23일을 축일로 지낸다.)
“여러분 사명은 존엄성, 분별력, 신앙이 핵심입니다.”
교종, 바티칸 신앙교리성 총회 참석자들에게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21일 오전 바티칸 신앙교리성 총회에 참석한 회원들을 접견하고 신앙교리성 사명의 세 가지 핵심인 ‘존엄성’, ‘분별력’, ‘신앙’에 대해 강조했다. 교종은 연설에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가톨릭교리의 온전함을 증진하고 수호하는 신앙교리성 회원들의 보편교회에 대한 귀중한 봉사에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연설 내용.
여러분들의 사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증진입니다. 제가 회칙 ‘모든 형제들’ 서두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우리가 살도록 주어진 이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을 드높임으로써 모든 인간은 형제애에 대한 세계적 열망 속에서 부활할 수 있습니다. 형제애가 창조주께서 인류의 여정을 위해 마련하신 목적지라면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길은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회적, 정치적, 심지어 건강과 관련된 긴장으로 특징지어진 우리 시대의 다른 사람들을 ‘이방인 또는 적’으로 여기고 그들과의 실제 관계를 부정하고 싶은 유혹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명의 처음부터 인간 존엄성의 무형의 가치를 항상 선언해 왔습니다. 인간은 사실상 하느님 ‘창조의 걸작’입니다. 이 같은 인간의 존엄성을 염두에 두고 신앙교리성 여러분들이 인간 존엄성의 가치와 관련해 현실이 제기하는 도전을 고려하여 성찰을 시작한 것에 감사드립니다.
두 번째는 식별입니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신자들이 분별력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분별력의 행사는 모든 종류의 학대에 맞서 싸울 필요가 있음을 발견하게 합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도움으로 모든 학대 피해자에게 정의를 내리겠다는 약속을 단호히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사법적 조치를 더욱 엄격하게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신앙교리성에 유보된 범죄에 관한 규범을 최근 업데이트했습니다. 사법적 조치만으로는 이 현상을 막을 수 없지만 정의를 회복하고, 스캔들을 수습하고 가해자를 바로잡는 데 필요한 조치들입니다. 또한 혼인의 유대를 선의로 해체하는 것에서도 비슷한 약속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베드로의 권능으로 비성사적 결혼관계의 해제를 승인할 때, 그것은 이미 사실상 실패한 결혼을 법적으로 종식시키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 사목적 행위는 새로운 결혼이 핵심이 될 새로운 가톨릭 신앙으로의 결합과 가족에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마지막 단어는 믿음입니다. 신앙교리성은 가톨릭 신앙을 옹호할 뿐만 아니라 증진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만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없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와 신자들은 인도주의적 기관의 구성원으로 의미가 축소될 것입니다. 신앙은 세례받은 모든 사람의 삶과 행동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가치가 떨어지는 물에 섞인 포도주처럼 일반적이고 ’미지근한‘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하고도 직설적' 신앙이 요구됩니다. 책을 읽는 것과 같이 모호하고 습관적 믿음으로 만족하지 맙시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가져오신 불이 계속 모든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타오르게 하도록 우리는 성령님과 협력해야 합니다.
“노동자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교종, 이탈리아 전국 건축협회 노동자들에 연설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20일 바티칸에서 열린 이탈리아 전국 건축업자협회 75주년 기념회의에서 연설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안전한 작업환경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노동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교종은 연설에서 이탈리아 전국 건축도급업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의 모임으로 창설된 협회의 75주년 기념회의는 이탈리아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회상하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연설 내용.
코로나 팬데믹으로 건축업 분야도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입니다. 이 시대에는 동기와 근본적인 선택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저는 회원들이 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복음의 가르침 중 일부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회원들의 조직에 영감을 주는 가치, 즉 경쟁과 투명성, 책임과 윤리, 합법성과 보안에 대해 지속가능성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석’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는 설교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건설’이라는 은유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예를 들어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은 행함이 없이 말만 하는 자들의 위선적이고 게으른 행실을 폭로하면서 건축기술자의 지혜를 보여 주심으로써 위선적이고 게으른 사람들을 ‘기초 없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들에 비유’하십니다.(루카 6,47-49 참조) 물론 예수님은 비유에서 큰 건물을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건축물이 강가에 세워져 있더라도 훌륭한 건축가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지은 집은 첫 번째 홍수에 휩쓸려 갈 운명임을 알고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47-48절) 우리는 그러한 건축가가 미래의 홍수로부터 집을 방어했다고 생각할 때 이미지는 훨씬 더 흥미로워집니다.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경쟁과 투명성’에 대한 가치를 살펴봅시다. 경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경쟁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길 수 있거나 다른 사람의 패배가 경제적 성과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시장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사회적 신뢰 구조를 훼손하게 됩니다. 경쟁은 ‘지배와 배제에 대한 욕망’이 아닌 자신의 일을 잘하고 발전하기 위한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의사결정 과정과 경제적 선택의 투명성이 필수적인 이유입니다. 투명성은 경제와 노동 분야에서 종종 불법적인 해고와 저임금 노동을 의미하는 불공정 경쟁을 피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다음은 ‘책임과 지속 가능성’의 중요성입니다. 최근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속가능성에는 모든 생태계의 재생능력도 포함됩니다. 건축 부문에서는 사람들에게 안전을 제공하는 자재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특별히 착취된 특정지역을 생존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협력함으로써 환경을 착취하는 것은 결단코 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윤리와 적법성과 안전’을 들 수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노동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숫자가 아니라 실제 사람들입니다. 건설현장에서도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비극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작업장 안전을 비용으로 본다면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진정한 재산이며, 그들 없이는 공동체도, 사업도, 경제도 없습니다. 안전하게 노동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일용할 양식을 얻으면서 자신의 최고를 표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노동의 존엄성에 더 신경을 쓸수록 노동의 질과 아름다움은 더 확실하게 늘어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노동의 존엄성을 수호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의 수호성인 성 요셉께 함께 기도를 드립시다.
“교종, 6개월째 화산피해 라팔마 주민들에 위로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21일 지난해 9월부터 화산폭발로 6개월째 고통받고 있는 카나리아 제도 라팔마 주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재건에 동행합니다.’ 제목의 영상 메시지를 이날 '앗 리미나'차 바티칸을 방문한 세 번째 스페인 주교단 그룹을 통해 보냈다. 메시지 내용.
"저는 화산분화 당시에도 여러분과 동행했고 재건에도 동행합니다. 여러분은 파괴적인 재난 이후 수천 명 사람이 대피해야 했고, 집과 직장은 물론 생명까지 잃었기 때문에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미래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지만 포기하지 마십시오. 재건은 항상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패배는 끝이 없다는 뜻이고 재건은 지치지 않고 지평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항상 가깝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